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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슈룹 Oct 13. 2024

엄마가 없다는 이유로

우리 애가 너무 불쌍하잖아요.

“야!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데? 내가 너 경찰에 신고할 거야!”


고요했던 센터에 울려 퍼진 민철이 고함소리에 모두가 놀랐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허둥지둥 교실로 향했다. 민철이는 화를 주체 못 해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수학 선생님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수학 선생님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화를 내고 있었다.


 “어른한테 그렇게 말하라고 누구한테 배웠니?”


 교실 속 두 사람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았다. 먼저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수학 선생님은 숙제를 하지 않은 민철이에게 숙제는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다짜고짜 애가 화를 냈다며 어이없어했다. 선생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민철이는 “왜 나만 숙제해요? 선생님은 숙제를 왜 안 해요? 왜 나한테만 뭐라고 하는데요?”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먼저 두 사람을 분리시킨 후, 민철이에게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이유를 다시 물었다. 민철이는 목 놓아 울면서 겨우 대답했다. 

 “수학 선생님은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잖아요. 근데 왜 나한테만 하라고 해요? 나만 혼내고 있잖아요. 화가 나서 소리 질렀어요.” 


마음속 깊이 화가 가득한 민철이는 오늘도 억울하고 분하다. 어찌됐든 민철이 행동은 잘못됐고, 예의에 어긋난 말이었다. 선생님에게 당장 사과를 시켰다. 억울함에 부르르 떨었지만 겨우 사과를 했다. 수학선생님도 화내서 미안하다고 말하며 일단락됐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후 담임 선생님 추천으로 센터에 온 민철이는 첫 인상부터 남달랐다.  작지만 옆으로 찢어진 눈, 짧은 머리카락, 까만 피부, 마르고 왜소한 모습이었다. 낯선 곳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 보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 손을 뿌리치고 날렵한 몸놀림으로 센터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 사이 할머니와 입소 면담을 진행했다. 민철이는 태어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부모님이 이혼했고, 지금까지 아빠와 친가에서 쭉 살고 있었다. 4살쯤 부모님과 함께 살 기회가 있었지만, 외가댁의 극심한 반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8년을 사는 동안 엄마의 모습은 오로지 사진으로만 보며 자랐다고 했다. 할머니는 면담하는 내내 민철이가 불쌍하고 안타까워 절절맸다. 


“엄마 없이 자란 우리 애가 너무 불쌍하잖아요. 내가 옆에 끼고 살면서 원하는 건 다 해주고 부족함 없이 키우려고 했어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애를 때리고 욕을 워낙 많이 해서 할 수 없이 떨어뜨려놓느라 센터에 보내요. 이젠 민철이가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엄마 없이 자란 아이가 불쌍해서 부족함 없이 키우려고 했다는 할머니의 말에 반사적으로 튀어 나간 말, “민철이가 뭐가 불쌍해요. 아빠 계시고, 할머니가 옆에서 잘 보살펴주고 계시는걸요?” 할머니는 멋쩍은 듯 웃었다. 사실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 꽤 걸렸지만, 아이가 아직 어리니까 천천히 나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민철이 거친 언행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형, 누나들이 해 주지 않으면 욕을 하고 화를 냈다. 숙제를 많이 내준다고 선생님에게 욕하는 건 기본이었고, 경찰에 신고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리고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절대 하려고 하지 않아서 주변 사람들과 갈등이 잦았다. 할머니가 그렇게 피하고 싶어 했던 할아버지의 폭력적인 모습이 아이에게서 그대로 보였다. 그 와중에 특히 눈에 띄는 점이 하나 있었다. 민철이는 상대가 자신보다 힘이 세거나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대들지 않았다. 상대가 어른이든, 아이든 상관없이 약한 사람에게는 강하게, 강한 사람에게는 약하게 행동했다. 어디에서 누구에게 배웠는지 모를 민철이 말과 행동을 반드시 고쳐야했다.



민철이는 8년을 살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즉각 얻으며 살았다. 혹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어른들이 해주지 않으면 화를 내고 떼를 써서라도 얻어냈던 민철이다. 오랜 시간 누구에게도 통제를 받아본 경험이 없던 아이는 8살이 되면서 학교와 지역아동센터에서 규칙을 지켜야 했다. 가기 싫은 학교도 가야하고, 숙제도 해야 한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고 나중에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부터 민철이에게 필요한 건 자기통제와 자기조절이었다. 이제 어른의 역할이 꼭 필요한 시기다. 요동치는 민철이 감정을 받아주고, 읽어주며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한다. 오랜 시간 어렵고 힘든 길을 가야 할 민철이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말했다.


“민철이는 지금까지 네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았을 거야. 그런데 지금부터는 달라져야 해. 학교와 센터를 다니면서 규칙을 지키고, 참는 법을 배워야 해. 네가 지금까지 한 것처럼 살 수 없어. 이건 확실해. 그렇게 될 수 없어. 하고 싶어도 참고 기다리며 네 순서가 왔을 때 하는 거야. 쉽지 않겠지? 지금부터 조금씩 배워나가면 돼. 힘들어도 참고 해.” 


내 말에 고개는 끄덕였지만, 눈은 그렇지 못했던 민철이. 얼마나 긴 여정이 될지 가늠할 수 없었다. 쉽지 않겠지만, 긴 호흡으로 나아가다 보면 아이가 조금씩 변해가리라는 믿음만은 확실했다. 여기서 꼭 알고 가야할 점, ‘아이를 변화시켜야겠다!’고 어른이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아이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가 나빠질 수 있다. ‘힘들지만 믿고 따라와. 나도 최선을 다할 테니. 너도 함께 하자’라는 확신을 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단호한 태도와 말을 건네며 포기하지 않고 나가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나는 아이를 믿고, 아이도 나를 믿는다면 분명 변화는 찾아온다. 


비록 순탄하지 않겠지만, 우리는 서로를 믿고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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