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그녀가 사는 법
결혼 생활은 조용히 시작되었다. 시아는 바랐던 것도, 기대한 것도 없었다. 화려한 낭만도, 영화 같은 감동도. 그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리라 믿었다. 그 믿음은 결혼 초반의 나날에 조용한 온기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그 고요는 오래가지 않았다. 결혼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아로의 어머니가 잦은 전화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왜 밖에서 만든 음식을 사서 먹이냐?” “너희 친정에서는 이 따위로 음식을 가르치디?” “하루 종일 도대체 뭐 하고 사냐?”
그 목소리는 날카롭고 매서웠다. 말끝마다 의심과 비난이 섞여 있었고, 시아는 방어할 틈도 없이 찔려 멍하니 서 있곤 했다. 핸드폰을 쥔 손엔 차가운 땀이 맺혔고, 그녀의 입술은 늘 굳어 있었다.
어느 날, 술기운이 실린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왔다. 시어머니는 골프 친구들과 저녁 자리 중이었다. 그 웃음소리와 수군거림 사이에서 튀어나온 한마디.
“내 아들에게 그런 음식을 먹이다니! 내 아들을 고생시키는 못된 것!”
못된 것. 그 단어는 시아의 마음 깊은 곳을 찔렀다. 그 순간, 그녀는 이름을 잃었다. '시아'는 사라지고 '며느리'라는 낯선 이름이 그녀를 대신했다. 그것은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는 이름이 아니라, 가면 같고 무게 같은 호칭이었다.
시아의 생일이 다가오자, 친정 엄마와 이모가 조용히 축하해 주겠다며 먼 길을 오고 싶다고 했다. 시아는 조심스럽게 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다.
“오시지 말라고 전해라. 내 아들이 쉬어야 하니까.” “왜 시부모한테 안부 전화 하나 못 하냐?” “며느리라면 당연히 챙겨야 할걸, 네가 왜 모른 척하고 있니?”
그 말들이 하나둘 쌓여가며, 시아는 점점 자기 자신을 잃어갔다. 인간이라면 어디까지 참고, 어디까지 양보해야 하는 걸까. 고민 끝에 남편 아로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는 놀란 듯 굳었고, 곧 미안한 얼굴로 어머니께 조심스럽게 말을 전했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반응은 이랬다.
“나는 심하게 말한 적 없다. 그냥 잘 살라고 했을 뿐이다.”
다음 날,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어디서 따박따박 고자질을 해? 아들이랑 이간질할 작정이냐?”
그 뒤로 전화는 더 자주 걸려왔고, 말은 더욱 가시 돋았다.
“네가 들어온 뒤로 아들이 더 피곤해 보여!” “네 친정에서 제대로 가르쳤는지 의심스럽다.”
며칠 뒤엔 문자로 이런 통보가 왔다.
“아로에게 우유 같은 건 시키지 마라. 사소한 거라도 힘들게 일하고 돌아오는 아들을 힘들게 하면 안 된다.”
그 순간, 시아는 깨달았다. ‘며느리’라는 이름 아래, 사소한 것조차 허락받아야 하는 존재. 말 한마디, 표정 하나, 감정 하나조차 검열당하는 삶. 가족의 일원이라면서도, 그녀는 언제든 내쳐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는 물었다.
“아기는 언제 가질 거냐?”
시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은 단순한 관심이 아닌 명령처럼 들렸다. 시아의 시어머니는 정치가 집안의 막내딸이었다. 언제나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사람. 그녀의 말은 언제나 '권위'였고, 조언은 '명령'이었으며, 감정은 늘 일방적이었다. 시아는 생각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아이를 지켜낼 수 있을까. 사랑이 아닌 의무로 시작되는 생명은 결국 상처만 남지 않을까.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침묵을 택했다. 하지만 결심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이제는 ‘며느리답게’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고 싶었다.
