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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나 노 Aug 21. 2024

마음 훈련 8-전 직장에서 호랭이 새끼를 키웠습니다.

용서는 나를 위한 용기

작년 4월 말, 이전 직장에서 퇴사를 했다.

자궁내막증 경화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퇴사하는 것으로 다들 알고 있겠지만, 90%는 홧김이었다.

홧김의 원천은 후임 강사였다.

그녀와는 도무지 더 이상 일을 같이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물론 돈욕심으로 그득한 원장님 밑에서 더는 배울 것이 없다는 확신이 들어서이기도 했지만.


22년 말, 고등부 팀장이었던 내 밑으로 후임 강사가 들어왔다.

그녀의 첫인상은 압도적이었다.

170cm이 넘는 키에 이목구비가 큼직하고 시원한 외모.

158cm로 작고 이목구비도 오밀조밀한 나보다는 스타강사로 성공하기에 훨씬 제격인 것만 같은 사람이었다.

학원강사로 8년 차이던 내게, 경력이 3년도 채 되지 않은 그녀의 존재는 가히 위협적이었다.


나는 이제 막 고등부를 시작하려는 학원에서 ’ 부원장, 팀장, 데스크, 강사’의 4인분을 해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경력에 비해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4인분을 일하느라 매일 고군분투했다.

그녀는 학원 일과 관련된 모든 것을 내게 물어보았다.

파일을 한 번 보내주면 잘 저장해 둘 것이지, 같은 파일을 몇 번이고 또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또무새였다.

제발 저장을 잘해두라고 열두 번쯤 말했을 즈음, 그녀가 드디어 나를 파일 탐색기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녀의 MBTI는 ENTJ, 나는 ISFP.

우린 달라도 너무 달랐다.

외형뿐만 아니라 내면까지도 정반대였던 거다.

일은 일이고 내 삶은 내 삶, 쉬는 게 참으로 중요한 나와는 달리 그녀는 일에서 성취감을 느꼈다.

하지만 정작 일을 많이 하는 건 나였다.

이래저래 학원 잡무에 시달리는 데다 그녀의 사생활에 대한 고충까지 들어주느라 정작 내 수업의 퀄리티는 자꾸만 떨어졌다.

수업을 준비해야 할 시간에 내 강의실로 와 어느 날은 수업에 관련된 질문을, 어느 날은 남자친구와 헤어진 얘기를 했다.

그땐 ‘팀원의 힘든 마음까지도 잘 보살피는 게 팀장의 몫.‘이라는 마음으로 알맹이 없는 이야기를 다 들어줬다. 미련하게.

“이런 것 정도는 알아서 하세요~”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그녀의 뒤치다꺼리를 참 많이 해줬다. 정말 미련하게.

그리고 그녀는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뒷담, 그것이 그녀가 내게 갚은 것이다.


내가 맡은 아이들은 여학생 4명과 남학생 1명을 제외하곤 공부에 큰 흥미가 없는 아이들이었다.

나는 내 수업에 굉장히 자부심이 있고, 정말로 열심히 잘 가르친다고 생각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팍팍 늘지 않는 현실에 점점 자괴감이 생겼다.

내향적인 나는 아이들과 천천히 친해지는 타입이라 온전히 깊어지는 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반면에 그녀는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성향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쉽게 열었다.

여자아이든, 남자아이든 가릴 것 없이 아이들을 매 수업마다 안아주었고 아이들은 그녀를 참 좋아했다.

나는 다 큰 고등학교 남자아이들을 서슴없이 안아주는 그녀의 모습에 경악했으나, 그녀의 애정표현 방식은 잘 먹혔다.


어느 날, 다른 고등부 선생님이 내 강의실로 오셔서 그녀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녀의 단점은 속된 말로 ‘입이 싸다.’는 것이었다.

당장 자기에게 이득이 될 것 같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손에 넣어야 했고,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크리스천으로 사는 나는, 내가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거짓말로 속이지 않는 게 중요한 사람이었다.


원장실에 고등부가 불려 갔던 날.

원장님은 1인 4역을 하느라 지쳐있는 나를 보고도 애들을 늘리지 못한다며 큰소리로 면박을 줬다.

아이 한 명 한 명을 돈으로 보고 “오늘 장사 힘냅시다!”라고 말하는 원장에게

나는 큰돈을 벌어다 주지 못하는 장사꾼이었으니깐.


