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가 없다. 줄곧 비혼주의로 살았고, 어쩌다 뒤늦게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룬 게 마흔 둘. 서로를 자식처럼 생각하며 3년째 살고 있다.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이 나이에 아이가 없다는 걸 의아하게 여기곤 하는데, 나 역시도 평생 모르게 될 '엄마 마음'이란 게 뭔지 가끔 궁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사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에 부치니까.
얼마 전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세바시'에 나온 진서연 배우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는 팬들에게 "어떻게 자존감 있게 살 수 있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 답으로 '엄마적인 사고'를 든다고.
어릴 적에 부모님이 많이 바쁘셨기 때문에 응원이나 사랑을 받는 게 늘 부족했던 그는 자기 자신에게 엄마가 되어주기로 했다고 한다. 부모에게 얻을 수 없다고 포기하기엔 내가 너무 소중했기에 내가 내 엄마라고 생각했다는 것. 내 자식 가장 좋은 걸 먹이고, 입히고, 시키고, 가장 좋은 곳에 데려가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본인에게 썼더니 정말 스스로를 잘 돌보게 되었단다.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도 내가 내 엄마라고 생각하면 오롯이 나를 위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고.
"저를 제가 키운다고 생각을 해요. 내가 내 엄마야."
자신감이 넘치는 그의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에 자기관리에 철저하고 늘 당당해보이는 모습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의 말을 자꾸만 곱씹게 됐다. '엄마적인 사고'란 게 무엇일까. 어떤 걸 엄마의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내 기준으로 정의해보건대 아마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관심과 신뢰와 애정을,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로, 내가 견딜 수 있는 가장 긴 시간동안 쏟아주는 것. 어쩌면 이게 내가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일지도. 불가능해보이지만, 세상의 엄마들은 그런 존재들이었던 것 같다.
요즘 나는 10대, 20대 때도 안 했던 진로 고민을 호되게 하고 있다. 아니, 고민의 시작점도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는 편이 맞겠다. 결국 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이 완벽한 맞춤형 문제 앞에서 나는 끝이 없는 나머지 공부를 하고 있는 기분이다. 참 못났다.
이럴 때면 늘 그래왔듯이 나는 나에게 도끼눈을 뜬다. 힐난하며 구석에 몰아세운다. 과거의 실패와 후회를 묻어둔 판도라의 상자를 연다.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으려 나에게 가혹해질수록 오히려 나는 더 불쌍하고 가여운 존재가 된다. 그래서 자라지 못하고 여전히 어리다. 지겹고, 지친다.
그러니, 이제는 방법을 좀 바꿔볼까 싶다. 나도 나에게 엄마가 되어볼까보다. 한 번도 꿈꿔보지 않은 엄마라는 역할을 나에게 해보는 거지. 미우면 미운 대로, 못났으면 못난 대로 충분히 신뢰해주고 아껴주되, 가끔은 궁상맞은 등짝도 때려줄 줄 아는 그런 엄마.
오늘 밤엔 중년의 딸과 속 깊은 이야기를 좀 나눠봐야겠다.
"딸아, 나머지 공부가 너무 길지 않니? 애들 다 집에 갔는데 얼른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