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그녀가 사는 법
시아는 건강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치아에 대한 민감함은 특히 남다른 것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자주 다니던 일반 치과에서 진지한 권유를 받았다.
"이제 교정 치료를 받는 게 좋겠어요. 나이가 더 들면 잇몸과 치아에 무리가 올 수 있습니다."
처음 듣는 말은 아니었지만, 그날은 달랐다. 의사의 말은 깊은 곳에서 뭔가를 건드리는 듯했다. 망설임과 고민 끝에, 시아는 추천받은 교정 전문 치과를 찾았다. 그곳의 담당 교정의는 친절했고, 치료 계획도 체계적이었다. 신뢰가 생겼고, 치료비 전액을 선납하며 치료를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의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초기 설명과 달리 치료는 계속 진행되었고, 그녀는 담당 의사에게 질문을 던지며 더 정확한 설명을 요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런 설명도 없이 새로운 교정의로 교체되었다. 이미 선납한 치료비로 인해, 시아는 불만이 있어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교체된 교정의와의 치료도 여전히 초기 설명과는 달랐다. 결국, 병원 측은 시아의 얼굴 골격을 이유로 교정이 잘 끝났다고 주장하며 치료를 마무리하려 했다. 시아는 동의할 수 없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느끼지 않아요."
그녀가 반발하자, 새 교정의는 직원에게 상담을 요청했고, 상담실에서는 "더 나은 결과를 원한다면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시아는 당혹스러웠다. 모든 것을 선납한 그녀에게 추가 비용이라니. 추가 설명까지 들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계속 반복되었다.
마침내, 시아는 결심을 했다. 소송을 하기로. 망설임과 침묵, 분노와 체념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시간이 흘렀고, 그녀는 조용히 그러나 확고히 결정을 내렸다.
그날 저녁, 아로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냥… 변호사 선임하자.”
말끝은 부드럽지만, 그 속엔 걱정이 깊이 배어 있었다. 시아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시간들, 혼자 법정에 선다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외로운 싸움인지 아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시아는 그 말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고마웠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소액 민사 소송. 소송가액은 만 달러가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소송을 제대로 다뤄줄 수 있는 변호사의 수임료는 소송가액의 두세 배를 훌쩍 넘는 경우가 많았다.
“돈을 써서 이긴다 해도… 결국 아무것도 안 남아.”
시아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은 단순한 계산이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녀는 아직 법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끝까지 해보고 싶었다.
“나 혼자 준비할 거야.”
그녀의 얼굴은 지쳐 있었지만, 눈빛은 확고했다. 무언가를 무너뜨리듯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눈빛. 아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눈빛을 보고, 함부로 위로하거나 말릴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이미 마음속에서 다시 한번 싸움을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아는 상대측 제출 서류, 증거 목록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분석했다. 판례를 찾아 공부하고, 관련 조항을 읽고, 공익 변호사 단체의 자문도 받았다. 누군가는 변호사 없이 재판을 치르는 것이 무모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정말 무모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믿고 있었다. 진실은 느릴 뿐, 그 자체로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는 이제 법정이 진실을 증명하는 곳이 아니라, 진실을 견디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견딤의 무게를 혼자 감당하겠다고 결심한 것이었다. 소송을 제기한 시아는 주장을 명확히 했다. 계약 위반, 브리치 오브 컨트랙트(Breach of Contract). 병원은 약속한 치료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환자를 존중하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교정 치과는 빠르게 전문 변호사를 선임했고, 상황은 복잡해졌다. 시아는 처음으로 법이라는 낯선 세계 앞에 서게 되었다. 법정에서,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할 수 있고, 내가 할 것이다.”
가장 큰 장벽은 언어였다. 모든 법적 문서와 절차는 영어로 진행되었고, 법정에선 한국어 통역사가 제공되었지만, 미묘한 의도 차이가 종종 그녀의 뜻을 왜곡했다. 그럼에도 시아는 매 공판 전날마다 사전을 펼쳐 영어 표현을 익히고, 사례를 찾아 공부했다. 통역사에게 자신의 주장을 미리 설명하며, 뜻이 정확히 전달되도록 노력했다.
이 싸움은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책임’에 대한 싸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하지만 상대측은 새로운 전략을 꺼내 들었다. 맬프랙티스(Malpractice), 즉 의료 과실로 소송을 전환하려는 움직임이었다. 입증이 까다롭고, 시아가 직접 다른 전문 치과 의사를 증인으로 데려와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그들은 확신했을 것이다.
"그녀는 영어도 미숙하고, 법도 잘 모른다. 의사 증인? 절대 못 구할 거야. 결국 포기하게 될 거야."
그런 대화를 들었을 때, 시아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손이 떨렸고, 마음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오래 무너지지 않았다.
“여기까지 온 이유를 잊지 마.”
그들이 어려운 길로 유도한다고 해서, 내가 진실을 버릴 이유는 없어.
시아는 치과계에서 신뢰받는 전문가들을 찾아 나섰다. 대부분은 거절하거나,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치과 협회 웹사이트를 뒤지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고, 의료 법률 자료를 읽으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갔다. 이제 그녀는 피해자가 아닌,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이었다. 법정은 여전히 냉정했고, 상대의 전략은 치밀했다. 그러나 시아의 눈은 단단해졌다. 그녀는 알았다. 이 싸움은 단지 치료나 계약의 문제가 아니라, 약한 자를 누르려는 구조와 그 구조에 맞서는 한 사람의 싸움이라는 것을. 시아는 매 공판이 끝난 뒤에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고개를 들고 법원을 나서며 늘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말보다 강한 건,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걸... 그리고 시아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치료는 믿음에서 시작되었다. 시아는 그의 계획서를 읽었고, 설명을 들었으며, 금액을 지불했다. 그리고 교정을 시작했지만, 그는 이미 잘 끝났다고 말했다. 시아는 치료가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그는 말했다.
