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소녀를 돌보며 살아가기를
나의 오랜 친구, J와 H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미리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 이리저리 둘러보던 차에 기차역 광장 한쪽에 자리한 꽃집이 보였다. 다양한 크기의 꽃다발부터 카네이션 모양의 디퓨저, 앙증맞은 다육식물과 어쩐지 처연한 느낌이 드는 드라이플라워까지, 규모는 작아도 나름대로 갖출 것은 다 갖춘 꽃집이었다. 출발 시각까지 30분이 남아 있던 터라, 나는 여유를 부리며 그 말쑥하고 환한 얼굴들을 연신 눈에 담고 있었다.
‘행운을 가져다주는 식물, 기분이 좋으면 떠올라요’
꽃들 틈바구니에 있던 작은 어항과 푯말에 일순 매료되고 말았다. 이끼 뭉치 같기도 하고, 조그만 털북숭이 동물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의 이름은 ‘마리모’였다. 블록 모양의 어항과 그 안에 함께 들어 있는 깜찍한 장식품만으로도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는데, 기분이 좋으면 떠오르는 식물이라니, 게다가 행운을 가져다주기까지 한다니…. 믿거나 말거나, 떠도는 풍설 같은 이야기일지언정 그날만큼은 믿어 보고 싶었다. 게다가 친구의 아이들이 이 신기한 생명체를 마주하고 지을 표정을 상상하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간만의 재회로 가뜩이나 달뜬 상태였는데,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는 생각에 더 가벼워진 걸음으로 기차에 올랐다.
J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하고 떠난 1박 2일간의 여행이었다. J와 H 그리고 나, 우리 셋은 같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 때 기숙사 생활까지 함께했기에 정말이지 서로 못 볼 꼴 다 본 사이였다. 게다가 대학도 모두 부산에서 다녔기 때문에 우린 줄곧 함께였다. 그러다가 둘은 직장 때문에 경기도로 떠났고, 나만 부산에 남게 되었다. 셋 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했고 아이도 비슷한 시기에 낳아서, 사실 그동안은 각자 살기 바빠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다 기회가 되어 이번엔 아이들을 떼놓고 우리끼리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소풍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지난 며칠을 보낸 터라, 아직 친구들을 만나기 전인데도 시간이 흐르는 게 아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마치 크리스마스보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더 설레듯이, 기차에서 보낸 2시간 내내 배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J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나와 H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J의 따뜻하고 야무진 손끝이 느껴지는 아주 아늑한 집이었다. J를 닮아 크고 순한 눈망울을 가진 아이의 흔적이 흐뭇한 미소를 짓게 했다. 그래, 너는 이렇게 살고 있었구나…. 그동안 우리 사이에 존재했던 공간적 거리감이 새삼 실감나서,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함께 있다는 생각에 감회가 새로워서, 문득 먹먹한 마음이 되었다.
원목 식탁에 앉아 서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시작된 이야기가 장장 12시간에 걸쳐 이어졌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술을 마시면서도, 마침내 잠자리에 누워서도 우리의 이야기는 끊이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우리만의 시간을 즐기는 게 너무나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말을 많이 해서 목이 칼칼해진 것도, 말하다가 지쳐 곯아떨어진 것도 참으로 오랜만에 해보는 경험이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모여 살았던 동네 친구들, 각자 집에서 저녁을 먹고 근처 학교 운동장에서 만나 다섯 바퀴고 열 바퀴고 돌며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누던 사이. 우리는 겹겹의 시공간을 단숨에 뛰어넘어 과거의 그때로 돌아가 있었다.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삶, 더 가진 것과 덜 가진 것, 당연시되고 있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 우리를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하는 순간들, 서로 같고도 다른 삶에 대하여…. 두서없는 넋두리의 연속이었지만 그 속에는 저마다 생에 대한 살뜰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부당하고 서운한 대우에 홀로 탄식을 삼켰을 너의 순간을 기억해.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애타는 마음으로 잠을 설쳤을 너의 밤을 기억해.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염려로 그간 흘려 온 너의 눈물을 기억해. 그리고 다음 생에는 결혼하지 말고 자유롭게 살자던, 우리의 결연한 얼굴도 기억해.
이제는 시간과 돈과 노력을 기울여야만 겨우 만날 수 있는 사이가 되어 버린 것이 못내 서글펐다. 전처럼 서로의 일상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각자의 공간에서 스스럼없이 일상을 나눌 또 다른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서운하면서도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우리가 바라는 대로 조금 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날이 오면, 그때의 우리는 세월의 흔적이 선연한 얼굴을 하고서 또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궁금한 생각이 들어 ‘마리모’에 대해서 검색해 보았다. 공 모양의 담수성 녹조류로 일본 홋카이도 아칸 호수의 명물인 희귀 생물, 광합성으로 인해 생긴 산소 기포들이 가느다란 섬유 속에 갇히면 그 부력으로 떠오르곤 하는 식물. 일출 시간에 광합성 작용이 더욱 활발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아침에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그런데 사실, 꽃집 사장님이 덧붙인 말이 있었다.
“글쎄요, 전 사실 가라앉은 상태만 봐서요. 떠오르는 걸 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행운의 상징이 되었나 봐요.”
J와 H에게는 언젠가 그 행운이 찾아올까. 물론 그러길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과연 행운일까, 하는 생각. 행운이 따르는 삶을 바라던 때가 우리에게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행운이든 기적이든 일상과 유리된 무언가를 좇는 것이 허망한 일이 될 수 있음을, 지금의 우리는 안다. ‘행운을 빌어’가 아니라 이렇게 말해 주었다면 더 좋았을까.
“마리모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도 실망할 필요 없어. 물 아래 가라앉은 시간도 귀하게 품을 마음만 있다면 말이야.”
그 긴 시간의 수다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미처 못다 한 이야기, 남은 마음들은 편지로나마 전해야지.
어쩌면 당신에겐 아직 소년의 얼굴이 남아 있습니까 물 아래 말갛고 조용한 모래들이 서로 반짝이듯이 하십니까
나는 멀리서 와서 당신의 잔잔하고 고운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내 종이배에 싣습니다 나의 생일과 어제 꺾은 칡꽃과 나의 걱정과 함께 당신의 깨끗한 시내를
문태준 시인의 ‘종이배’라는 시의 한 구절이야. 우리에겐 아직 소녀의 얼굴이 남아 있을까. 우리의 만남은 늘 목적이 없어서 좋았지. 그렇게 함께 한 시간이 우리 존재의 밑바닥에서 반짝이고 있을 거라 믿어.
따뜻한 아침 햇살 속에서 산소의 기포들을 껴안고 두둥실 떠오르는 마리모를 상상해봐. 생각만 해도 흐뭇해지지 않니. 우리도 그처럼 이 모든 역할로부터 잠시나마 자유로울 수 있다면…. 엄마로서, 부인으로서, 직장인으로서가 아니라 오롯이 나 자신으로서 사는 순간, 우린 다시 앳된 소녀의 모습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부디, 각자의 소녀를 돌보며 살아가기를….
내 종이배에 우리가 함께 나눈 모든 삶의 순간들을 실어 갈게.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늘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