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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Jan 27. 2023

네? 줄넘기까지 학원을 보낸다고요?

  “예? 언니! 줄넘기를? 줄넘기 학원이요? “

  “애가 극성이야. 세상에 줄넘기 학원을 라이드 해서 보낸다니까. 근데 나도 재아 줄넘기 방과 후 신청했는데 이번엔 성공했어. “

  “난 방과 후 실패했어. 그래서 학원 알아봤지.”

  “그래, 나도 형부랑 밤 8시 땡! 할 때 각자 컴퓨터 들고 2초 컷으로 성공했다니까.”

  “맞아! 방과 후에서 음줄(음악 줄넘기)는 인기라서 완전 1초 컷이야.”

  “언니! 줄넘기 그냥 줄 넘으면 되잖아요. “

  “아니야, 요즘 어린이들 사이에서 줄넘기는 정말 어깨 뽕 쭉 올려주는 장기라고. 그냥 줄 넘는 게 아니야. 어떤 2학년은 뒤로 2단 뛰기 해.”

  “예에?”

  “이번에 주윤이 반에서도 장기자랑 하는 데 줄넘기하는 애들이 많더라고. 아! 주윤이 학원 블로그 보면 막 7단 뛰기하고 그래! 우리 때 그 모둠발 뛰기가 줄넘기가 아니라니까. “

  “재아도 음줄 방과후 하는 날은 달라. 머리카락이 신경 쓰이지 않게 머리에 꽉 붙게 묶어달라고 신신당부하거든.”

  “언니, 저 지금 뭐 줄넘기 당장 사요?”

  “아니야~아직 6살이니 다리 힘 생기는 7살부터 해도 돼.”



  설을 맞아 거실에서는 주윤이의 큐브 맞추기와 재아의 아이돌 댄스 재롱잔치가 펼쳐지고 있다. 손주를 향한 할머니와 할아버지, 삼촌들의 대견함이 아낌없이 울려 퍼지는 거실엔 웃음과 박수가 빈틈없이 가득하다. 그 대견함을 위한 물밑 작업을 해내는 9살, 6살, 11살 손주를 키우는 엄마들은 세상 가장 반짝이는 재롱잔치 옆 방에서 이불을 하나씩 덮고 앉아 은밀하게 초등 줄넘기의 세계를 논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추석맞이 재롱은 줄넘기가 되려나.



  6살 아이를 키우는 사촌동생이 보기에 나는 줄을 넘기만 하면 되는 줄넘기 마저 학원을 보내는 열혈, 극성엄마가 확실했다. 그럴 수 있다. 나도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그랬으니까.

  ‘무슨~줄넘기를 학원씩이나 보내. 집에서 아침에 좀 하면 되지.‘



  그렇게 여름방학 아침마다 주윤이와 나는 줄넘기를 했다. 주윤이는 정말 열심히 했다. 잘하고 싶어서 높이 뛰었고, 줄을 열심히 돌렸다. 하지만 다 따로 열심히 하느라 손과 발의 협응은 있던 적이 없었다. 오른쪽 어깨는 얼굴까지 올라와있는데 왼쪽 어깨는 겨드랑이까지 내려와 있고, 줄은 옆으로 점점 벌어졌다. 주윤이의 두 발은 어떻게든 줄을 넘어보려 더 힘껏 차올랐으나 흔들리며 매번 예기치 못한 타이밍에 넘어오는 줄을 넘을 수 없었다. 줄에 제 팔과 다리를 맞기도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주윤이는 모둠발 뛰기로 10개를 채 하지 못하고 방학을 마무리했다. 아니 어떻게 이렇지? 줄넘기를, 이렇게 못할 수 있다고? 세상엔 참 신기하고도 이해가 안 가는 게 여전히 많다.



  그렇게 1학년이 마무리되어 갈 무렵, 주윤이 학급에서는 재능발표 시간이 마련되었다. 하루 1시간씩 3일에 거쳐 진행된 재능발표가 있던 기간에 주윤이는 늘 먼저 말했다. “

  “엄마, 성연이랑 수아는 둘이 한 줄을 잡고 번갈아서 뛰더라고요. “

  “엄마, 정연이는 엑스자를 수십 개 했어요.”