“그건 당신 얼굴 골격의 문제입니다.”
그날 시아는 알았다. 내가 받은 건 치료가 아니라,
— 교정치과 의사의 변명이었다.
공판은 계속 진행되었다. 사계절이 두 번 지났다. 그리고 새 공판이 있는 날, 새로 배정된 판사는 이전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경직된 태도와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유난히 ‘사건’에 대한 집착.
그는 첫 공판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사건, 개인적으로도 흥미롭습니다. 제가 직접 맡겠습니다.”
시아는 그 말이 그저 책임감의 표현이라 생각했다. 처음엔 별다른 감정을 갖지 않았다. 누가 판사든, 공정하기만 하다면 괜찮다고 믿었다. 그러나 몇 번의 공판이 지나면서, 그녀는 점점 그 믿음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상대방 변호사가 발언할 때면, 판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경청했다. 말이 길어져도 자르지 않았고, 질문도 없었다. 그러나 시아가 입을 열면, 그의 반응은 달랐다. 그는 곧장 말을 끊고, 흐름을 자르는 질문을 던졌다. 그 지적은 마치 그녀가 중심을 잃도록 유도하는 방해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중요한 서류 하나가 제시간에 법원에 도착하지 않았다. 그 책임은 분명 행정 측에 있었지만, 판사의 판단은 냉정했다.
“원고는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기각합니다.”
그 말은 판결이라기보다, 통보에 가까웠다. 의문도 여지없이, 철벽 같은 문장이었다. 시아는 다시 조심스럽게 정신적 고통에 대한 서면 진술서를 제출했다. 통역사의 목소리를 통해, 그녀의 말은 조심스러웠고, 표현은 절제되어 있었지만 돌아온 답은, 다시 한번 그녀를 꺾었다.
“감정 표현이 과도하군요. 법은 감정이 아니라 사실로 판단합니다.”
그 순간, 시아는 무언가에 정통으로 부딪힌 기분이었다. 단단하고 매끄럽고,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벽. 그 벽은 단지 판사 한 사람이 아니라, 그가 기댄 무언가 더 큰 구조처럼 느껴졌다.
“이게... 원래 법이라는 건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몇 번의 공판이 지나고, 마침내 판결이 내려졌다. 판사는 망치도 높이 들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얼굴엔 감정이 없었다. 그러나 그 한 줄의 문장은, 시아의 숨을 잠시 멎게 만들 만큼 무거웠다.
“계약 위반 및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합니다.”
그 순간, 법정 안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공기는 차가웠고, 공정이라는 단어는 그 자리에 없었다. 상대편 변호인의 입가엔 알아채기 힘든 미소가 떠올랐고, 그 미소는 판결이 끝날 때까지 지워지지 않았다. 시아는 두 손을 꼭 쥐고 그 장면을 끝까지 지켜봤다. 고개를 숙이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마음 깊숙한 곳, 무언가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는 감각이 들었다. 절망은 소리 없이 찾아왔고, 그 절망 속에서 그녀는 스스로를 붙들었다.
그녀는 진실을 말했다. 증거도 있었다. 그러나 판결은 그녀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법은, 그들의 편이었다.
그날, 시아는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비는 조용히 내리고 있었고, 현관문을 닫는 소리마저 희미하게 느껴졌다. 그날 밤, 시아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조용히 노트북을 열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직감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녀는 판사의 이름을 검색했다. 인터뷰, 칼럼, 배경, 배정 이력… 그리고 이전에 맡았던 판결들을 찾아서 읽어 내려갔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한 조각들이 하나둘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한 공공기관 웹사이트에서 시아의 손이 멈춰 섰다.
지역 치과협회와 지역 연합민주단체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녀가 법정에서 만난, 바로 그 판사는 그 지역 연합민주단체의 추천으로 현직 판사로 배정된 인물이었다. 모든 것이, 조용하고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제야 그녀는 이해했다. 왜 그 판사는 유독 상대편의 주장을 끊지 않았는지, 왜 자신의 발언에는 날 선 질문을 던졌는지, 왜 상식 밖의 서류 누락에도 기각이라는 말을 던졌는지. 이건 단순한 편견이 아니었다. 이미 조율된 구조였다. 진실이 아닌 ‘관계’가, 이것은 단순한 소문도, 음모론도 아니었다. 문서로, 조직으로, 연결된 현실이었다. 그제야 시아는 완전히 이해했다.
그녀는 거실 바닥에 소송 서류들을 펼쳐놓고 하나하나 정리했다. 구겨지거나 찢어진 종이는 없었다. 모든 것이 차분하게, 마치 다음을 위한 준비처럼 정돈되었다. 그녀는 직감하고 있었다.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언젠가 다시 이 서류들을 꺼내게 될 거라는 것을. 창밖의 가을비는 그치지 않았다. 쓸쓸한 빗소리.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아는 그 침묵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으로, 그 침묵 속에서 확신과 의지를 느꼈다. 그녀는 패배했다. 하지만 패배했다고 끝난 건 아니었다. 이건 어쩌면 시작이었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법이 틀렸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날의 법은, 정의롭지 않았다."
치과의사, 그를 감싸는 협회, 그 단체가 추천한 판사, 그리고 그 판사가 내린 판결. 시아는 이제 확실히 알았다. 그 모든 건 하나의 시스템이었다. 진실을 외면하는 구조, 권력을 보호하는 질서, 그리고 그 질서에 짓눌리는 고립된 개인.
그러나 그녀는 물러서지 않기로 했다. 시아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되새긴다.
“그들을 이제 나를 잊겠지만 , 나는 이제 그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시아가 사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