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그녀가 사는 법
시아는 두 개의 묘비 앞에 앉아 있었다. 희미한 바람이 잔디를 쓸고 지나가고, 햇빛은 구름 뒤로 숨어들었다. 세상은 마치 색을 잃은 수묵화처럼 창백하고 조용했다. 비석 위엔 '엄마'와 '아빠', 두 이름이 가지런히 새겨져 있었고, 차가운 석면 위로 이슬 같은 눈물 한 방울이 뚝— 하고 떨어졌다.
시아는 이후에도 혼자서 산소를 찾았다. 남편은 바빴고, 시어머니는 종종 말했다. “며느리가 제사보다 무덤에 더 정성을 쓰면 되겠니?” 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꽃을 들고, 사과를 올리고, 자신의 쪼개진 마음을 묻기 위해 매주 그곳을 찾았다. 어느 날, 산소 관리인을 우연히 마주쳤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따님 맞으시죠? 아버님이 생전에 이 땅 일부를 제게 주셨어요. 관리를 부탁하시면서요. 흐트러지지 않게 해 달라고…”
시아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렸다.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버지는 딸이 이 무게에 무너지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흙과 풀, 돌 하나까지도 정돈해 두고 간 마음. 시아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었다.
며칠 후, 그녀는 다시 산소를 찾았다. 바람은 이상하게 따뜻했고, 하늘은 먹먹하게 흐려 있었다. 비석 앞에 앉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엄마, 아빠… 나 괜찮아. 매일 밤 울고, 그런데도…”
말끝이 흐려졌고, 시아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비석에 몸을 기댔다. 목이 쉬도록, 어깨가 들썩이도록 울다가… 어느 순간, 잔디 위로 조용히 쓰러졌다. 관리인은 시아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기절한 채 잠들어 있었다. 손은 여전히 비석 아래를 부여잡고 있었고, 얼굴엔 눈물자국이 선명했다.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은 조용했고, 어쩐지 따뜻하면서도 외로웠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문이 열리고, 양복 차림의 낯선 남자가 들어섰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나는 네 아버지의 친구다. 그분이… 너에게 물려줄 게 있다.”
며칠 후, 시아는 남자의 안내로 외곽의 한 창고를 찾았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지역, 오래도록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공간. 그곳은 마치 시간을 삼킨 듯 고요하고 낯설었다. 철문이 열리고, 강한 조명이 중앙을 비췄다. 그녀는 조명 아래에 섰고, 기다란 테이블과 줄지은 의자들이 그녀를 둘러쌌다. 재판장 같기도, 의식의 장소 같기도 했다.
“양손을 벌려 주세요.” 그녀는 조용히 손을 들었다. 질문이 이어졌다. 이름, 출생지, 가족 이력, 현재의 감정. 시아는 천천히, 그러나 또렷하게 대답했다. 조심스러운 말투, 낮지만 단단한 목소리. 마지막으로, 서약서를 건네받고 그녀는 서명했다. 그 순간 조명이 꺼지고, 테이블 건너 한 남자가 말했다.
“시아. 너의 아버지는 중앙정보부 소속이었다. 처음부터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스스로 ‘견뎌낼 수 있기를’ 바랐다. 지켜보며, 기다렸을 뿐이다.”
시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오래도록, 아버지의 마지막 믿음이 남겨진 공간에서 조용히 숨을 골랐다.
그녀의 눈물은 멈췄고, 숨은 여전히 벅찼지만, 걸음은 더 이상 무너지지 않았다. 돌 하나 흐트러지지 않게— 그녀도 이제, 그렇게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과거를 묻었다. 그것은 단순한 도피가 아닌, 한 생의 철저한 종료 선언이었다. 창고에서 치러진 의문의 서약 이후, 그녀는 모든 법적 기록에서 말소되었다. 병원, 가족, 관공서. 어떤 기관도, 어떤 사람도 이제 그녀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그 소식은 조용히, 지역 방송의 단신 뉴스 속보로 흘러나왔다.
“오늘 새벽, OO지역 국도변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여성 1명이 사망했습니다. 사망자는 모 시아(35). 경찰은 여성이 부모의 묘소 근처를 지나던 중 차량이 뺑소니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수사 중입니다.”
시아의 남편, 아로는 목이 쉬도록 눈물을 흘렸다. 시아의 시어머니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담담히 중얼거렸다.
“연이 짧았지… 딱 그만큼 살려고 태어난 사람이었나 봐.”
