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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심지 Apr 05. 2021

그래서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나만 닥치고, 나만 다칠 순 없다.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하면, 일부는 대리인을 무료로 지원받을 수 있다. 노동법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서류를 제출하는데 부담을 느끼거나, 조사관의 화해 시도에 쉽게 응해버려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할 경우를 보호해주는 것이다. 지원 자격은 이렇다. 회사에서 계속 근무하는 상시 근로자가 5인 이상인 기업을 상대로 하며, 월 급여가 평균 250만 원 미만일 때 공인노무사 또는 변호사를 선임해준다.

 국선노무사를 배정받았을 때, 내 편이 생겼다는 안도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국선이 얼마나 내 일에 신경을 써줄까 싶은 경계심이 들었다.

 다행히도 선임된 노무사님은 다소 딱딱해 보이는 인상과 다르게 진심으로 나를 안쓰러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상담 중에도 계속해서 가슴을 두드려서일까. 수척해진 몰골이 대신 내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일까. 노무사님은 내게 먼저 물어오셨다. 이 건을 계속 진행한다면 회사의 작은 위법행위까지도 탈탈 털어줄 용의는 있다, 하지만 그걸 견딜 수 있겠느냐고.

 “회사가 지금보다 더 비열하게 나올 수도 있어요. 비방도 더 심하게 할 수 있고요. 그럼 더 힘들어질 텐데 괜찮겠어요?”

 회사는 책임과 보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일을 못하고 성격이 모났는지를 증명하려고 안간힘을 쓰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결심은 견고했다. 이미 충분히 비참했기 때문에.


 물론 무서웠다. 회사와 이렇게까지 싸워서 내게 남는 게 무엇 일지에 대한 두려움. 나를 더 형편없는 사람으로 만들까 봐 내가 먼저 나의 잘못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나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전투에는 어느 정도의 상처가 따르는 법. 내 몸과 마음은 끝이 없는 행군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노무사님은 내게 지인이 운영하고 있는 정신과를 소개해주셨다. 회사로부터 받은 피해를 증명하고, 또 병가에 대한 소견서를 처방받아야 했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더 심해진 것이다. 십여 년 전 우울증으로 병원을 다닌 적이 있었다. 한동안 약을 끊고 지냈는데 회사 일로 다시 재발하게 되었다. 노무사님도, 나도 우려했던 일이다. 내가 더 다칠 수 있다는 걸. 그걸 알면서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내가 조금 더 상처 받더라도 나만 닥치고 다칠 순 없다.      


 노동 분쟁 건은 나쁘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내가 가진 녹음 파일과 채용 공고 캡처 사진은 그들이 부당하게 해고를 하고, 감정적으로 전보를 시켰음을 충분히 보여줬다. 금주까지만 일하라는 말의 녹취록은 부당해고를 분명하게 증빙하고 있었다. 채용공고에서 요구하던 직무 요건을 볼 때, 전보를 보낸 부서와의 관계성이 없다는 것 역시 부당전보를 의미했다. 특히나 부당해고 직후 –계속해서 회사를 나오는- 내가 보기 싫다며 다른 층으로 전보시키겠다는 상무의 말은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돼주었다.  

 회사는 더 이상 문제가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인지 금전적으로라도 일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사실 내가 원했던 것은 원래의 자리로 복직하라는 판결이 나올 때까지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었다. 그래야 내 무너졌던 자존감이 증명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구제 신청 판정일까지는 적어도 한 달이 넘게 걸리는데 회사가 그때까지 병가를 허락할 턱이 없다. 판결이 날 때까지는 전보된 부서로 계속 출근을 해야 하는 데 내 몸과 마음 상태가 언제까지 버텨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전보에 관해서는 회사의 재량권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높아서 회사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노무사님은 또한 한 달 치 급여와 일 년치를 소분한 퇴직금으로 권고사직을 받아들이는 것이 내 건강을 위해서도 최선일 것이라고 조언해주셨다. 더 이상은 마음 다치지 말라며. 고민 끝에 나는 그쯤에서 회사와의 싸움을 끝내기로 했다.


 한 달간 노동법을 파헤치며 인권을 외치던 그 판에서는 결국 회사를 이겼다고 생각한다. 당연하듯 부당해고와 부당전보를 행했던 회사에게 회사원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 걸 보여준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난 밟힌 것에 대해 진단서를 보여줬고, 절차대로 공정하게 위자료를 받은 셈이다.      


 하지만 인권의 대전제인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에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나는 내 인격을 존중했는가? 나는 내가 가져야 할 행복을 충분히 누리고 있는가? 고용자를 함부로 내버리는 회사를 내버려 둬선 안 된다고 호기롭게 나섰지만 정작 내 감정 따위는 방치하고 있지 않았던가. 하물며 노동위원회에서도 약자인 근로자를 위해 힘든 일을 대신할 수 있는 대리인 제도를 지원해준다.  노무사님은 끊임없이 내가 버틸 수 있겠냐고, 힘들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럼에도 나는 힘든 건 참으면 된다고, 괜찮다고 무시해왔다. 언제나처럼.  

 어쩌면 앞으로도 나는 행복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일을 시작할 때도, 일을 끝낼 때도 스스로를 학대하고 있었으니. 이 불같은 열의가 나의 이십 대를 망쳤고, 또 나의 삼십 대도 망칠지 모른다. 이제 더 이상 불행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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