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차> 늦여름의 비와 소년

Ryuichi Sakamoto - RAIN

by 도미니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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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한결 선선해졌다. 콜을 기다리는 시간이 한결 편해졌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귀에 이어폰을 꽂고 가로수 아래 벤치에 앉아 콜을 기다릴 때면 내가 일하려고 기다리는 사람인지 한량인지 헥갈릴때도 있다. 6시가 조금 넘었지만, 여름인지라 밖은 아직도 환하다. 달이 예쁘게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어둑어둑 어둠이 내려앉을 즈음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어디론가 바쁘게 몸을 움직이고, 나 혼자 한가로이 앉아 콜을 기다린다. 가로등에 불이 켜지고 어둠이 제법 나지막이 내려앉아도 난 또 그 자리다. 콜이 없다. 식당은 텅텅 비어있고, 얼마 안 남아있던 손님들 또한 집으로 가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술에 취한 사람들과 화려한 네온사인과 시끄러운 유행가들이 섞여있던 번화가는 스산함마저 들게 한다. 코로나가 무섭긴 무섭다. 치명적인 감염 전파력도 무섭고, 후유증도 무섭지만,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두려움이 정말 무섭다. 자영업을 하시는 형님들은 한계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고, 나 같은 사람도 투잡을 고민해야만 하는 상황까지 극한으로 몰아붙인다. 모두가 그렇게 집으로 집으로 향하지만 오히려 나는 집과는 거리가 먼 한 번도 와보지 못한 동네의 공원 벤치 아래에서 콜을 기다린다. 울리지도 않는 콜을 기다리며 음악을 듣는 투잡을 뛰고 있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두 방울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굵은 물방울들이 하늘에서도 내리고, 땅에서도 튀어올라와 지붕이 있는 곳으로 재빠르게 몸을 피했다. 아직 한콜밖에 타지 않았는데 15000원에서 수수료 3000원 떼고 나서 12000밖에 못 벌었는데 콜을 마감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며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내 맘도 모르고 귀에서는 을씨년스러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누가 나를 위해 선곡이라도 한모 양이다. 오다 카즈마사의 청아한 목소리의 노래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내가 듣기에도 한 번에 어떤 느낌의 가사인지 알 것만 같은 멜로디들이 흘러나온다. 사요나라가 들어간걸 보니 안녕이라는 말과 관계가 있겠지 생각했다. 슬프게 깔리는 피아노 반주에 청량하게 어울리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이별과도 관계가 있을 거라 어림잡아본다. 10분만 더 기다리고는 콜이 없으면 집으로 가야겠다 생각하고는 비를 보며 더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한때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참 좋아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찾아 읽었고, 류이치 사카모토와 오다 카즈마사의 노래를 찾아들었다. 원령공주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은 지브리 애니메이션들도 좋아했고, 기타노 다케시나 쿠니무라 준 등의 영화 작품들도 많이 보았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문화가 주는 분위기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느낀 일본의 분위기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단순하면서도 세밀하고, 복잡하면서도 잘 정돈된 느낌이다. 상대를 배려하는 그들의 일반적인 문화도 좋고, 그들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보존하고 아끼는 마음가짐도 좋다. 흔히 오타쿠라 불리는 사람들처럼 본인의 취향을 제대로 알고 그 취향을 극대화시키는 모습들도 보기 좋다. 뒤에서는 험담을 할지언정 상대에 대해 예의범절을 지키고 배려하는 마음가짐도 좋아한다. 가끔 일본 정부에서 독도 관련된 일이나, 위안부 관련 자극적인 신문기사들을 보면 이해가 잘 가지 않지만, 내가 일본에 여행을 가서 느꼈던 점들은 미디어에 비친 일본과는 많이 달랐다. 그래서인지 난 남들보다 일본의 문화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하루키의 소설과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은 나를 한 단계 성장시켜주기도 하였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보고는 많은 자극을 받았고, 마지막 황제 ost에서 처음 듣게 된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꼈다. 사춘기 시절의 내가 당시 느꼈던 감정은 잘 기억도 나질 않지만,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충격이라 말하는 편이 쉬울 것 같다. 이런 음악도 있구나. 이런 소설도 있구나. 세상은 정말 넓고 크구나 하는 마음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비가 와서 그런 걸까. 누군가가 옷깃만 스쳐도 울어버릴 것 같은 여린 감성이 주위를 맴돌았다. 늦여름의 저녁 비를 피해 공원의 한 처마 아래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고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RAIN'을 틀었다. 내리꽂는 듯한 피아노 반주와 구슬프게 연주되는 바이올린 소리가 내 몸으로 스며들었다. 주위의 모든 조명들은 꺼지고 하늘에서 내리쬐는 하나의 작은 조명만이 비를 피하고 있는 정자를 비추고 있었다. 비에 젖은 머리카락은 축 늘어져 이마를 간지럽히고 안경알에는 물방울들이 맺혀 흐릿하게 보였다. 심지어 옷은 젖고, 신발안으로 들어온 비 때문에 양말까지 젖어서 축축하고 찝찝한 기분이 들었을 만도 한데, 오히려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사춘기 어린 시절 이후 비를 제대로 맞아본 적이 있었나? 젖을 머리와 옷을 신경 쓰지 않고 비를 맞으며 유쾌하게 웃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어릴 적 나는 비를 좋아했다. 젖은 옷은 빨면 되었고, 젖은 머리와 감기 걱정이라곤 조금도 하지 않았다. 우산이 없으면 맞고 가면 되는 거였고, 젖은 것들은 말리면 그만이었다. 실패하면 또 도전하면 되는 것이었다.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비가 오면 움직일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 옷이 젖을까 머리가 젖을까 고민이 앞선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슬픔을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빈곤하게 살아간다. 유쾌함으로 기억되던 비는 이제 나에게 골칫거리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렸다. 비가 내릴 때 은은하게 운동장을 떠돌아다니던 흙내음을 좋아하던 소년은 이제는 옷이나 신발이 젖을까 걱정하는 중년이 되어버렸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슬픈 게 아니라 온전히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슬펐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즐기고 받아들이고 미래를 꿈꾸던 사람이 하루하루 걱정하고 미래보다는 현실에 갇혀 과거에 집착하는 모습이 슬펐다. 코로나가 직접적인 전파력과 사망 치사율이 높아 무서웠던 것보다 사람들에게 주는 공포심이 진짜 무서운 것처럼, 소년이 중년이 되었다는 것이 슬픈 게 아니라 더 이상 기쁨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 차 있는 내 모습이 슬픈 것이었다.




