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그녀가 사는 법
시아는 교수 집안의 늦둥이 외동딸로 자랐다. 정해진 규칙과 명확한 도리, 예의와 절제, 책임감은 삶의 기본적인 의무이었다. 그녀의 삶에는 틀에서 벗어난 일이 없었다. 그런 삶에 금이 간 건 아로를 만났을 때였다. 그는 길에서 거지가 말을 걸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짧게라도 대답했고, 때로는 주머니를 뒤적여 동전을 건넸다. 남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것을 그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따뜻함 속에서도 그는 어긋남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버그 하나에도 집착하는 꼼꼼한 프로그래머. 말은 적었지만 예의 바르고, 고집은 없지만 기준이 분명했다.
그는 세 남매 중 막내였다. 그의 어머니에게 아로는 세상의 전부였다. 온실 속 화초처럼 보호받았고, 가족은 모두 그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의 어머니에게는 무엇보다 ‘막내의 안위’가 가장 중요했다. 처음엔 그 사랑이 따뜻해 보였다. 하지만 곧 시아는 깨달았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통제였다. 시아는 결단을 내렸다. 이별을 선택했다. 그러나 아로는 물러서지 않았다. 1년 넘는 시간 동안 그녀를 붙잡았고, 끝내 다시 마음을 얻었다.
그들은 결혼을 약속했다. 시아의 마음 한편에 여전히 불안이 남아 있었지만, 그녀는 믿기로 했다. 그러나 결혼 준비 중, 아로의 어머니가 시아의 가족을 몰래 조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의 믿음은 다시 한 번 흔들렸다.
아로는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다신 그런 일 없을 거야.” 그의 진심을 믿고, 그녀는 결혼을 준비해나갔다.
결혼식은 야외에서 진행되었다. 날씨도 좋았다. 주례가 잠시 늦는 혼선이 있었지만, 무사히 끝났다.
그러나 그날 밤, 호텔에서 신혼여행을 준비하던 시아의 휴대폰이 울렸다. 술에 취한 듯한 목소리의 아로 어머니가 말했다.
“결혼식을 그딴 식으로 준비했냐? 예비 시아버지 친구들 앞에서 창피해서 고개도 못 들겠더라.”
시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로가 전화를 받아 크게 화를 냈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상처로 가득했다.
그녀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벗은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시아는 호텔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바로 뒤를 쫓아온 아로는 그녀 곁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새벽이 밝을 무렵, 그의 어머니가 그들을 찾아왔다. 그리고 차갑게 말했다.
“너희 부모를 걱정시키고 실망하게 만들 거냐.”
그 순간, 시아는 알았다. 더 이상 어떤 말도, 어떤 사과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그들은 떠밀리듯 신혼여행을 떠났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떠나는 순간, 창밖의 하늘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맑았다. 하지만 시아의 마음은 구름처럼 부드럽지도, 햇살처럼 따뜻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로가 조심스레 말했다.
“정말… 미안해.”
시아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 말이 진심인 걸 알지만, 진심이 모든 걸 덮기엔 상처가 너무 깊었다. 신혼여행지에 도착했을 때, 시아는 이미 지쳐 있었다. 야자수가 흔들리고, 리조트는 평화로웠다. 사람들은 웃으며 인사를 건넸지만, 시아는 미소 짓지 못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아로의 손을 느꼈다. 그가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행복했으면 좋겠어.”
시아는 조용히 대답했다.
“무슨 행복...”
그 말은 가시처럼 날카롭지 않았지만, 더없이 냉정했다.
다음 날 아침 공기 속에서 그녀는 조용히 울고 있었다. 설명할 수도, 기대할 수도 없는 눈물. 시아는 이 결혼을 원했고, 아로를 사랑했다. 그러나 사랑만으로 지켜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결혼 첫날부터 알아야 했다.
그녀는 여행 내내 웃지 않았다. 사진도, 셀카도 남기지 않았다. 꽃목걸이도, 호텔의 케이크도 마음에 닿지 않았다.
그녀는 물었다.
‘내가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지?’
거울 앞의 그녀는 더 이상 환한 신부가 아니었다. 슬픔에 익숙해지려 애쓰는 여자만이 서 있었다.
신혼 여행에서 돌아온 시아는 여행가방도 풀지 못한 채 소파에 주저앉았다. 몸은 돌아왔지만, 마음은 아직 길을 잃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을 들었다. 시아의 결혼은 시어머니에게 사랑의 결실이 아니었다. 그저 체면과 사회적 입지를 위한 무대였다.
“이게 결혼식이니? 내가 어디 가서 얼굴을 들고 다니겠니.”
시아를 무너뜨린 건, 남편이 이미 모든 계획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엄마가 그냥 한 번 더 결혼식을 하자고 하셔. 신경 쓰지 마.”
그의 말은 가벼웠다. 그러나 그 속엔 무관심과 동조가 있었다. 시아는 이 결혼에서 자신이 얼마나 혼자였는지를 깨달았다. 결국, 시어머니는 ‘제대로 된’ 결혼식을 준비했다. 호텔 연회장. 시아는 웨딩드레스 대신 단정한 원피스를 입고, 인사만 건넸다. 그 순간의 그녀는 잘 차려진 소품이었다. 아무도 그녀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의 마음을 보려 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그녀는 자랑할 수 있는 상품이었고, 그 결혼식은 감정 없는 연극이었다.
돌아오는 길, 남편은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시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었다. 그날 밤, 거울 앞에 선 시아는 완벽하게 정돈된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그 안엔 ‘나’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물었다. 이 자리를 선택한 내가 어리석었던 걸까. 아니면, 이 자리에 놓인 현실이 너무 잔인한 걸까......
이것이 시아의 결혼의 시작이었다. 웃음 하나 없이, 눈물과 고요한 분노, 후회로 가득 찬 신혼여행. 조용히 무너져 가는 한 사람의 외롭고 슬픈, 사랑이라 믿고 들어선 길에서 점점 멀어지는—그녀가 사는 법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