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9. 잊었다, 우리의 일은 우리만의 일이 아니었음을

"저녁 먹지 말고 기다리거라"

아빠한테 문자가 왔다. 이른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가려던 참이었다.


"아빠, 저희 저녁 일찌감치 먹었는데, 무슨 일이세요?"

"그랬어? 엄마랑 지금 치킨 사서 먹고 있는데 너희 생각이 나서 피자 배달시켰어. 조금 있으면 도착할 거야."


배달앱도 쓸 줄 모르시는 분들이 어떻게 이 동네 가게에 주문을 넣으셨을까.


"114에 전화해서 물어봤더니 전화번호 알려주더라."

"아... 저희는 괜찮아요. 엄마 밥하는 거 귀찮으실 텐데, 두 분이나 자주 시켜드세요."

"아냐, 벌써 주문했어. 도착하면 맛있게 먹거라."


잘 먹겠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한 채 떨떠름하게 전화를 끊었다.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우리 부부가 백수가 됐을 때 부모님은 하나도 걱정 안 한다고 하셨다. 충분히 쉬다가 또 새롭게 시작하면 된다고, 실력 있는 사람들인데 뭐가 걱정이냐고 하셨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백수 된 후 만나서 밥 먹으면 무조건 계산하려 하셨고, 추석명절 용돈이라며 우리가 드린 것보다 더 많은 액수를 넣은 봉투를 찔러주셨다. 뒤늦게 봉투를 확인하고 나서 든 감정은 한 두 개가 아니어서 몇 개의 단어로 정리해 쓰지 못하겠다. 백수가 된 것은 결코 우리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모아둔 돈이 있다고, 당분간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다고 누누이 얘기해도 부모님은 믿지 못하시는 눈치였다. 돈이 없어 애를 먹으며 오랜 시간 살아온 내 부모에게 벌이가 없다는 건 당장 살갗에 와닿는 공포이며 두려움일 테니. 나는 그걸 간과했다.

KakaoTalk_20251022_153053992_01.jpg

어떻게 해야 할까. 한참 마음이 심란한데 피자가 왔다. 무려 도미노피자다. 아파트 상가에서 브랜드 없는 피자, 그것도 제일 저렴한 콤비네이션 피자 시켜드시는 분들이, 토핑도 화려한 피자를 시켜주셨다. 먹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한참을 걸었다. 당신들이나 잘 챙겨드시지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다고 남편에게 툴툴거리며 이야기했지만 속이 말도 못 하게 시끄러웠다. 마흔 중반의 자식이 배곯을까 봐 전전긍긍 걱정하는 일흔 넘은 부모. 그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백수 4개월 차. 시간이 갈수록 등 떠미는 손이 많아진다. 인생 후반전이니, 자아 찾기니 한가롭게 늘어져 있을 상황이 아닌가 보다. 정말 일하러 나가야 하나.



"여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응?"


"일단 피자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내일 점심으로 먹자."



keyword
이전 08화#8. 택배 찾으러 옛 직장에 다녀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