  “엄마, 정후는 번갈아 뛰기도 하더라고요. “

  주윤이의 시선이 줄곧 줄넘기 쪽으로 무게감 있게 닿았다는 것은 주윤이의 마음을 보여주었다. 주윤이도 줄넘기를 잘하고 싶었던 것이다.



  “주윤아, 겨울방학 때 줄넘기 학원 다녀볼래? 여기 선생님은 생활의 달인에 줄넘기로 나오셨던 분 이래. 줄넘기 선생님들의 선생님이시래. 어때? “

  “엄마! 저 좋아요! 저 줄넘기 배울래요! 엄마, 고마워요!”

  학원을 보내줘서 고맙다는 말이 주윤이에게 툭 튀어나오다니. 나는 어떤 이유도 필요 없다. 이제 줄넘기 학원을 등록하는 것은 나에게 당연하고 자연스럽고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다.

  “엄마, 너무 기대돼요. 줄넘기 학원에 다니면 저도 줄넘기 이제 양발로 할 수 있겠지요? 엑스자도 막 배우면 어떻게 해요?”

  “그럼~선생님이 진짜 잘 가르쳐주실 거야.”

  2층에 위치한 줄넘기 학원을 올라가는 주윤이의 걸음은 2단 뛰기는 가뿐할 정도로 가벼웠다.



  태권도에만 흰띠, 노란띠의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줄넘기의 세계에도 흰 줄, 녹색줄, 파란 줄, 빨간 줄, 그리고 최고난이도인 검은 줄에 이르는 세계가 있었다. 한껏 상기된 주윤이는 초심자의 흰 줄을 받고 선생님 앞에 섰다.



  간단한 준비운동을 한 후, 선생님께서는 주윤이에게 한번 줄넘기를 해보라고 하셨다.

  “선생님! 저 이거는 할 줄 알아요! “

흥분된 주윤이는 집에서처럼 손과 발이 각자 따로 열심히, 그리고 기울어진 시소의 어깨로 줄넘기를 자신 있게 했다. 2개 넘었나. 부끄러움은 엄마의 몫이다. 선생님께서는 갈 길이 멀다 여기셨을 게 분명하다.

  “주윤아, 줄넘기는 손잡이 끝부분을 쥐어야 해.”

  “줄을 되도록 멀리 보내는 거야. “

  “높이 뛰면 힘들거든.”

결국 선생님께서는 손으로 줄을 돌리는 법을 지도해 주시기 위해 줄이 끊어진 줄넘기를 가져오셨고, 발로 줄을 넘는 법을 지도해 주시기 위해 스티로폼 바를 가져오셨다. 역시 약은 약사에게, 교육은 선생님에게가 맞다.



  주윤이의 기울어진 시소 어깨가 균형을 잡는다. 팔이 동일한 높이에 오다 보니 줄이 안정감 있게 발 앞으로 넘어오고, 발은 이때다 싶어 줄을 넘기 시작한다. 나도 주윤이도 온 마음과 얼굴에 한 단어가 가득 찬다.

 ‘오~~~!!’

  주윤이가 가진 줄넘기 수업 시작 전의 흥분이 기대감이었다면 지금 주윤이 마음에 피어오르는 흥분은 스스로에 대한 기특함일 것이다.

  ‘나도, 나도! 이게 되네!’



 그리고 선생님께서 툭.

  “ 이제 x자도 할 수 있을 거야.” 한 마디를 하셨다.

주윤이는 진짜요? 제가요? 하는 표정으로 선생님을 올려다보았다. 선생님은 주윤이의 눈을 맞추며 끄덕이셨다.

  “한 번 해볼게요.”

그렇게 주윤이는 첫 수업에 x자를 1번 성공했다.



  그때 주윤이의 얼굴이 피어오르던 그 자부심의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렇게 바라던 x자 줄넘기, 모둠발 뛰기도 잘 못하는 자신에게 허락될리 없다 여겼을 그 x자를 내 두 발로 뛰었을때 그 믿을 수 없다는 놀라움과 환희의 표정. 그래, 환희였다. 나는 느껴본 적도 없었던것만 같은 생생한 환희의 표정이 주윤이의 얼굴에 가득 피어올랐다. 그 마음은 얼마나 벅차 올랐을까.



