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요즘 바쁘다. 일주일에 두 번은 대학원 수업을 듣기 위해 서울에 가고, 나머지 날들은 지인들을 만난다. 다행이다. 나는 다 계획이 있는 남편이 대견하고 좋다. 이번 주는 무슨 공모전 심사를 맡게 돼서 이틀간 제주도에 가는데, 덕분에 일주일내내 독수공방 당첨이다.
나는 혼자있는 걸 좋아한다. 전형적인 내향인이라 며칠이고 집에만 있어도 나쁘지 않다. 요즘처럼 일 없이 지내는 기간에는 열흘에 한 번이나 신발을 신으려나. 아쉬운 건, 어쩌다보니 정말 아무 것도 안 하고 지나버리는 날들이 많아졌다는 것. 이럴 때만큼 시간이 무의미해지는 때도 없다. 요즘 내 시간은 너무 헐값이다.
퇴사 이후 줄곧 무언가를 찾고 있다고 확신해 왔는데, 아닌가보다. 찾는다기 보다는 찾아와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좋아한다. 당최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는 그 지루한 연극을 볼 때마다 나는 손에 땀을 쥔다. 자신들이 기다리는 고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끝없이 기다리는 디디와 고고.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그들의 시간은 권태로워 보이지만, 기다림 속에서 몸부림치는 두 사람은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겪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바보같지만, 연극이 끝날 즈음이면 나는 자꾸만 무대 뒤를 흘끔거린다. 애타게 기다리던 고도가 언젠가 슬그머니 그들 앞에 나타나주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사무엘 베케트 아저씨가 무덤에서 일어나 다시 펜을 들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면서도.
베케트 아저씨조차도 고도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했다. 나도 내가 기다리는 고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당장의 새로운 직업일지, 미래의 안락함일지, 거창한 우주평화같은 것일지 알 수 없다. 무엇을 기다리는 건지 알지 못한 채 기다리는 건 설레는 것을 넘어 막연하고 막막하다. 처음 들어찼던 기대감은 이미 물러가고 불안감이, 자존심 상하지만 열패감이 자리를 꿰찼다. 더 기다리는 건 무리다.
고도 씨, 이제 나와도 돼요. 슬슬 분장을 마치고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내주시겠어요?
"고도 씨, 벌써 퇴근해버린 건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