그날도 다른 날처럼 관광 일정이 적힌 종이를 들고 동선을 짜고 있었다. 옆에 있던 선배가 종이를 보며, "남자가 넷이네? 마음에 준비를 해라"라며 웃고 있었다. '대체 무슨 준비?' 알 수가 없었지만, 묻고 싶지도 않았다.
다음 날, 불편한 마음을 안고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가이드들을 쭉 둘러보는데, 쫙 빼입은 정장, 큰 키, 또렷한 얼굴 등 예쁘고 젊은 가이드들이 참 많았다. 그렇게 생각에 잠긴 사이, 내가 맞이할 관광객 4명이 내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ガイド さん, 初めまして" (가이드, 반가워요)
나도 인사를 하고 그들을 바라봤다. 큰 키의 중년 남성들이었다.
'아, 망했다'
그 순간 알았다. 선배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사냥감을 노리는 듯한 눈빛, 낯선 이 땅에서 뭐든 다 해버리겠단 표정. 불안이 엄습했다. 하지만 불안한 표정을 짓게 되면 기선 제압을 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표정 관리를 했다.
하지만, 실패.난 신마이(しんまい), 초보잖아.
그렇게 차를 타고 소공동 롯데호텔로 향했다. 난 침착함을 유지하며 매뉴얼대로 인사하고, 일정 안내하고, 서울의 명소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열심히 말하고 있는데 내 말을 툭 자르는 남자의 말,
"ガイド さん, 今日 時間ある?" (오늘 시간 있어?)
올 것이 왔다.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거절을 했음에도 "일정 없으면 놀자, 우리가 술 살게, 우리가 관광이나 하러 여기 왔겠냐?" 등등 끊임없이 말했다. 이들이 한국 땅을 왜 밟았는지 이유가 짐작되니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난 가이 드니까. 이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줘야 한다.
그래서 회사에서 거래하는 방석집으로 데리고 갔다. '이런 곳이 있다니' 27년 인생 처음이었다. 난 마루 끝에 걸터앉아 회사에 상황을 보고했다. 잠시 후, 한복 곱게 차려입은 언니들이 쪼르륵 나왔다. 말로만 듣던 모습을 내가 직접 보다니. 미칠 것 같았지만, 어이없게 신기하기도 했다. 언니들을 한참 둘러보던 중년 남성들은 자신이 선택한 여성들을 데리고 차에 탔다. 그 여성들은 일본어도 참 잘했다. 자존심 상하지만, 나보다 더 잘하는 것 같았다. 차는 어느덧 호텔 앞에 섰고, 체크인을 무사히 마치고 4일 후 만날 약속을 한 후 헤어졌다.
4일 후 호텔에서 만난 4명의 여성은 각자 남성의 팔짱을 끼고 명품 백을 들고 하하 호호 웃으며 나왔다. '뭐가 좋지? 그래, 직업에 귀천은 없으니' 이렇게 생각해도 그 모습을 보는데 화가 났다. 그래도 난, 반갑게 맞으며 언니들을 보내고 그들은 차에 태웠다. 공항으로 향하는 내내, 그들은 자신들끼리 이야기하느라 바빴다. 난 간단한 마무리 인사를 한 후 공항에 빨리 도착하길 바랐다.
입국장에서 하하 호호 웃으며 고마운 것도 없는 나에게 '너무 고마웠다'라고 인사를 하고 그들은 들어갔다. 무겁고 찜찜했지만 그렇게 일정을 마무리 짓고 난 여느 때처럼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쯤? 동경 담당자가 나를 불렀다.
"가이드님, 일본에서 컴플레인이 접수됐어요"
"무슨 컴플레인이오? 어떤 분들이요?"
"지난번 남성 4명이요"
"그분들이 왜요? 본인들이 해 달라는 거 다 해줬고, 언니들하고 잘 놀았고! 즐거웠다고 했는데!"
"가이드가 불친절했다네요"
헉! 불친절해서 컴플레인을 걸었다는 말에, 뒤로 넘어갈 뻔했다.
'왜, 내가 뭘 잘 못했는데? 그렇게 놀아달라고 졸랐는데, 내가 안 놀아줘서 보복하는 거야?!!' 정말 울화통이 터져서 담당자에게 말했다. "난 쓸 수 없어요! 잘못한 게 없거든요!"담당자는 아무 죄가 없다. 알지만, 쓰란다고 쓸 수가 없었다.
"가이드님. 사유서 쓰셔야 해요. 안 쓰시면 업무에 지장이 생기실 거예요" 너무 억울하고 분하고 미치도록 화가 났지만 쓸 수밖에 없었다."뭐라고 써야 해요?"
"불친절하게 해서 죄송하다고요"
"아, 나, 진짜 아니라니까요!"
"할 수 없어요"
"알겠어요"
그렇게 사유서를 쓰고 난 다짐했다. '때려치울 거야' 친한 선배를 만나 이 일을 말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00아, 네가 아직 젊어서 그래. 이해하고 넘어가. 남자들 다 그래"
'뭐라고? 남자들이 다 이런다고? 이 무슨 괴상스러운 논리이지? 이것이 위로인가? 나 잘되라고 하는 말인가?' 이 선배 말에 더 화가 났다.
난 한국을 알리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 중 한 명이 '관광통역안내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업에 자부심이 있었다. 물론 좋은 고객들도 있었다. 마음을 나누고 정성 다해 그들의 여행에 동참한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내가 고작 이런 일이나 하려고 어렵고 힘들게 자격증을 취득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고, 다시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기에 난 퇴직을 결심했다. 그리고 아웃바운드 일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