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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슈룹 Oct 13. 2024

그래, 그것도 좋은 경험이다

값진 배움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진이가 중간고사를 앞두고, 언니들에게 시험공부를 어떻게 했는지, 잠을 얼마나 자면서 공부했는지 질문을 하고 있었다. 열정이 넘쳐 보이는 진이를 향해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이던 이지가 말했다. “진이야, 너 그러다 내 꼴 난다.” 중학교 3학년인 이지는 반년 전 뼈아픈 실수를 떠올리며 진이에게 진심을 담아 조언했다. 이지 얘기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씁쓸했던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평소 중학생들에게 시험 기간에 임박했을 때 공부하지 말고, 매일 미리 복습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었다. 또 충분한 영양 공급과 잠을 푹 자야한다고 강력하게 말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잠을 충분히 못 자면 오히려 공부에 방해가 되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아이들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특히 수면이 최대 문제였다. 시험 기간에 돌입한 아이들은 에너지 드링크를 먹으면서 잠을 떨치려 노력했다. 시험 기간 내내 잠을 제대로 안 자고 공부하는 아이들은 하루하루 겨우 버텨냈다.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여러 가지 방법을 알려줬지만, 그 길을 선택한 건 본인이기 때문에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시험 전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돌아가는 아이들의 뒤통수에 대고 다시 한 번 크게 외쳤다.


“얘들아, 시험 기간이라고 잠 안 자면 큰일 난다. 지금까지 준비 잘했으니 늦게까지 공부하지 말고 오늘은 푹 자야 해! 알았지?”

“네”라고 아이들의 대답이 메아리처럼 돌아왔다. 부디 별일 없이 시험이 끝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다음 날, 시험이 끝나고 아이들이 전화가 이어졌다. 간단하게 이야기 나누고 다음 날 시험에 대한 정보만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이지만 전화가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던 중 12시가 되어 전화벨이 울렸다.


“센터장님” 축 처진 이지 목소리를 듣고 시험을 망쳐서 전화를 못 했나보다 생각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건넸다. “어머! 이지야, 전화 기다리고 있었지. 전화가 늦어서 걱정했다. 점심은 먹었어?” 내 말이 끝나자 이지가 아침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 


“선생님. 제가 늦잠을 자서 1교시 시험을 못 봤어요.” 솔직히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잠시 뇌 회로가 멈춘 것 같았다. 먼저 놀랐을 이지를 위로하고, 학교에서 어떤 조치를 해주기로 했는지 물었다. 학교에서 구제 방법을 알려줬기 때문에 괜찮다는 답이었다. 비로소 안심하고 밥은 먹었는지, 엄마한테 전화 했는지 등등 질문을 이어했다. 그런데 마음 한켠에서 ‘거봐, 내가 잘 자야 한다고 했잖아. 그렇게 말 안 듣더니 결국 이런 사달이 나잖아.’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학교 선생님들과 부모님께 잔뜩 한소리 들었을 텐데 나까지 거들 수 없었다. 


“이지야, 우리 좋은 경험 했다. 그렇지?”

“네”

“오늘 일은 아마도 네 인생에 평생 남게 될 거야. 절대 잊을 수 없겠지? 하지만 지금 일은 잠시 접어두자. 내일 시험이 기다리고 있으니, 오늘은 길게 공부하지 말고 일찍 자라. 어차피 평소에 공부 쭉 해뒀잖아.”

“죄송해요. 센터장님.”



사실 나한테 미안하다고 말할 건 아닌데, 풀이 죽어서 죄송하다고 말하니 많이 속상했다. 이지에게 누구도 시험을 잘 봐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알아서 공부하던 이지였다. 그런 마음이 너무 커서 에너지드링크도 먹고,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다가 생긴 일이었다. 오히려 이런 경험이 아이를 더 성장시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중학교 1학년에게 이런 망침은 앞으로 살아 갈 인생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이지만, 자신과 같은 길을 걸으려는 친구나 동생들에게 왜 잠을 자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아이가 됐다. 시행착오는 아이에게 쓴 보약이자 디딤돌이 된다. 아이가 이런 일을 겪었을 때, 그래, 네가 하는 짓이 그렇지, 내 말 안 듣더니 잘 한다 등 부정적인 메시지를 뱉어내는 걸 지양해야 한다. 어른이 할 일은 딱 하나다. 아이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과 직면했을 때 스스로 일어서도록 지지하는 것이다. 아이도 이미 잘못된 걸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시험 결과가 안 좋으면 어떤가. 아이가 실패를 통해 지혜를 스스로 터득했는데 이것 또한 값진 배움이자 앎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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