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은 나에게 최악의 해. 대학 실패의 쓴 맛을 보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1994년 00일보에 취직했다. 비록 지방신문사이지만, 지역을 대표하는 신문사로 그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다. 총무국, 편집국, 광고국, 판매국, 윤전부 등 다양한 부서 직원들 사이가 무척 좋았다.
직원들 간 사이가 좋다는 것은 모임이 잦다는 뜻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20대 초반 불타게 놀 나이였음에도 통금시간이 있어서 누릴 수 없었다. 또 내가 회식에 참여하는 것을 엄마가 무척 싫어해서 거의 가지 못했다.
어느 날 퇴근을 앞두고 있는데 직원들 눈치가 예사롭지 않았다. '아, 오늘도 술자리가 생기겠구나. 나도 가고 싶은데, 오늘도 못 가네' 역시나 퇴근 후 술 한잔 하자는 제안이 돌았고, 여럿이 모였다. 가고 싶었지만 나만 귀가.
회식 다음날 아침, 탕비실과 지하 구내식당 풍경은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라면 먹으며 오늘 업무와 관련된 얘기만 했다. 라면 먹고 남직원들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여직원들은 탕비실에 모여 어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난 참여 못했지만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이 재미있게 들었다. 재미있게 잘 놀다 들어갔다고 생각할 때쯤, 사장님 목소리를 듣고 난 뛰쳐나갔다. 언니들도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A직원 : 아니! 무슨 여자가 남자보다 술을 더 마시냐? 남자보다 술 잘 먹는 게 뭐 자랑이라고. 가지 말라고 했다고 진짜 안 가? B직원 : 야야! 그냥 둬~ 그러니까 그 나이에 아직도 시집 못 가고 있지!
사장님 심부름으로 1층을 내려가려고 계단 문을 연 순간 들은 것이다. 분명 구내식당에서 라면 먹던 남직원들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지? 저런 말을 왜 하는 거지?' 내 눈과 귀를 의심했다. 이상해서 다시 봤는데, 분명 어제 퇴근하고 회식했던 남직원이 맞았다. 대화에나오는 여자란, 어제 술자리에 끝까지 남아 있던 총무국 언니였다. 분명 아침에 구내식당에서 만나 라면도 같이 먹고, '어제 잘 들어갔냐, 속은 괜찮냐' 등 안부를 물었는데, 저렇게 뒤에서 욕을 한다고?
쌈닭 출동
"지금 여기에서 뭐 하는 거예요?" 내 목소리를 들은 남직원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냐, 아무것도"
"뭘 아무것도 아냐, 00 언니 욕하고 있었잖아요. 아까 구내식당에서 인사도 하고 라면도 같이 먹어놓고 왜 여기서 욕하고 있는데요? 뭐가 문제인데?"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아무것도 아닌데, 왜 놀라는데요? 언니 앞에서 말도 못 하면서 비겁하게 여기서 뭐 하는 거냐고요?"
내가 큰소리로 다그치니까, 남직원들이 머뭇거리다 계단을 내려갔다. 아직도 이상하다. 00 언니는 남직원들에게 술친구로 인기가 많았다. 매번 즐겁게 지냈으면서 이렇게 험담하는 줄 생각도 못했다. 언니에게 전했지만, 크게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어서 에피소드로 끝이 났다.이후 남직원들은 언니와 껄끄러운 사이가 됐다. 그리고 난 후회했다. '괜히 거기서 흥분했나. 당사자도 가만있는데, 모른 척 넘어갈 걸 그랬나 봐'
직장에서 내 별명은 쌈닭이었다. 차별적인 언어 사용, 무시하는 비언어적 메시지를 느끼면 그 자리에서 싸웠다. 1층에서 싸우면 3층까지 들려서 총무국장님이 나를 말리러 온 적도 있었다. 비서실에 근무하고 있던 터라 이미지 관리를 하라고 주변에서 조언했다. 그러나 어려웠다.
부당함을 왜 참고 넘어가야는데?
그 시절은 직장 성희롱, 성차별, 여성비하 등 많이 심했다. 난 이런 문화를 참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젊은 시절의 치기였는지도 모른다. 지금 그 정도가 아닌 걸 보면. 그래도 난 나의 20대를 후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