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통통 여사가 운동하러 왔네?"
"응, 늘 변함이 없지."
정공은 절친이 경비하는 학교에 가서, 경비실안에서 운동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 참~ 대단한 여자야! 매일같이 운동장을 저리 뛰어다니니....."
"내가 차 한잔 하자고 말을 해볼까?"
"아마도 관심이 없다고 할걸...."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궁금하면 내가 물어볼까?"
"여하튼 대단한 여사임에는 틀림없어...."
정공은 예전부터 절친이 경비를 하고 있는 학교에 놀러 오면, 운동장에서 운동하는 여사를 늘 보았다.
유심히 살펴보니 60은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이에 불구하고 운동장을 10바퀴 정도 돈다.
구보하며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고 통통통 스텝을 밟는다.
그리고 뜀박질이 끝나면 철봉도 하고 몸 푸는 스트레칭을 또 하며, 건강관리를 아주 잘하는 것이다.
정공은 절친에게 말했다.
"대단한 여사지?"
"그래, 우리가 배울 점이 많아..."
"친구야! 저 여사 별명을 지어야겠다."
"어떤 별명?"
"통통통 뛰어다니니깐, 통통여사라 할까?"
"통통여사? 그래, 딱 맞네!"
정공은 물병을 들고 여사에게 다가가 권했다.
처음엔 괜찮다고 했지만 거듭 권하니, 고마워하며 받아 마셨다. 인사차 몇 마디 물어보았다.
학교 인근에 살며 운동삼아 학교에 오고 끝나면 집 근처 작은 농장에서 소일하는 게, 일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루가 너무 짧다고 한다. 짧다고 하는 그 말의 의미가 궁금했다.
지금은 운동시간이고, 다음에 또 이야기하자고 하며 운동을 계속하기에, 물끄러미 지켜보다 왔었다.
"어? 여기 웬일이세요?"
정공은 절에 다녀오면서 도서관에 들렀는데, 통통여사를 발견했다.
여사는 가볍게 목례만 하고 보던 책을 계속 본다.
정공은 조용히 책 한 권을 옆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앉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시계를 보니 12시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시간이네요, 점심 드시고 하시죠."
정공이 권유하자, 여사는 일어나 같이 도서관을 나왔다.
도서관 근처, 5분 남짓 거리에 있는 국수박사 집에 갔다. 그곳에 가서 칼국수 2그릇을 시켰다.
"취향도 취미도 비슷한 것 같네요."
정공이 웃으며, 말을 건넨다. 여사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사님! 글쓰기 한번 해 보시죠? 책도 내고요, 재미있을 거예요."
여사는 고개를 젓는다.
"난, 작가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냥 책만 읽고 싶어요."
"아니, 작가가 책을 쓰잖아요? 결국 작가는 책인데....."
"어쨌든 난 작가 그런 것 싫어요, 그냥 이대로 독서만 할래요."
"그럼, 글쓰기라도 한 번 해보시죠?"
"좋은 책은 읽고, 꼭 독후감은 쓰지요."
"그게 작가예요, 글을 쓰면 작가가 되는 거지요."
"그래도 난 작가가 싫어요."
"아쉬운 면이 많네요."
"그리고 무명작가라면 좀 괜찮은데, 유명작가가 되면 자기 인생이 없어지는 거예요."
"........."
"출판사 시키는 대로 많은 시간이 골머리 썩는 일로 가는 거죠, 그것뿐이겠어요?"
"판촉활동, 강연, 인터뷰 등 기타 사항이 발목을 잡는다는 말이죠?"
"그래요, 자기가 꿈꾸고 계획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고, 상업적 스케줄에 사는 게 염려스러워요."
"그래도 사람욕심은 한 번쯤은 출세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 아닐까요?"
"저는 그게 싫어요. 인생은 짧고 무심한 세월을, 왜 아깝게 남들에게 휘둘리며 살아야 되나요?"
"주관이 아주 뚜렷하군요."
"주관도 그렇지만, 인생을 즐겨야죠. 인생은 목적이 아니고 과정이 아니겠어요?"
"동감입니다."
정공은 더 이상 권유를 하지 않았다. 그녀는 뭔가 확고한 신념이 있어 보였다.
여사 자신은 산전수전 다 겪고, 그런 인생과 많은 사람을 다루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누구에게 평가나 인정받는, 그런 것을 아주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가치관과 주관이 뚜렷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작가들은 이기적이고 자기 영역밖에 모르는 것 같아요."
"네~에, 그런 면도 없잖아 있어요."
"좀 더 이타적이고 포용문화가 필요한 것 같은데, 그게 부족해요."
"네~에, 맞는 말씀입니다."
"이웃나라 일본은 노벨문학상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문화민족이라며 일본을 얕잡아보니 우습지 않아요?"
"맞습니다! 우리는 하나도 없죠, 노벨평화상은 있지만...."
"어쨌든 문학, 음악, 미술 등 모든 예술적 관점에서 대중성과 보편성이 요구되고 있잖아요."
정공과 여사는 국숫집을 나와 인근 카페에 들어가 차 한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계속 이어 갔다.
"정말 노벨문학상이 없는 이유가 뭘까요?"
"상업성이 심해요, 너무 돈에 치중하는 것도 문제이지요."
"최고의 지성과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지도층인 대학교수 및 대학원 등 교육기관에서 문학과 교육 수준을 높이고 발전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학벌, 출신배경, 정치에 까지 편승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잖아요."
"핵심을 찔렀군요."
"그리고 돈, 권력, 고급병에 매달리는 특권계층으로 치부받아 왔죠."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화나 문학의 순수성을 보다 널리 알리지 못한 것도 있지요."
