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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택배 찾으러 옛 직장에 다녀오며

문자 메시지가 왔다. 택배 배송 예정 문자였다. 택배 올 게 없는데 뭐지 싶어서 자세히 보니, 몇 년 전부터 거래하고 있는 새마을금고에서 보낸 거였다. '건어물 선물세트'라고 되어 있는 걸 보니 추석 명절 앞두고 보낸 선물인 모양이었다. 생전 이런 거 한 번 보낸 적 없던 사람들이 왠일이지 싶은 마음으로 문자 메시지 창을 닫으려는데 잠깐,

배송 장소가 회사네?


새마을금고에 우편물 수신 주소를 회사로 설정해놨던 모양이다. 낭패다. 얼른 택배기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기사님, 혹시 배송지 주소를 변경할 수 있을까요?

"아, 변경은 가능하신데 말씀하신 주소지는 제 관할구역이 아니거든요. 담당 기사님께 전달하면 되긴 하는데 택배 요금이 추가로 발생해요."

"얼마나 들까요?"

"5,000원이요!"

"아..."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 짧은 찰나의 순간 머릿속에서 뚱땅뚱땅 계산기가 돌아갔다. 선물세트가 얼마짜리인지 모르겠으나 택배비 5,000원을 들일 만큼 비싸고 중요한 건 아닐거란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럼 그냥 회사 택배 보관함에 놔주세요. 나중에 제가 찾으러 가든지 할게요."

"음... 요즘에 도난 분실사고가 종종 있더라고요. 혹시 모르니까 제가 따로 맡아두고 있을게요. 이 동네 근처에 오시면 연락주시겠어요?"


택배 기사님이 친절하시다. 친절하신 김에 좀 더 친절해주시면 좋을 텐데. 저 차도 없는 뚜벅이거든요ㅠ


그리하여 오전에 오랜만에 옛 회사 동네를 찾아갔다. 얼마나 됐다고 그 사이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버스노선도 바뀌어 한참을 걸어야 했고, 가까이 있던 편의점도 문을 닫아 멀리로 돌아가야 했다. 모두 출근해 사무실에 박혀있느라 적막하기 그지 없는 오피스타운에서 혼자 걷고 있는 내가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그래, 내가 일을 그만두고 가장 힘든 게 이거였지, 무소속감. 늘 이게 불안하고 초조해서 습관처럼 이력서를 들이밀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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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기사님을 회사 근처에서 만나 택배를 받았다. 조수석에 따로 챙겨놓으셨더라. 신경써주신 게 감사해서

미리 산 비타500 하나를 건넸다. 활짝 웃으며 고마워하셨다. 예상보다 엄청나게 큰 박스를 받아들고 옆구리에 끼듯 품에 안듯 해서 버스정류장까지 왔다. 그나마 무겁지 않은 게 천만다행.


택배를 받아오기까지 왕복 버스비 3,000원, 비타500 1,700원, 도합 4,700원이 소요됐다. 어쩌면 5000원 택배비를 쓰고 집에서 편히 받아보는 게 나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옛 회사를 바라보며 그때의 나와 내 마음을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었고, 퇴사가 옳았을까 스스로에게 한 번 더 물을 수 있었고, 외출이 전혀 없는 일상에서 20여 분 걷기 운동도 됐고, 내가 전한 작은 진심에 기뻐하는 미소도 선물받을수 있었던 건 굳이 비교해서 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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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 박스를 열어보니 김과 자반, 튀각이 가득 들어있다. 백수 살림살이에 여러모로 보탬이 되겠다. 새마을금고 님들아, 예고 없었던 택배 하나가 오늘 오전 이런저런 선물을 함께 주었어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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