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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후반전에 쓸 새 이름, 준비완료!

어린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다. 그래서 내가 가진 가장 오래된 기억들은 산이며 들에서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던 게 대부분인데, 늘 그 배경에 깔려있던 게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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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풀. 단풍잎처럼 생긴 것이 거칠거칠 까슬해서 손이며 무릎이며 스쳤다 하면 따가운 게 제법 오래 가고 핏방울이 맺히기도 하던.


문제는 이 풀이 산이며 들이며 빈터만 생겼다 하면 무서운 속도로 번졌다는 건데, 이걸 피해서 논다는 게 어린시절의 나에겐 꽤나 성가신 일이었다. 한참 놀고 해질무렵이면, 쓸린 데다 땀까지 흘려서 쓰라린 팔다리를 긁어대며 저건 이름이 뭘까 하면서 집에 가곤 했다. 결국 이름은 알아내지 못했고, 오랜시간 잊고 지냈다.


그러다 이번 여름 일본 여행갔을 때, 그 낯선 홋카이도 땅에서 익숙한 모습을 발견하곤 부리나케 스마트렌즈로 검색해봤다. 한삼덩굴 또는 환삼덩굴이라 불리는 한해살이풀이란다. 알러지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줄기는 섬유로, 열매는 약재로 이용된다고. 특히 항염, 항산화, 이뇨, 해독, 혈압조절에 좋단다. 꽃말은 '엄마의 손'이란다. 먹고 사느라 거칠고 억세진 엄마의 손같아서 그런 꽃말이 붙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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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덩굴, 환삼덩굴을 검색해보다가 새삼 이름이란 건 그런 거구나 깨닫는다. 그저 성가신 잡초라고 40년이나 생각해왔는데, 이름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그 쓸모와 짠한 꽃말까지 기억하게 하는. 다른 것과 구별해주고, 의미를 얻게 하며 존재가치를 지니게 하는.


사실 나는 얼마 전 개명을 저질러(!)버렸다. 꽤 오랜시간 고민하다가 인생 절반쯤 살고나서야 겨우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전반기는 옛 이름에 담았고, 이제 새 이름에 후반기를 싣는다. 과연 어떤 의미를 갖게 되고 어떻게 다른 이들과 구별될까. 아무 것도 예측할 순 없지만, 적어도 생채기를 내는 무명의 잡초가 아니라 어디서든 쓰임새 있는 약초로 기억되길 기대해본다. 왠지 엄청난 후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


"여보, 평생 고민만 하던 걸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건 당신의 응원이 결정적이었어. 인생 중간에 제대로 마침표 하나 찍었으니 더 멋지게 살아볼게!"


"개명 축하해! 이름이 바뀐만큼 삶도 당신이 바라는 대로 바뀔거야. 두고 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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