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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Oct 27. 2024

2. 퇴고 DNA? MBTI? 직업병?

 '퇴고의 즐거움'이라는 단어를 쓴 메모지를 보며... 몇 주 동안은 저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산책하면서, 설거지하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제가 느끼는 즐거움의 원천을 알아야, ‘퇴고의 즐거움’을 전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아무래도 직업병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확실히, 틀린 글자가 있으면 거슬리기는 합니다. 하지만 틀린 부분을 지적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타입은 아닙니다. ‘메일메일 네가 보고 싶어.’같은 떨림 가득한 고백성 문자메시지에 이런 식으로 오타를 포함해 보내는 남자친구가 있었던 시절, 한동안 머릿속이 ‘메일’이라는 단어로 가득 차기는 했지만…. 


 그런데, 저도 늘 올바르게 쓰는 편은 아닙니다. 오히려 맞춤법, 오타 같은 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푸캌핳핳하핫ㅎ핰켁쿨럭’과 같이 장난기를 가득 담아 우리말을 쓰고 싶다는 충동이 일 때도 있습니다. 실제로도 받아줄 사람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있고요. 늘 똑같이 쓰는 우리말에서 상황을 더 잘 표현하면서도 신선한 의성어, 의태어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합니다. 


 제가 퇴고하면서 얻는 즐거움이 만약 ‘직업적으로 단련된 능력의 우월함을 느끼는 것’이라면 어떡하나 걱정도 해봤습니다. 만약 그런 거라면 좀… 오만한 생각일 테지만, 저에게는 퇴고가 ‘일’이니까요. 언젠가는 일하다가 정말 힘이 들면 그렇게라도 자기최면을 걸어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게 얼마나 큰 기쁨을 줄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이것도 탈락!




 우연히 MBTI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저의 MBTI 성격유형검사 결과에 따르면 저에게는 ENFJ, ENTJ가 반반 치킨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뭐, 검사 결과는 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고 들었지만, 이 알파벳들이 가리키는 것은 유년기부터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해결해나가면서 생기는 적응기제라고 볼 수 있답니다. ‘해결’이라고 하는 것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해결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 못 하고 버티는 것도, 참지 못해 울분을 터뜨리는 것도 ‘해결’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래서인지, MBTI는 가끔 유년기의 어떤 추억들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것 같아요. 여러분도 MBTI 검사를 해보셨다면 검사 결과를 주변 사람들과 나누면서 자신과 타인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잠시라도 가져 보시기를 바랍니다. 인터넷에 무료로 검사를 할 수 있는 사이트(https://www.16personalities.com/ko)도 있으니까요. 재미로만 보셔도 좋습니다. 철석같이 믿는 기업들이 있다고 들었지만, 그건 논외로 두자고요. 


 신빙성이 어느 정도 인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16종류보다도 훨씬 많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역사와 상황과 선택이 있겠죠. 어떤 것에 마음을 쓰거나 쓰지 않는 일도 결국 내 마음이 결정하는 것이지, 몇 가지 지표로 비추어낸 4개의 알파벳만이 내 이름표를 대신하고 내가 걸어갈 길을 좌우하는 것은 절대 아닐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MBTI와 같은 성격유형검사 도구들의 인기는 유효합니다. 이런 도구들의 유행은 사람에 대한 관심과 연구에서 출발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기 때문이지요. 나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었다면 우리는 이런 테스트를 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겁니다. 때때로 우리는 그 4자리의 알파벳을 보고 상대방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도 하지요. 


 저는 퇴고 전문가로 활동하기 전에도, 방송작가이기 전에도, 막연히 작가의 꿈을 키우던 학창 시절과 그 이전의 시기에도, 뭐랄까, ‘퇴고 DNA’라고 해야 할까, 그 비스름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DNA’라고 해서 그 사람에게만 있는 특별한 무언가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과도 비슷합니다. 인류의 조상이 살던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는 고소공포증이 현대의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 내재해 있는 것처럼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위험을 느끼는 본능부터 인간이 타고난 호기심, 질투,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고자 하는 욕망까지... 이것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느낌, 생각, 마음, 욕구, 꿈, 태도, 자세… 이 단어들은 모두 어떤 의지나 감정을 일컫는 단어 옆에 붙여 놓으면 잘 어울릴만한 표현들이지요. 자기계발서를 자주 읽어서인지, 이들 중 몇몇 단어들은 나에게 없는 것을 ‘영끌’ 해야만 겨우 작심삼일만큼 가질 수 있는 일종의 도구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저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퇴고의 즐거움을 만날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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