  이윽고 선생님께서는 가위바위보 줄넘기, 팔자 돌리기, 거미줄 멈춤을 알려주셨다. 가위바위보 줄넘기는 다리를 앞뒤로 벌리면 가위, 바위는 모둠발, 보는 다리를 좌우로 벌리는 것으로 이것으로도 놀이가 가능했다. 팔자 돌리기는 두 줄을 모아 좌우로 번갈아가며 가로로 8자를 그리듯 줄넘기를 돌리는 동작으로 쉬우면서도 근사해보였다. 거미줄 멈춤은 좌우로 벌린 다리에 두 팔에 이르는 줄이 x자 모양으로 멈추는 형태였다. 주윤이는 신기한 줄넘기의 세계를 흠뻑 탐험했다.



  주윤이에게 줄넘기의 세계는 참 다정했다. 줄넘기 세계의 다정함은 다양함에서 나왔다. 다양함이 가진 최고의 미덕은 여지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다양한 줄넘기의 모습이 만들어준 여지는 운동을 잘 못하는 주윤이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줄넘기가 있다며 주윤이를 다독여주는 듯 했다. 모둠발 뛰기와 2단 뛰기만이 줄넘기의 전부가 아니다. 팔자 돌리기, 거미줄 멈춤, 가위바위보 줄넘기와 같이 줄넘기의 길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 너그러운 다양함 덕분에 그 길에 처음 들어선 서툰 나도 할 수 있는 줄넘기의 세계가 있었다. 다양한 경로가 가진 미덕은 초심자와 운동기능이 부족한 누군가에게는 기회이자 다행으로 여겨진다. 거기에서 작은 용기가 움틀 수 있는 자리가 생긴다.



  “엄마, 봤지요? 엄마! 저 x자 하는 거 봤지요?”

  “그럼~~ 진짜 멋지더라! 어떻게 하루 만에 양발 뛰기랑 x자를 성공하지? 선생님이 진짜 잘 알려주시고, 주윤이도 열심히 배웠네!“

  “맞아요. 역시 달인은 다르다니까. 진짜 놀랐어요. 하루 만에 x자를 하다니! 이게 말이 되요?“

  “그러니까 말이야.”

  “엄마, 진짜 뿌듯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주윤이는 한 시간의 수업동안 자신의 손과 발이 해낸 모든 과정을 곱씹었다. 그 모든 과정은 성장의 과정이었고, 그 과정들을 곱씹을수록 주윤이 마음엔 뿌듯함이 차올랐다.



  나는 줄넘기마저도 학원을 보내는 초 극성엄마가 되었지만 괜찮다. 안 시켜도 잘하던데 하는 우아한 엄마를 뒤로하고 극성 엄마가 된 덕에 주윤이는

 ‘나도 되는 거였다’는 귀한 마음을 얻었다. 이 추운 겨울, 주윤이는 배움의 지렛대에 기대어 못하던 일을 결국 제 손과 발로 해내버린 짜릿한 경험을 얻었다. 오늘 제 손과 다리로 넘은 줄 덕분에 주윤이는 다른 어려움을 맞딱뜨렸을 때 ‘하면 되던데!’하는 성공경험, 그리고 또 다시뛰어볼 수 있는 용기의 씨앗을 품었을 게 분명하다.



  “줄넘기~줄넘기! 줄넘기! 줄넘기~”

줄넘기마저도 라이드 하는 극성 엄마 덕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의 차 뒤에 앉은 주윤이는 계속 줄넘기 단어를 되뇐다. 주윤이는 그 3글자 안에 뿌듯함과 신남과 기대를 담는다. 주윤이의 아이스러움이 참 어이없으면서도 예쁘다. 그렇게 좋을까.

유난히도 추운 겨울날, 우리의 차 안에는 차가운 공기 사이사이에 흥분의 열기가 가볍게 스며든다. 점점 면적을 넓혀가는 우리의 뿌듯함은 지금 내 차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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