시아는 생일을 맞아, 친정 엄마와 이모를 집으로 초대했다. 멀리서 비행기를 타고 온 두 사람은 시아를 위해 정성스럽게 작은 선물을 준비했고, 남편 아로는 흔쾌히 동의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에는 큰누나 집에서 묵겠다며 자리를 비워주기도 했다. 그 배려는 시아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늦은 저녁,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시아가 문을 열었을 때—문 앞에는 큰 형님과 둘째 아주버님, 그리고 경찰 두 명이 서 있었다. 둘째 아주버님은 비디오를 찍으며 말했다.
“내 동생을 집에서 쫓아내? 차 키도 안 줘? 너희 쓰려고?”
형님은 경찰을 향해 말했다.
“이 사람들 좀 나의 동생 집에서 내보내 주세요.”
시아는 얼어붙었다. 경찰의 질문에 떨려서 대답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 상황은 순식간에 무력감으로 변했다.
곧 아로가 도착해 상황을 정리했다. 형님은 짧게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돌아섰고, 아로는 “미안하다”는 말만 남긴 채 모두를 데리고 나갔다.
문이 닫힌 뒤, 정적만이 남았다. 시아와 그녀의 친정엄마, 이모는 말없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 순간, 시아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차 키?”
그녀도, 친정엄마도, 이모도 운전을 하지 않는다. 언제나 기사와 함께였다. 그렇다면 그 차 키는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왜 그녀는 의심받았는가? 왜,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쫓겨날 위협까지 받아야 했는가?
그날, 시아는 분명히 깨달았다.
“이 집은 내 집이 아니다.” “내가 가진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내 말은 들리지 않고, 내 자리는 언제든 지워질 수 있다.”
그녀의 저항은 조용했지만, 산산이 깨졌다. 그러나 친정 엄마와 이모는 그녀를 다그치지 않았다.
“괜찮아. 네 마음 다 알 수는 없지만, 너답게 버텨왔다는 건 알아.” “중요한 건, 네가 스스로를 지켜냈다는 거야. 우린 너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
그녀는 비로소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시아는 깨달았다. 그 누구도, 남편도, 시댁도,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 그녀를 지키는 건 오직 자기 자신 뿐이라는 사실을. 그날 이후, 그녀의 안에 단단한 벽이 하나 세워졌다. 그것은 상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울타리였다. 더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더는 기대하지 않기 위해...
그 어떤 사과도 없었고, 어떤 변화도 없었다. 큰 형님은 변호사였다. 누구보다도 냉철했고, 이기는 일이라면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았다. 세련된 정장과 날카로운 말솜씨 뒤엔, 흔들림 없는 승부욕과 자기 확신이 숨겨져 있었다. 성공은 그녀의 것이었지만, 도덕성은 아니었다. 가끔 그녀는 생각했다.
“정말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일까?”
하지만 큰 형님은 언제나 웃으며 말했다.
“정의는 이기는 편에 있는 거야.”
그녀에게 법은 무기였고, 진실은 협상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리고 둘째 시아주머니는 의사였다. 어릴 적부터 공부를 잘했다고들 했다. 집안에서는 늘 자랑거리였고, 병원에서도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말투는 공손했고, 웃음은 적당했으며, 기록은 언제나 완벽했다. 그는 환자의 이름보다는 보험 종류를 먼저 확인했고, 진료실에선 아픈 곳보다는 공감보다 계산이 먼저였고, 치료보단 처리가 중요했다. 의사로서의 윤리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진료실 밖을 나서는 순간, 환자들의 얼굴은 기억 속에서 지워졌다.
그녀는 더 처절하게 깨달았다. 상상조차 못 했던 그날 밤의 사건은, 시아의 내면에 단단한 벽 하나를 세워주었다.
그날 이후 시아의 마음속에 새겨진 그 자국은 조용히 남아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외면해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깊은 흠집. 그리고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 벽은, 이제 영원히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