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을 물리친 게 누구냐면

by 아름


용이 불을 뿜어대고 있다. 왕자가 옆구리에 차고 있던 칼도 빼내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사이 공주가 나타난다. 공주의 손에 쥐어진 것은 다름 아닌 프라이팬. 공주는 프라이팬을 힘껏 휘둘러 용을 무찌른다. 예쁜 드레스 대신 빨간 망토를 두르며 공주가 하는 말.

“나 이제 공주 안 되고 싶어요. 언제 어디서나 약한 사람을 구해주는 슈퍼 콩순이가 될 거예요.”

TV 애니메이션 <엉뚱발랄 콩순이와 친구들>의 한 장면이다. 집안일을 하며 틈틈이 TV를 흘금거리던 나는 그 장면에 반색하며 낄낄댔다. 내가 진심으로 재미있어하는 모습이 반가웠던지 아이는 TV와 나를 번갈아보며 깔깔거렸다.

“아무렴, 왕자라고 다 용감한 건 아니지. 장하다, 우리 슈퍼 콩순이.”

내가 아이 앞에서 콩순이를 더욱 과장되게 응원한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간 국민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에 내심 불만을 품고 있던 터였다. 열 명 남짓한 캐릭터 중에 왜 여자는 ‘패티’와 ‘루피’ 둘 뿐인가. 왜 이들의 역할은 남자 캐릭터들이 일으킨 말썽을 수습하거나 요리를 해주는 것에 한정되어 있는가. 부지불식간 아이가 고정된 성역할을 학습하게 될까 우려스러웠다. 그래서인지 콩순이의 무용담이 더욱더 반갑고 통쾌하게 느껴졌다.




아이 때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그림책. 아이가 아직 한글을 깨치지 못해 내내 읽어준다. 그러다보면 정말 보석 같은 책을 발견할 때가 있는데, 최근에 나를 사로잡은 책은 로버트 문치의 『종이 봉지 공주』라는 책이었다.

첫 장면부터 인상적이다. 왕자는 도도하고 시큰둥한 표정으로 등을 돌리고 섰는데, 공주는 도저히 사랑을 숨기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왕자를 바라보고 서 있다. 한 마디로 내숭 따윈 없는 공주다. 그런데 난데없이 몹쓸 용이 등장해서 왕자를 납치하고 성을 부수고 공주를 벌거숭이로 만든다. 입을 옷조차 없는 공주는 종이 봉지를 주워 입고 왕자를 구하러 떠나는데…. 결국 지혜로운 공주는 무기 하나 없이 용을 쓰러뜨리고 동굴에 갇혀 있던 왕자를 구한다. 그런데 왕자가 공주를 보자마자 대뜸 하는 말,

“엘리자베스, 너 꼴이 엉망이구나! …… 더럽고 찢어진 종이 봉지나 걸치고 있고. 진짜 공주처럼 챙겨 입고 다시 와!”

하마터면 욕을 튀어나올 뻔 했으나 가까스로 참고 공주의 마지막 대사를 읽었다.

“그래, 로널드, 넌 옷도 멋지고 머리도 단정해. 진짜 왕자 같아. 하지만 넌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야.”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결국 결혼하지 않는다. 해가 반쯤 걸쳐진 지평선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날 듯이 뛰어가는 공주의 뒷모습이 마지막 장면이다.

이토록 멋진 현대판 공주 이야기라니…. 아이보다 내가 더 감동받은 듯 했다. 그렇다고 내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할 순 없어서 아이에게 넌지시 물었다.

“왕자가 한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왕자는 어떤 사람일까?”

아이는 냉큼 대답했다.

“왕자는 땟국물이야.”

최근에 할머니로부터 들은 ‘땟국물’이라는 단어가 꽤 인상적이었는지 아이는 그 이후로 최악의 상태를 이렇게 표현하곤 했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다시 진지하게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어?”

“공주한테 그런 식으로 말했으니까. 마음이 땟국물이라는 얘기야.”

아무렴,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을 구하러 온 용감하고 현명한 공주에게 이따위 대접을 하다니, 땟국물이고 말고.

“마지막 장면은 어때? 공주의 기분이 어때 보여?”

아이는 씩 웃으면서 엄지척을 해 보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신나 보여. 팔이 날개 같아. 아주 잘 했어. 이런 왕자랑은 결혼 안 하는 게 나아.”

짧지만 많은 메시지를 품고 있는 수작이었다. 아이가 좀 더 크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 싶었다. 로널드 왕자가 말하는 ‘진짜 공주’는 어떤 모습인지, 그건 누가 정한건지, 종이 봉지를 뒤집어쓴 꾀죄죄한 행색의 엘리자베스 공주는 무엇을 상징하는지, 엘리자베스 공주가 결혼을 거부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등. 언젠가 아이와 더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길 바라며, 이런 그림책을 더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7살 남자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 사회 저변에 깔린 성 역할 고정관념을 새삼 의식하게 됐다. 고작 7살이지만 아이는 곳곳에서 남성성을 강요하는 말들과 마주해 왔다. 아이가 태권도 학원을 가기 싫어한다고 했더니 배우자는 대뜸 ‘남자다움’을 근거로 설득하려 들었다. 말 많고 소꿉놀이 좋아하고 자주 주방을 기웃거리는 아이에게 시어머니는 ‘딸내미 같다’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여자 아이들과 곧잘 어울리고 눈물이 많은 아이는 놀이터에서 처음 보는 할머니께 ‘남자답지 못하다’는 핀잔을 들었다. 울먹이는 아이를 꼭 안고 이렇게 말해주었다.

“울어도 돼. 슬프고 화나고 억울한데 울지 않고 참기만 하면 마음에 병 나. 남자라서 울면 안 된다는 말은 순 구닥다리야.”

아이가 지금처럼 시시콜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눈물을 참지 않기를 바란다. 슬퍼도 울지 않는 것, 힘들어도 혼자 이겨내는 것이 남자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힘, 용기, 의지 등으로 대표되는 좁은 남성성의 틀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기를, 그래서 좀 더 자유롭고 유연한 존재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남자라서가 아니라 자기가 진심으로 원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탐색하고 선택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 그 곁을 지키며 온 마음으로 응원하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며칠 전 아이가 그림을 그리다 말고 물었다.

“엄마, 용이랑 싸우는 사람을 왕자로 할까? 공주로 할까?”

“음, 둘 다 그리는 게 어때? 그러면 천하무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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