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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네피에 Sep 26. 2023

이 보통을 끝내줘

초단편

"보통이 가라앉지를 않아요."


남자는 접수데스크 앞에서 한참을 서있다가, 결국 말을 건넸다. 남자를 없는 사람처럼 대하며 스마트폰을 두드리던 미모의 간호사가 폰을 내려놓고는 한바탕 흐드러지게 기지개를 폈다.


"어.디.에.뒀.더.라. 여.긴.가.저.긴.가."


간호사가 멜로디컬하게 말을 이어가며 이리저리 데스크 주변을 뒤지더니, 마침내 명함 하나와 볼펜을 데스크 위에 '딱' 하고 내려쳤다.  


남자가 흠칫하며 휘청이는데, 간호사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남자를 째려봤다. 눈치를 보던 남자가 볼펜을 집어 이름과 주민번호를 쓰려는데 간호사의 눈과 미간이 점점 더 찌푸려졌다.


"안궁금하세요?"

"네? 뭐... 뭐가요?"


간호사가 아래턱을 쭉 빼서 명함을 가리켰다.


"이거요?"


간호사의 얼굴이 바비인형처럼 가식적인 미소로 변했다. 남자는 후다닥 명함을 뒤집었다.


[슈퍼그라 30정 1통 6만 효과보장 010-XXXX-XXXX]


"이게 무슨,"

"유나니 보통전문병원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극심한 보통에는 저희 병원이 최고예요. 저희 선생님이 보통관리전문의로 한국에서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니까요. 저도 우리 선생님한테 진료 보거든요. 이제 보통따위는 없답니다."

"보통이 전혀 없으셨을것 같은데."

"저도 만성보통 환자였어요, 매일 보통스러워서 힘들었는데 저희 선생님 만나고 많이 좋아졌죠. 우리 선생님이 진료를 진짜 잘보세요."


그때, 안쪽 어딘가의 방문이 열리며 간호사들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어서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복도를 타고 가까워지더니, 가운 단추가 터질듯한 푸짐한 털보 의사 하나가 나타났다. 모델워킹에 심취해 걸어오던 의사는 터닝 동작과 함께 진료실로 미끌어져 들어갔다. 남자는 숨을 멈추고 간호사와 진료실 문패를 번갈아 보았다. 남자는 결국 몸을 돌렸다.


"어디가세요, 접수끝났어요."


어느새 간호사가 남자옆에 바짝 붙어 팔짱을 잡아끌었다. 방긋 웃는 간호사의 앞쪽 어금니에 금박이 빛났다. 무언가 쓰여있어 자세히 보니 'GOLD'가 각인되어있었다. 금빛 때문인지 빛나는 미모 때문인지 혼란스러운 사이 남자는 어느새 소파에 납치되었다.  


"잠깐 여기 앉아계세요. 앉을 때 소리 나니까 놀라지 마시고요."


남자는 앉으려다 말고 엉거주춤한 포즈가 되어 고개를 돌렸다. 간호사가 입모양으로 '장난, 장난'하며 웃었다.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털썩 앉는데, '뿌악!' 하는 단단한 방구소리가 병원 안에 영롱히 울려 퍼졌다.


"김간호사 무슨 일이야! 전쟁난거야?"


기다렸다는듯 진료실 문이 열리고, 털보 의사가 소방용 도끼를 들고 튀어나왔다. 어느새 멜빵 청바지와 체크무늬 남방으로 갈아입은 의사의 모습은 재연프로그램에서 본듯한 과장된 연기였다. 남자는 발만 동동 구르며 의사의 눈을 피했다.


"보통스럽죠?"


시선을 피하던 남자에게 의사가 다가오며 말했다.


"부담스럽습니다."

"그게다 보통스러움 입니다. 어서 따라오세요, 진료실로."


남자는 간호사를 원망스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간호사는 양손에 주먹을 쥐고 소리없이 '화이팅'을 외쳤다.


"김간호사 도끼말고 전기모기채 같은 현대적인 걸로 바꿉시다, 너무 무거워."

"컵셉충돌 때문에 안돼요."


남자는 그들의 대화를 넋 놓고 듣다가, 결국 체념한듯 천천히 일어나 진료실로 향했다.


진료실 안은 어린이집 같았다. 안전매트가 깔려있었고 형형색색의 장난감들이 가득했다. 한쪽 벽에는 '보통 없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나가요'라는 슬로건이 적힌 문구가 보였고, 그 밑으로 코스프레를 한 의사와 간호사의 모습이 액자에 담겨있었다. 믿기 싫었지만, 마이클 잭슨과 마를린 몬로였다.



"앉으세요."


의사가 가리킨 곳에는 세발자전거가 있었다. 남자는 무언가 물어보려다가 체념하고 세발자전거에 올라탔다.


"굴리세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남자는 이미 발을 굴러 세발자전거를 움직이고 있었다. 조금씩 속도가 붙기 시작하자, 자전거 바퀴에서는 LED 조명이 빛나기 시작했다. 불빛의 점멸에 따라 '띠리리리 띠리리리리'하고 익숙한 베토벤의 클래식이 흘러나왔다. 남자는 금새 리듬에 맞춰 발을 구르고, 리드미컬한 LED불빛에 미소를 짓더니, 진료실 끝까지 다달아서야 멈췄다. '하, 하' 하는 숨소리만 고요히 울리던 찰나, 남자가 벌떡 일어나 돌아섰다. 그는 웃고 있었고, 눈물이 그렁했다.