그 순간, 시아라는 이름은 이 세상에서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죽음’ 이후를 선택한 사람이었다. 단순한 성형 또는 신분 세탁이 아니라, 스스로의 전 생애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작업. 그것은 ‘재탄생’이라기보다는, 의도적이고 치밀한 자기 설계였다. 시아의 검은 눈동자는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영구 삽입형 푸른 안내렌즈가 그녀의 홍채를 감싸고 있었다. 이 렌즈는 단순히 외모를 바꾸는 것이 아니었다. 각막 아래에 이식된 기술은 안면 인식 알고리즘을 교란시켜, 그 누구도 그녀의 정체를 식별할 수 없게 만들었다. 눈동자 안에서 흐르는 빛조차 달랐다. 새로운 시선은 감시도, 과거도 투과하지 못했다. 또한, 의사는 그녀가 작전 임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색상의 콘택트렌즈를 추가로 준비해 주었다. 그리고 어느 날 다른 수술을 며칠 앞둔, 시아는 병원 상담실에 앉아 있었다. 흰 가운을 입은 이 박사가 조용히 자리에 앉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차분했고, 말투는 신중했다.
“시아 씨, 수술 전 다시 한번 더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의사는 손에 든 모형 뼈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우리가 진행할 수술은 사지 연장술, 흔히 말하는 키 크는 수술입니다. 시아 씨처럼 이미 성장판이 닫힌 성인의 경우, 뼈를 절단한 뒤 그 사이를 아주 조금씩 벌려 새로운 뼈가 자라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그는 모형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통은 대퇴골이나 경골, 즉 허벅지뼈나 종아리뼈를 대상으로 진행합니다. 절골술, 즉 뼈를 자르는 수술을 먼저 시행하고요.”
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의사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그다음 단계는 골연장 단계입니다. 하루에 약 1mm씩 천천히 뼈 사이를 벌리게 되죠. 그렇게 하면 뼈가 벌어진 틈 사이로 새로운 뼈조직이 자라나게 됩니다. 마치 다리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처럼요.”
의사는 말을 잠시 멈추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하지만 자라는 건 뼈만이 아닙니다. 근육, 신경, 혈관, 인대, 피부까지도 함께 늘어나야 하죠. 그래서 이 수술은 단순히 뼈만 잘라 붙이는 수술이 아닙니다. 전체 몸의 균형과 회복을 끌어가는 과정이에요.”
시아는 긴장을 풀지 못한 채 손을 모으고 앉아 있었다. 이 박사는 그녀가 이해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래서 전문적인 관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정형외과 전문의의 정기적인 X-ray 검사, 그리고 물리치료, 재활훈련, 감염 예방, 특히 외부 장치를 사용하는 경우엔 핀 주변 소독도 꼼꼼히 해야 합니다.”
그는 그녀에게 인내심을 요구하는 듯, 조용히 덧붙였다.
“연장 기간은 보통 1cm에 10일 정도 소요됩니다. 만약 7cm를 늘린다면 약 70일, 즉 두 달 넘게 연장을 해야 하죠. 이후에는 그 늘어난 뼈가 굳고 안정화되는 고정 기간이 필요합니다. 연장 기간의 두세 배 정도 걸리니, 전체적으로는 7개월에서 1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어요.”
그 말을 듣고 시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지금의 선택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는 조용히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이건 단순한 성형이 아닙니다.” “이건, 당신의 몸에 대한 재설계입니다.”
“물론 그 길은 쉽지 않지만, 저희가 함께할 겁니다.”
시아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한편엔 여전히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결심이 있었다.
몇 주 후 거울 앞. 그녀는 붉게 물든 붕대와 피멍 사이로 자신을 응시했다. 어두운 방 안, 흐릿한 형광등 불빛 아래, 전혀 다른 여인이 거울 속에 있었다. 얼굴도, 눈도, 키도 달랐다. 목소리도, 걸음걸이도, 체형도 이전과는 닮은 구석이 없었다. 그녀는 천천히 속삭였다. “나는 더 이상, 시아가 아니야.”
죽음조차 두렵지 않았다. 그녀를 짓눌렀던 과거는 더 이상 추적할 수 없었고, 그녀를 증명해 줄 사람도, 기억해 줄 사람도 세상에 남아 있지 않았다. 과거는 그녀를 죽였지만, 그 죽음은 곧 해방이었다. 이제, 그녀는 처음부터 다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설계하여 다시 만든 존재였다. 시아가 사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