눈치 없이 비는 더 처량하게 떨어지고, 막차 시간은 점점 다가왔다. 처마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어도 온 몸은 비를 맞아버렸고 산발에서는 당장 양말을 꺼내 짜면 물이 엄청나게 나올 만큼이나 젖어있었다. 하나 둘 보이던 길을 걷던 사람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질 않았고, 도로 위 자동차들도 몇몇 택시를 제외하고는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어폰을 가방에 넣고는 그칠 줄 모르는 빗속을 향해 걸었다. 맺힌 물방울들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는 안경도 가방에 집어넣었다.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마냥 걸었다. 한 5분쯤 걸었을까?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가슴 한쪽 구석에서 알 수 없는 기쁨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안경을 쓰지 않은 내 시각은 더욱 또렸해졌고, 이어폰을 뺀 내 귀에서는 감미로운 멜로디들이 흘러나왔다. 이미 젖은 신발과 양말은 신경도 쓰지 않았고 오히려 일부러 더 물웅덩이를 향해 걸었다. 주변을 의식할 필요도 없었고, 가끔 지나치는 나를 미쳤다고 생각할 사람들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비 오는 길을 걸었다. 한 방울 두 방울 비는 그렇게 나에게 미소를 남기며 하늘에서 떨어졌다. 잠시 뒤 비가 그칠 때까지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이어폰을 끼지 않고도 들리던 그 사랑스러운 멜로디와 안경을 끼지 않아도 뚜렷하게 보이는 풍경들을 보며 계속 걸었다. 적어도 걷는 순간만큼은 아무런 방해 없이 소년이 되어 아무런 걱정 없이 길을 내달리는 내가 될 수 있었다. 참 고마운 늦여름의 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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