"보통이 사라졌어요!"

"뭐라고요!"


의사가 어느새 메가폰을 들고 진료실 반대편에서 소리쳤다.


"보통이 사라졌다고요!"

"더 크게!"


남자는 다시 세발자전거에 올라카 의사에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래봐야 1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급정거를 하려다 결국 세발자전거가 뒤짚어졌다. '악'. 남자는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무릎으로 바닥에 떨어진 남자는 소리를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무릎을 잡고 눈물을 찔끔 흘리던 남자에게 의사가 다가와 앉더니, 온화한 표정으로 무릎에 '호'를 해주었다.


"세발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본 적 있습니까?"

"처음이에요."

"환자분의 보통은 끝났습니다. 바로 집에 가지 마시고, 돌아다니면서 안정을 피하세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남자는 무릎을 절뚝이며 진료실을 나섰다. 문을 닫기 직전, 남자가 급히 다시 진료실로 들어갔다.


"선생님, 극심한 보통이 다시 찾아오면 어떻게 하죠."

"진통제 처방해 드릴 테니까, 약국에 들러서 데려가세요. 그래도 혹시 가는길에 급성보통이 발생하면, 응급처치의 일환으로 걸음걸이를 바꾸세요."

"예를 들어 어떤,"


의사는 엉거주춤 뒤로 걷더니, '후' 하고 소리를 지르며 손을 허공에 찔렀다. 손가락 끝이 향한 곳에 코스프레 액자가 보였다. 의사가 남자에게 윙크했다. 남자도 생애 처음으로 한쪽눈만 감았다.


진료실 문을 닫고 나오자, 간호사가 쌍따봉을 날리며 다가왔다. 남자는 이제 그 어떤 보통도 없다는 생각 때문인지 놀라지 않았다. 간호사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귓속말을 건넸다.


"이메일로 동영상 보내드릴까요?"


순간 번뜩 정신이 든 남자는 간호사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옷매무새를 다듬고 머리를 쓸어 넘기던 남자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다시 간호사를 바라봤다.


"무.. 무슨 동영상이요?"


간호사는 수줍은 표정을 짓더니 데스크에서 태블릿을 꺼내와 남자 앞에 섰다. 떨리는 입모양이 이미 '하나, 둘,'을 세고 있었다.  


"잠깐만!"


남자는 양손으로 태블릿을 밀치며 고개를 돌렸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간호사는 꺄르르 웃었다. 그때 태블릿에서 익숙한 신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까 넘어지신 거. 명작이에요."

"아."



처방전을 들고 병원을 나선 남자는 비틀거리며 가까운 벤치를 찾아가 앉아 크게 심호흡을 했다. 확실한 건 더이상 보통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다시 보통이 재발할까 봐 얼른 약국으로 향해야 했다. 초조해진 남자는 얼른 약국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약사가 흰 가운을 벗고 자신의 외투로 갈아입는 중이었다.


"진통제 받아야 해서요."

"끝났는데요."

"죄송하지만, 오늘 꼭 받아야 합니다."

"처방전 있으세요?"

"여기, "


남자의 처방전을 받아본 약사는 찬찬히 처방전과 남자를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혀를 차던 약사는 끝내 남자에게 물었다.


"지금 비글, 코카 스파니엘, 슈나우저 이런 애들이 하나도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나요, 당장 오늘 저녁에라도 보통이 찾아오면, "

"일단, 오늘은 이거 가져가셔서 보통이 시작되시면 바로 작동시키세요."


약사가 건넨 쇼핑백을 받아 든 남자는 조심스레 안을 들여다보았다. 남자는 빙긋 웃었다. 약사가 말했다.


"그 정도면 확실하죠?"


웃는 얼굴로 약국을 걸어나온 남자는 전처럼 걷다가 몇걸음 못가서 멈춰버렸다. 잔뜩 구겨진 표정으로 호흡이 거칠어지던 남자는  '훽'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는 남자는 뒤로 걷기 시작했다. 그가 생각한 문워크는 원본과 많이 달랐지만, 행인들이 웃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웃음에 덩달아 흥이 오른 남자는 점점 더 그럴싸하게 문워크를 딛기 시작했다.  남자는 자신에게 더 이상 아무런 보통도 남아있지 않다는것을 확신할수 있었다. 


"어, 어. 저기 저 사람."


'끼이이익' 하는 날카로운 브레이크 마찰음 끝에, '퍽' 하는 짧고 둔탁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남자의 몸이 하늘로 부웅 날아올랐다. 모든 것이 멈춘듯한 시간 속에서, 남자는 보통으로부터의 자유, 특별함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 어떤 지루함도, 진부함도, 당연함도 없는 보통없는 순간이었다. 남자가 들고있던 쇼핑백에서 미러볼이 튀어나와 반짝반짝 빛나며 날고 있었다.



빨강, 파랑, 보라, 초록, 알록달록한 동그라미가 사거리의 건물벽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한 건물 벽으로 동그라미들이 모여들고 점점 커지더니,  '퍽' 소리와 함께 모두 사라져버렸다.

남자는 마침내 보통없는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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