선생님과 그녀는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선생님: ”아무리 그래도 원장님이 좀 너무하시지 않으셨어요? 팀장님은 고등부 위해서 엄청 애쓰시는데.. “

그녀: ”.. 근데 원장님 말이 맞잖아요? 애들 못 늘리는 건 잘못이죠. “


차마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할 수 없다던 선생님은 앞뒤가 너무 다른 그녀와 일을 더 이상 하기 싫다고 했다.

그러니깐 그녀는 그 선생님에게는 내 뒷담을 하고, 내 앞에서는 그 선생님의 흉을 본 것이었다.

오호라, 그녀는 이제 우리의 공동의 적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참을 수 없는 배반감에 치를 떨었다.


내가 내 수업에만 집중했더라면, 당신이 도와달라고 할 때마다 바쁘니깐 알아서 하라고 했더라면,

그랬어도 당신이 나를 그렇게 무시할 수 있었을까?

‘팀장님‘으로 불리는 것 또한 너무 권위주의적인 것 같아 그냥 ’쌤‘으로 편하게 부르라고 했던 것이,

오냐오냐 다 받아주고 모든 걸 아낌없이 알려주었던 것이 한탄스러울 정도로 후회가 됐다.

그녀를 향한 나의 모든 호의와 애정이 한순간에 바스러져 버렸다. 와장창- 사르르-.


드디어 냉랭하게 그녀를 대하다가 어느 날은 도저히 안 되겠어서 그녀를 불러 왕창 쏘아댔다.

그간 같이 고군분투해온 우리의 신뢰가 겨우 이 정도였냐며, 늘 그렇게 나를 무시했었냐며.

그녀는 상처받은 강아지의 눈을 하고서, ‘저도 할 말이 많은데 하지 않을게요.’라고 하고 강의실을 나갔다.

며칠 뒤, 먼저 사과를 건넨 건 어김없이 바보 같은 나였다.

그날 그렇게 몰아붙여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니 오히려 제가 더 죄송하다는 의외의 공손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퇴사를 결정했고, 나의 동지였던 선생님도 그녀가 팀장인 학원에 있기 싫다며 동반 퇴사를 했다.

그녀는 아니나 다를까, 내 뒤를 이어 팀장이 되겠다는 야망에 차 올라 월급을 100만 원이나 올렸다.

그러나 짧은 경력으로 팀장의 왕관을 쓴 그녀는 내 빈자리를 채우느라 매우 애를 써야 했다.


그렇게 그녀를 카카오톡에서 숨겨버리고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만난 적 없었던 사람처럼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제자를 통해 그녀가 내가 사는 곳 근처의 학원으로 이직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체 왜일까. 교회에서 ‘용서’에 대한 설교를 들을 때마다, 기도를 할 때마다 그녀가 떠올랐다.

내 평생 미워했던 사람이 딱 두 명인데, 아빠를 용서하고 나자 이제는 그녀를 용서하라는 강력한 마음.


‘저는 못해요. 저는 먼저 연락할 용기도 없고 그렇게 하기도 싫어요.’

그런데 왜 자꾸만 그녀를 생각나게 하셔서 마음 한 구석을 찝찝하게 하시는지!

결국 몇 주를 고민하다가 월요일 아침, 그녀에게 용기 내어 카톡을 보냈다.

‘… 좁은 마음으로 상처드렸던 것 다시 한번 사과합니다. 어디서든 잘하실 거라 응원해요. 건강하세요!’

그리고 점심 즈음, 강아지가 반갑게 꼬리를 흔드는 것만 같은 답장이 왔다.

‘먼저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용기가 안 났어요.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선생님 생각 많이 났어요. 뵙고 싶은데 만날 수 있을까요?’


아뿔싸. 답장이 없어도 괜찮을 것만 같았는데 만나자니.

나를 깔보던 그녀를 다시 만나 점심을 먹는다고?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용서라는 걸 해보기로 했으니, 9월의 어느 날로 점심 약속을 잡았다.


그러고 나서 그녀의 근황을 다른 제자에게서 들었는데 꽤 큰 학원으로 이직을 한 모양이었다.

몇 십 명, 더 잘나가게 된다면 몇 백 명을 가르칠 수 있는 큰 학원으로!

