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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계속된다

존엄사

by 오순 Dec 28. 2024

커다란 베란다 창으로 겨울 햇빛이 비쳐 들고 있어 방안은 불은 켜지 않아도 어둡지 않다. 

조용하다. 

다들 늦잠을 자거나 일하러 갔나 안팎으로 고요하다. 

간간이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만 위이잉 하고 들린다.


타닥타닥 두드리는 타이핑 소리, 

책장의 종이 넘기는 소리, 

글씨 쓰는 볼펜의 사그작 소리, 

옆에서 고양이가 그르렁거리며 자는 소리, 

나의 한숨소리,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등등


이런 고요한 시간에는 평소에 잘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하고 그들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녀는 변기에 엉거주춤 않아 온 힘을 쏟고 있다.

돌덩이 모양 단단히 뭉친 변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고관절이 부러져 제대로 힘주기도 어렵다.

앉았다 일어서거나 걷는 것, 거동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힘을 줄 때마다 고통이 밀려와 진땀이 베어 나고 있다.


딸이 이쑤시개를 가져다주며 변을 쑤셔대어 조각 내면 좀 수월하다 한다.

손자가 잘 먹지 않아 변비가 생길 때 쓰던 방법이라며 딸이 설득한다.

뾰족한 이쑤시개에 상처가 날까 봐 딸이 해주겠다는 걸 완강히 거부했다.

그렇게 힘들게 간신히 배변을 몇 조각 찔끔거리고 온 힘을 다해 침상에 드러누웠다.


또다시 밀려드는 불안과 고통을 피하려는 듯 배변과 소변을 번갈아 가며 하겠다고 그녀는 수시로 고통스럽게 일어났다.

지나가던 간호사가 그러면 침상에서 낙상하여 뇌진탕이나 다른 뼈가 부러지거나 더 큰 사고로 이어진다며 기저귀를 강력하게 권하였다.


그녀의 자존심이 그것만은 허락하지 않아서 더 강력하게 거부 중이었다.

기저귀를 하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도 혼신의 힘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그 고통을 버티고 있었다.


그녀의 자존감을 이해는 하지만 지켜보는 딸의 고통과 무력감도 상당하다.

그녀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으면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돕고 싶다.

해 줄 수 있는 게 팔을 잡아 주거나 이마를 만져 보거나 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 힘들다.


서 있는데 다리에 힘이 빠져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는데 고관절이 부러진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 이 사고가 그녀를 결국 요양병원에 가게 만들었다.

넘어질까 엄청 조심한 것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거동을 못하니 육체가 망가져 갔다. 

그에 따라 그녀의 존엄도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치료가 가능하면 고통을 견뎌내겠는데 가능성 없는 육체에 갇힌 그녀의 영혼은 육체를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생명을 어디까지 생명이라 할 수 있을까.

인간의 존엄을 어디까지 존엄이라 할까.


그녀는 그대로 일여 년을 요양원 침상에서 견디다 삶을 마감했다.

마지막 그 일여 년은 그녀가 원하지 않는 삶이었다.

그냥 어쩔 수 없어서 버텨낸 고통의 시간들이었다.


고통도 삶의 일부이지만 가능성 없는 고통은 학대이었다.

망가진 육체에서 벗어나지 못해 슬퍼하던 그녀가 아직도 생각난다.

존엄사가 얼마나 절실했는지 모른다.


사회적 규율과 법이 그녀에게는 죄 없는 감옥살이였다.

따스한 햇살을 느끼는 것은 육체가 거동할 수 있을 때이다.

예외도 있지만 그녀에겐 이럴 때가 삶이다.


그녀의 경우 삶과 죽음의 선택권이 주어져야 그녀의 존엄이 지켜지는 것은 아닐까.

물론 삶도 중요하지만 존엄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삶은 계속되고 있다.

누구에게나 닥치는 이런 상황들도 계속되고 있다.

내게도 곧 닥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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