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명절 연휴에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영화는 상영일로부터 오래오래 지난 옛날 영화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은근 최근 영화도 상영해주는 것이 아닌가. 이번 설 연휴에는 아예 알람을 맞춰놓고 방영 시간을 기다렸다. 여기에서 나와 광고의 밀당이 시작된다. 시간 맞춰 텔레비전을 켜면 5분에서 10분 정도 광고를 보아야 한다. 광고가 보기 싫어서 일부러 10분 정도 늦게 켰더니 정시에 시작해서 앞 장면을 놓쳤던 기억이 있는지라 이번에는 방영 예정 시간에 켜놓았더니 지긋지긋하게 광고를 보고 난 후에야 영화가 시작되어 힘이 빠졌다.
이 모양새가 인도에서 버스나 기차를 대할 때의 마음 같았다. 인도에서는 버스든 기차든 연착이 기본이다. 언제 올지 정확하게 안내해 주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그냥 취소되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정확한 시간에 출발하는 경우도 있고,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하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10분 정도 늦겠거니 생각하며 느릿느릿 갔다가는 이미 버스나 기차가 떠나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날도 예상보다 두어 시간 일찍 도착해서 벌어진 일이다. 다르질링에서 트레킹을 한 후 캘커타까지 기차로 이동하고 밤새 델리까지 밤기차로 달렸다. 아침 아홉 시경에 도착 예정이었으니 뉴델리에 있는 코너트플레이스에서 열 시쯤에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던 것이다. 그 정도면 늦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이른 아침에 도착하고 만 것이다.
몇 날 며칠을 씻지도 못한 데다가 밤기차를 타고 이동했으니 노곤함에 지쳐 있었는데 도심의 아침은 늦게 시작되었다. 그 시간에 문을 연 상점도 없었고 마땅히 기다릴 만한 곳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애매하게 남은 시간을 그냥 그곳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결국 적당한 바닥 한 곳에 자리 잡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점점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올려다보니 차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나의 몰골은 거지꼴이 다 되었고, 근처에 보니 거지로 보이는 사람도 한 명 자리 잡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무시하는 눈빛, 차갑게 내려다보는 도도함이 나를 짓눌렀다. 거지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예전에 도법 스님의 강연을 담은 책 『망설일 것 없네 당장 부처로 살게나』를 읽다가 "부처는 상거지였다"라는 표현을 보았다. 매일 문전걸식을 하였고, 초기에는 365일 노숙을 했다고 하니 그렇게 말할 만하다. 예수도 마찬가지다. 태어나서 누운 곳은 가축들이 이용하는 구유였고, 특정 직업 없이 떠돌아다녔다. 기적을 행하는 등의 문제는 차후에 생각할 일이고, 과연 살아있는 부처가, 살아있는 예수가 내 주변에 있다면 나는 그들을 알아볼 수 있을까 의문이다.
다른 이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이 성자의 기본자세일 것이다. 그런데 그거, 쉽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거지보다 못한 마음 하나 붙들고 자존심이라는 이름으로 자아를 키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외모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유연한 사고를 거지 체험으로 어렴풋이 깨달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