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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십 Oct 30. 2020

홍콩 앞바다에 똑같은 배는 없다

우리집 앞바다만 그런 걸 수도


배 경적 소리에 눈을 뜨는 홍콩의 아침


홍콩의 아침이 서울과 가장 크게 다른 건 

가끔 배 경적 소리에 잠을 깬다는 점이다.


바다 안개가 낀 날이면 더하다. 유독 배 경적 소리가 심한 날이면 눈 뜨지 않고도 짐작한다. 아, 오늘 날씨는 흐리구나.


고층일수록 더 심하다. 어쩔 땐 차라리 도로 소음이 낫다 싶을 때도 있다. 그만큼 많은 배를 본다. 수영장에 축구장까지 있는 초호화 크루즈선부터 1인 낚싯배까지.


새벽부터 어디론가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실어 나르는 배를 보고 있으면 희한하게도 열심히 살고 싶어 진다.


내가 침대에서 뭉그적거리고 있을 때에도

누군가는 벌써 일을 하고 있구나,

어두컴컴한 새벽 바다를 헤치며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부지런하고 싶어 진다 그게 뭐든.



세상에 똑같은 배는 없다


재미 삼아 배 사진을 찍어본다 생각날 때마다.

처음엔 신기해서(섬 생활이 처음이라) 핸드폰을 

가져다 대었는데 보다 보니 똑같은 배가 하나도 없더라.


심지어 섬과 섬 사이를 이어주는 연락선도 모두 제각각이고 화물선들도 모두 저마다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더라.


그만큼 배 종류도 많아 그런가.

찾아보니 셔틀탱커, 플랫폼, 순시선, 쇄빙선, 채취선, 예인선, 시추선 등 한 번도 본 적 없는 배 이름 등이 무궁무진. 내가 모르는 세상은 아직도 이렇게 크고 넓구나.



그러다 갑자기,
 배들은 저렇게 가지각색일까 궁금해졌다.


자동차는 이미 반세기 훨씬 전부터 

모듈화 되어 딱딱 찍어대고 있는데 

배는 아직 대량생산 모듈화 되지 않아 그런 걸까?

아니면 수요가 제한적이라 그런 건지.


그렇다면 비행기는?

전 세계 비행기 수 보다 배 수가 더 많을 거 같은데 

왜 홍콩 앞바다의 배들은 저마다의 

개성 넘치는 포스를 풍기는 걸까.

나중에 관련업계분을 만나게 된다면 한 번 물어봐야지.



그래서 재밌었다 지나가는 배 구경하는 게


어떤 배는 기다란 생선을 닮았고 

어떤 배는 해적선을 떠올리게도 했다.

깃발로 장식한 배들을 보면 나만 모르는 이벤트가 어디에서 벌어지고 있나 궁금하기도 했고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화물선을 보면 내 짐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도 생각했던 것 같다.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로 가는 건지 또 이름이 있다면 무엇인지 지나가는 배들을 보며 혼자 말을 걸어보기도.


만약 매일 똑같은 요트나 페리만 보였다면  사진을 이렇게나 자주 찍었을까? 이렇게까지나 궁금해했을까? 매일 보니 지겹지는 않았을까? 색깔도 모양도 가는 방향도 모두 달랐기에 더 궁금했던 건 아니었을까? 도로 위 자동차들을 볼 때는 아무 감흥이 없었으니 말이다.



모두 다 달라서 모두 다 같지 않아서


모두  달라서 모두  같지 않아서 눈길을 끌었고 궁금했다. 대량생산 대량 공정으로 찍어내지 않은 배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반면 겉으론 거기서 거기 비슷해 보이는 요트는 하나   보다 여럿일 때가 오히려 장관이었다. 요트 하나는 그냥 많이 보이는 요트 하나일 뿐이었는데 뭉쳐놓으면 오, 오늘 무슨 대회하나? 무슨 일이지? 관심이 갔다.



학교라는 대량 공정을 거쳐
비슷한 스펙을 달고


그러다 문득 우리 아이도 이런  아닐까.


이 세상에 단 한 명뿐인 우리 아이. 학교라는 대량 공정에 들어가 아이만의 매력은 거푸집 속으로 구겨 넣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모듈로 재단되어 이 시대를 살아가기에 가장 적합한 스펙을 장착한 후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모델 일련번호를 달고 나오는 건 아닐까.


울퉁불퉁 우리 아이만의 개성이 담긴 모난 모서리, 이리 깎이고 저리 깎이며 남들 다 하는 스펙 쌓기만 좇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스무 살 서른 살이 되는 건 아닌지.


싫은 것도 해야 하는 게 훈련이고 교육이라며 좋아하는 것에 마음껏 흠뻑 빠질 시간을 뺏었었던 건 아닌지. 아이만의 아름다운 색깔과 열정을 찾는 모험을 열어주기보다 똑같은 요트  뭉쳐서 튀지 않도록 남들과 비슷하게 보이게, 안전하게 가는 법만 배우게   아닌지.


슈퍼스타 K에서도 케이팝스타에서도 우승자 중 한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고 자란 친구는 없다는데 부모라는 내가 앞장서서 우리 아이를 평범한 거푸집 속 모형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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