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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나 노 Aug 16. 2024

마음 훈련 6-애견 동반 카페를 애견 없이 왔습니다.

강아지 금단현상

지난주 금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폭풍처럼 밀려드는 불안감에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내렸다.

손을 벌벌 떨면서 대충 잠옷을 갈아입고 5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무작정 집 밖을 뛰쳐나왔다.

갈 곳이 딱히 없어서 두 달 전 강아지 별로 소풍을 간 우리 메리가 좋아했던 공원의 벤치에 앉았다.

산책을 나온 어르신들은 이른 아침부터 훌쩍이는 젊은 처자를 흘깃 보며 지나갔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오늘도 아침에 눈을 뜨자 심장이 작게 콩콩 거리며 조금 불안한 신호를 보내왔다.

잠을 자보려 애를 썼지만 잠이라는 건 부르려고 하면 꼭 더 달아나는 것 아니겠나.


그래서 평소 운동가는 길에 눈여겨보았던 카페를 검색해 보았다.

동네 시장골목 어귀에 작게 자리 잡은 단란한 카페.

이곳은 애견동반 출입이 가능한 곳이다.

비록 나의 강아지는 지구상에 없지만 다른 강아지의 털결이라도 만지고 싶은 금단현상에 이곳을 찾았다.


강아지가 먹을 수 있는 멍푸치노와 간식이 있고, 개들이 환장하는 삑삑이 장난감도 있다.

그리고 카페의 한쪽 벽에는 귀여운 키링들이 자리를 잡고 쉴 새 없이 매력을 발산한다.

요즘 날이 더워 산책 시간이 바뀌는 바람에 상주견인 크림이는 함께 오지 못했다고 한다.

오, 이런. 오늘은 강아지 금단현상을 다른 집 강아지로 해소하려고 했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이 시간쯤 매일 오던 단골 강아지도 오지 않는다며 사장님은 멋쩍게 호호 웃으셨다.


단호박수프를 시키고 ‘나 좀 데려가시오’ 눈빛을 보내는 키링들에게로 다가갔다.


모두 매력적이지만 역시 강아지(인 듯 곰돌이인 듯) 키링은 못 참지!

처음엔 세 번째 분홍튜브를 타고 있는 강아지가 눈에 들어왔는데

가만가만 보다 보니 첫 번째 노란 도넛 튜브를 타고 있는 녀석이 우리 메리를 닮아있었다.


서둘러 사진을 찍어서 친한 친구들 단톡방에 보냈다.

“노랑이랑 분홍이 중에 골라줘!”

“노랑이, 노랑이가 좀 더 메리스러워.”

“나도! 노랑”

“노랑”


그렇게 노랑이는 내게 입양 오게 되었다.

난 인형을 사면 꼭 이름을 지어주는데 이 아이는 메리와 많이 닮아있어서 더욱 고심했다.

집에 있는 메리 2(메리투)의 뒤를 이어 메리 3의 의미로 메삼이, 리삼이를 생각하다가

그냥 ‘노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 이름이 가장 이 녀석 다우니깐.


노랑이를 앞에 두고 단호박 수프를 맛있게도 먹었다.

꼭 내가 밥을 먹을 때 식탁 밑에 어슬렁 거리던 메리의 감촉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노란 선글라스에 노란 도넛 모양의 튜브를 탄 노랑이는 볼수록 귀엽다.

마치 메리가 천국의 강아지 별에서 튜브를 타고 더운 이 여름을 시원하게 나고 있을 것만 같아 마음에 쏙 든다.


앞으로 대략 한 시간가량, 이 카페에 더 머무를 예정인데 그 사이에 어떤 강아지가 오진 않을까 기다리는 중이다.

글을 쓰다 딸랑-이는 알림종 소리에 카페 사장님보다도 먼저 고개를 돌려 손님을 보았는데

손님의 품에 안겨있는 건 다름 아닌 가방이었다.


아아, 부드러운 털결. 초롱한 까만 눈, 촉촉한 킁킁 코, 말콩한 젤리 발바닥, 꼬질꼬질 꼬순내.

이 모든 것이 너무너무 그리워 다른 집 강아지를 탐내기까지 하는, 강아지 금단 현상을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어제는 유튜브로 ‘이웃집 수달’을 보다가 깜빡 낮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예비신랑과 내가 누워있는 그 사이로 메리가 파고들었다.

메리는 언제나 그랬다. 늘 예비신랑의 품 속에서 자는 걸 좋아했다.

가스나, 나 혼자 잘 땐 단 한 번도 내 품에 안겨 자지 않았으면서-!

메리는 예비신랑의 겨드랑이 밑에 누워 가만가만 숨을 쉬었다.

메리의 숨이 점점 약해지는 순간이었다.

실제로 보냈던 날처럼 메리의 숨소리가 차츰 줄어드는 게 느껴져서 하염없이 메리의 작고 둥근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강아지가 떠나면 가장 그리운 것이 촉감이라고 하는데, 생생하게 느껴지는 내 꿈속 촉감에 감사하는 순간이었다.

마음이 미어져서 흐으윽 하고 울다가 입 밖으로 내밀어진 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슬펐지만 좋았다.

그렇게나 간절히 다시 한번만 쓰다듬고 싶었던 메리를 꽤나 실컷 쓰다듬었으니 너무 좋았다.

꼭 끌어안고 싶은데 평소에도 안으면 발버둥을 쳤던 메리는 꿈에서조차 진한 포옹을 허락하진 않는다.

아무렴 어때! 너를 다시 봐서 좋았어. 네 보드라운 털결과 귀여운 뒤통수를 쓰다듬을 수 있어서 행복했어.


내 머릿속 불안이 와 슬픔이가 싸인을 보내올 때마다 이 카페를 종종 찾아와야겠다.

아마도 오늘은 강아지 금단현상을 해소하긴 틀린 것 같다.

다른 날 우연이라도, 이 잔잔하고 단란한 카페에서 강아지를 마주한다면 꼭 끌어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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