스타강사의 길을 걷고 싶었던 그녀의 꿈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간 듯했다.

은근히 그녀가 망해있길 바라고 있던 못난 내 마음이 무게추를 단 것처럼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가 썼다는 책의 제목을 보니, 잠깐만!

이건 우리가 함께 일할 때 내가 만들었던 책 제목이었다.

‘Trinity’.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를 뜻하는 단어이자 어휘/문법/독해 세 가지를 모두 담아 가르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녀의 수업 자료로 버젓이 홍보되고 있던 필기 자료를 보니 어휘는 파란색, 어법은 빨간색, 여러 색깔의 형광펜을 쓰는 것, 화살표 수식, 심지어는 글씨체까지도 모두 나의 필기였다.

단언컨대 그건 그녀의 필기 스타일이 전혀 아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나의, 나만의 필기방식이었다.


이런 젠장! 내가 왜 연락을 했을까. 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랬는데.

시간이 지나 그녀와의 기억이 너무 미화 됐었나 보다.

괜찮을 줄 알았던 내 속이 갑자기 마구 뒤틀리면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활활 타오르는 내 뱃속 불길에 하나님은 올리브유, 포도씨유, 카놀라유를 들이부으셨다.

‘거봐, 너는 진짜 용서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지? 진짜 용서는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거야.’

제가요? 응원을요? 왜요? 제 아이디어를 훔쳐갔는데도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진짜 화가 난 대상은 그녀가 아닌 나 자신이었다.

그녀는 이전 학원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자신의 강의 책을 만들겠노라 말하며 인기 스타강사들의 책을 마구 사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만에 결실을 맺어 더 큰 바다에서 순항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건, 그녀가 (내 아이디어를 훔쳤든 어쨌든) 노력을 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일에 많은 시간을 쏟는 타입이었으니 시간의 보상을 정직하게 받은 듯했다.


그동안, 나는 시간을 꽤나 낭비했다.

스타강사를 꿈꿨던 적도 있지만 스타강사가 되기에 겁이 너무 많고 용기가 없다.

게다가 정말로 게으르고 나태하다.

책을 써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귀찮아서 차일파일 미루기만 하느라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호로록 날려먹었다.

강아지와 뒹구는 게 좋았고 틈만 나면 놀고 싶고 쉬고 싶었다.

그러니 그녀가 다니는 학원보다 규모가 작은 곳에서 여전히 나룻배를 젓는 것만 같은 나의 삶이 초라해 보일 수밖에.


아아, 하지만 나는 여전히 ‘쉬는 삶, 여유로운 삶, 워라밸’ 이런 것들이 중요한 베짱이인데 어쩌란 말이냐.

그렇다면 열심히 노력하는 그녀와 나를 비교하는 건 더 이상 무의미하다.

이런 나 자신을 뜯어고치던지, 또는 작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나는 베짱이로서 베짱이의 삶을 살아가고, 그녀는 개미로서 개미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도무지 주말엔 출근하고 싶지가 않다. 공휴일에도 편히 쉬고 싶다!

주 6일, 주말, 공휴일 쉴 새 없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대형학원은 나와 맞지 않는다.

사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나는 스타강사의 삶을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별 수 없다.

맡고 있는 아이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다, 마흔 살쯤 작은 학원이라도 꾸려서 소소하게 살아가면 된다.

(혹시 모른다! 원장이 내 천직이라 대대하게 살아가게 될지도! 하하.)


그녀와 점심을 먹는 날, 우리 관계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나는 그녀를 용서하기로 마음먹었기에

(그녀가 내 아이디어와 필기를 스리슬쩍 한 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지 고민이지만)

그녀의 앞길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축복해주려 한다.

그것이 내게도 유익이다.


아빠를 용서하면서 깨달은 것은, 용서는 ‘나’를 지키는 행동이라는 것.

용서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상대를 위한 용기가 아니라, 나를 위한 용기.

용서를 하고 얻는 평온한 마음은 생각보다 아주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용기 내서 먼저 연락한다는 내 카톡에 그녀는 자신은 차마 용기가 나질 않았다며

’선생님께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배울 점이 많네요.‘라고 했다.

이별했던 시간 동안 내 소중함을 깨닫고 성숙해진 ‘그녀’를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

나를 깔보던 당신이 더욱 승승장구하기를 응원하는, 더 성숙해진 ‘나’를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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