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으로 설레는 곳

by 호접몽

파리 퐁피두 센터에 갔을 때 때마침 <이미지의 배반>이라는 마그리트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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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1898-1967)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이며, 친숙하고 일상적인 사물을 예기치 않은 공간에 나란히 두거나 크기를 왜곡시키고 논리를 뒤집어 이미지의 반란을 일으켰다. 장난기 가득하고 기발한 상상이 돋보이는 그의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관습적인 사고의 일탈을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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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파이프 그림을 보며 파이프가 아니라고 설명을 덧붙인 이 작품은 '이미지와 대상, 언어와 사고 사이의 필연적인 관계를 전복시킨다'라는 누군가의 설명을 보고 나서야 '아, 그렇구나!' 했다. 내가 미술작품이나 시나 소설을 접할 때 이 작품에 심오한 뜻이 있는데 내가 미처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그런 생각 때문에 더 멀어지는 경향이 있다. 괜히 내가 이해력이 부족한 듯한 생각에 주눅이 든다. 때로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콕 집어서 알려주는 것이 마음 편할 때가 많다.


하지만 여행에 있어서는 내가 그 의미를 만드는 편이다. 별것 아닌 걸로도 의미를 두기도 하고, 어떤 곳은 언젠가 한 번 혹시 전생에 이곳에서 살았던 것은 아니었는지 얼토당토않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이니 부담이 없어서 좋다. 사실 그림이나 시, 소설 등의 작품도 그렇게 가볍게 대한다면 오히려 더 친밀감을 느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철학자의 여행법』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지도에서 읽을 수 있는 어떤 단어, 이름, 장소, 지역이 갑자기 우리의 주목을 확 끌어당기는 순간이 있다. 우리 기억 속에 뿌리 깊이 존재하는 무언가가 이런 이름들을 통해서 갑작스럽게 어떤 감정을 유발시킨다.

『철학자의 여행법』 중에서




나에게 그런 여행지를 생각해 보면 인도의 '마말라푸람'이 떠오른다. 여행지의 이름이 나를 확 잡아끄는 느낌이었다. 그곳은 가기도 전에 이미 내 마음을 들뜨게 하고 활력을 주는 곳이었다.



가이드북에 보면 마말라푸람은 작은 어촌마을이라고 했다. 하지만 직접 가보니 생각처럼 그렇게까지 작은 마을은 아니었다. 인도의 다른 곳들이 워낙 커서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것일 뿐이었다. 마말라푸람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가 느껴지는 마을이었다.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이 대를 이어 전해주는 예술에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 그런 곳이었다.



마말라푸람에서 먼저 간 곳은 '다섯 수레'를 의미하는 '판치 라타스'다. 수레가 하나의 바위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경이롭다. 그곳은 해변사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해변사원은 지금으로부터 100년쯤 전에 모래에 쌓여있던 것을 영국 정부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인간의 손에 닿지 않고 모래 속에서 긴 세월을 보냈구나! 천년 세월을 기다리며 견디다가 이제야 만나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고맙고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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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저 간 큰 사람들 좀 보게?" 무방비 상태로 걸다 가다가 깜짝 놀랄 광경을 보았다. 금방이라도 굴러떨어질 것 같은 거대한 바위 밑에서 사람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크리슈나버터볼은 1500년 전의 것인데, 훗날 영국 정부에서 코끼리 일곱 마리로 밀어보았지만 밀리지 않았다고 한다. 정말인지 아닌지는 믿거나 말거나. 그리고 바위 밑에서 태연하게 앉아있는 사람들은 진정 강심장이다.



크리슈나버터볼이 있는 언덕에서 내려가 좀 더 걸어가다 보면, '아르주나의 고행상'이 있다. 그냥 보면 조각일 뿐이지만, 이 안에 들어있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조각 속 아르주나는 시바신에게 시위하며 한쪽 다리를 들고 고행 중이다. 홀쭉한 배에 한쪽 다리를 들고 고행 중인 자가 아르주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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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고양이가 아르주나를 따라 하고 있는 모양새다. (사진 왼쪽 밑) 자세히 보면 고양이 배가 볼록하다. 고양이의 왼쪽 발아래에는 쥐들이 있는데 이게 고양이의 도시락이란다. 고행 흉내를 내다가 몰래 도시락을 까먹는 고양이라니! '나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라고 시치미 딱 떼고 있는 고양이의 표정을 보니, 학창 시절 몰래 도시락 까먹던 그 시절 그 장면이 떠올라 쿡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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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 대해 생각해 볼 때에 그냥 이름이 마음에 든다는 단순한 이유도 괜찮다. 때로는 조목조목 이유를 댈 수 없더라도 그 이름만 떠올리면 마냥 기분이 좋고 마음을 가득 채우는 그런 곳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탈리아의 시에나가 그런 곳이라고 했고, 나는 지금 문득 인도의 마말라푸람이 떠올랐다. 또 어떤 곳이 있었는지 차근히 기억을 더듬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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