"그래요, 서민들의 문화 내면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문학적 요소들을 무시하고 책만 많이 팔려는 출판업자들도 문제지요."
"맞아요, 소설의 은근한 재미보다 시사성을 부각해, 현실문제만 접근하는 것이죠."
"그것은 사실에 사실을 중복하는, 기계적 따분함으로 문학적 가치를 더 떨어뜨리는 거예요."
여사는 열변을 토해냈다. 일일이 맞는 말이다.
어쨌든 여사는 책을 많이 읽으니, 아는 것도 많았다.
도서관에 들어가, 보던 책을 반납하고 나왔다.
도서관에서 나오며 여사와 함께, 집으로 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정공은 여사의 지나온 삶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인생의 고해의 바다라고 했듯이, 그녀의 삶 자체가 그랬다.
가난한 7남매 맏이,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고생고생 말로 다할 수 없었지만, 착한 남편 하나 믿고 살아왔다.
운명의 장난인지, 시련은 또 시련을 낳았다.
남편이 폭발사고로 죽고, 젊은 나이에 자식들과 시집 식구들까지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된 것이다.
너무나 힘들고 사는 자체가 지옥이었다.
시집에서 탈출하고 싶었고, 자살까지 생각했었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꿈속에서 죽은 남편이 나타났다.
남편이 돈다발 가방을 다니는 절에 나 두었으니 찾아서 잘 살도록 하라고 간곡히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다음 날, 즉시 그 절에 찾아갔다.
주지 스님을 만나서 꿈에 있었던 이야기를 모두 다했다.
스님은 말없이 허공을 주시하면서, 스님이 방편을 말해주셨다.
먼저, 100일 기도를 시작하고, 매일 108배를 하라고 하셨다.
절을 하는 동안, 수없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스님이 시킨 대로 하고 절에서 내려와서 집으로 오니, 시댁 식구 모두가 불쌍하게 보였다.
"아! 내가 잘못생각을 했구나, 탈출할게 아니라 구원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몰려왔다.
그리고 자신이 이대로 원망과 절망으로 주저앉을 수 없다. 이를 악물고, 험한 세상을 잘 버티고 살아왔다.
시련과 역경 등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현실에 철저히 대처해 온 것이다.
이렇게 살아온 것이 불도에 매달리게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 모두가 부처님 은공으로 생각해 왔다.
온갖 유혹을 이기고 홀연히 부처님 곁으로 왔는 것이다.
그리고 여사는 그 절에 보살이 되기까지의 경위를 소상하게 정공에게 들려주었다.
"여사님! 오늘은 너무 일찍 도서관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요?"
"맞아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죠."
"네~에? 왜 기분이 안 좋았죠?"
"오늘 책을 보는데, 책에 밑줄을 그어 놓았더라고요."
"그래서요?"
"책에다 밑줄을 긋고 낙서한 것을 보면, 기분이 엄청 상하죠.
마치 내 몸에 상처를 낸 것처럼 가슴이 아파요."
"그렇죠! 그런 사람들은 책 볼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죠."
"제 꿈이 뭔지 아세요?"
"..........."
"저는 죽기 전에 도서관을 하나 차리는 게, 꿈이에요."
"오~우!"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책을 사죠."
".........."
"물론, 헌 책이고 새 책이고 모든 책을 수집하고 있어요."
"그럼, 저도 여사님 꿈을 도와드리고 싶어요."
"그래요? 어떻게요?"
"책을 구해 드리면 되겠지요?"
"정말 고맙죠."
이야기를 하며 걷는 동안, 어느새 여사의 집에 도달했다.
"여사님! 좋은 하루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안녕히 가세요."
정공은 여사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며, 여사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작가는 싫다? 그렇지만, 극적인 자신의 삶 자체를 걸작품으로 만든 작가였다.
최강여사, 원더우먼, 슈퍼우먼 등 관련 수식어를 총동원해도 모자랄 정도로 대단한 여사였다.
그녀의 말 한마디는 그야말로 희극이었고, 비극이었다.
파란만장한 그녀의 삶에서 나오는 인생살이 연주곡이었다.
어떻게 묘사를 그렇게 잘하는지, 어떻게 미사여구를 적절히 딱 맞아떨어지게 하는지...
그리고 인고의 삶과 심오한 종교의 세계까지 적나라하게 몸소 체험한 여사였다.
정말이지, 그녀는 이미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맑은 영혼을 지닌 작가다.
여사는 인생과 종교를 고찰하며, 스스로 진정한 보살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보여준 끈질긴 생명력, 고결한 사상이 오롯이 전해옴을 느꼈다.
그리고 삶의 원동력이 되었던 불타의 삼보에 귀의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언젠가 고승이 설한 <아미타경>을 설하며 전한 법문이 생각났다.
"부처님들이 보호하신다~
우주법계 셀 수 없는 부처님들께서 <아미타경>을 보호하신다~
그렇게 많은 부처님께서 보호하고 계시니 염불 하는 사람은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일이 없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뜻밖에 닥칠 위험에 대비해 여러 가지 보험을 든다.
자동차보험, 생명보험, 산재보험 등등.....
여러분이 <아미타경>에 의지해 아미타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의 명호를 가슴에 모시고 부르는
염불 수행은 마치 '극락왕생보험'에 든 것과 같다.
이 보험은 달마다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재산이 많거나 적거나, 또 남녀노소 관계없이 누구나 들 수 있다.
언제든 들어 놓기만 하면 다시는 참담한 윤회의 고통에 빠지지 않는다.
보험 가입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이 신비한 주문 같은 부처님 명호를 아기 때부터 귀에 대고 속삭여 주어도 좋다.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