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7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신경긁기

자격지심

by 오순 Mar 26. 2025

그녀는 청소부다. 

그녀는 작은 어린이 도서관 내부를 청소한다.

그녀는 청소를 하는 것이지 자신이 청소부라는 생각이 없다.


청소부는 일정하게 일을 하고 돈을 받는 계약직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청소부라는 직업 안에 자신을 가두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녀를 그냥 청소부로만 볼 때 그녀는 자신도 사람들과 같은 사람임을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다. 


청소를 하다가 중간중간에 그녀는 아무 자리 나 빈자리에 앉아 책을 보거나 핸드폰을 하고 있다가 다시 청소를 한다. 마치 자기 집을 청소하듯 직업이 아니라고 자신에게 사람들에게 위시하듯 그녀는 아무 때나 청소하고 쉬고 싶을 때 쉬었다.


도서관에는 다양한 사람이 오간다. 그중에 그녀의 신경에 걸리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녀를 그냥 청소부로만 본다. 그 사람이 직접 말은 하지 않았으나 온몸에서 일체의 대화의 문을 닫아걸고 있다. 


그녀가 마른기침을 크게 하거나 하면 그 사람은 조용한 실내에서 소음 때문에 신경이 거슬린다는 투로 한번 인상을 쓰며 스쳐보듯 고개를 들었을 뿐 그녀를 바로 바라보지도 않는다. 일부러 그 사람 옆을 바짝 지나가거나 오가며 내려다보는 데도 그 사람은 그녀가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가 보다. 


그녀는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그 사람에게 집착하듯 모든 신경이 그리로 쏠린다.

그 사람이 특별히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고 친밀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냥 그 사람이 그녀의 신경망에 걸리는 것이다. 그녀 자신도 왜 그러는지 알 수 없다.


나이는 자신보다 훨씬 많을 듯 염색하지 않은 듯 흰머리와 검은 머리가 섞인 치장하지 않은 모습의 그 사람은 항상 오픈 시간 조금 넘은 시간에 와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책을 읽거나 무언가를 노트에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타이핑하고 있다. 오후 늦은 시간까지 아주 열심히 한다.


그 사람은 자신 외에 다른 이들을 용납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다 스쳐가는 바람처럼 바라본다. 그것이 그녀를 불편하게 한다.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도 모르게 안달 난 사람처럼 작은 소란들을 피우며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그 사람의 신경을 거스르게 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이 왜 그러는지 그 사람은 알고 있는 듯하다.

처음에는 의아한 표정이더니 지인인가 싶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점점 그녀의 무딘 신경전에 짜증이 좀 난 듯하다. 이제는 아예 그녀를 청소부 외 아무 생각이 없는 듯 눈이 마주쳐도 투명 인간처럼 대한다. 


그녀는 진짜 그 사람의 범주에서 완전히 벗어난 청소부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것이 아주 언짢았다. 실수로 떨어뜨린 척 물건을 던지고 사물함 문을 꽝 닫아도 신경이 거슬린다는 인상을 살짝 쓸 뿐 아예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아무리 그녀가 퉁탕거려도 상대를 해주지 않으니 점점 더 그녀는 자신이 원하지 않던 투명인간 청소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화가 나기 시작했다.


고상한 척 커피도 마셔 보고 책도 읽고 하지만 그 사람은 그녀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고 반응도 없다. 그러든 말든 그 사람과 그녀는 아무 연관이 없는데 어찌하여 그녀의 신경은 그 사람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그녀 자신도 알 수 없다.


그 사람에게 존중받고 싶은 것일까. 그 사람이 그녀를 무시했는가. 왜 그녀의 신경은 제멋대로 아무 상관없는 사람에게 걸려드는 것인가.

답 없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늘도 그녀는 그 사람의 신경을 긁고 있었다.


그녀는 왜 아무한테나 자존심을 걸어서 자존감을 훼손당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걸까. 왜 존중받고 싶은 것인가. 청소부라는 직업이 무시당하는 직업이라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청소부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닐까. 


그녀가 그녀이고만 싶은 것은 그녀 스스로 직업으로 인한 자격지심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가. 그것을 아닌 척하는데 그 사람이 유독 그녀의 그 자격지심을 건드린 것은 아닐까. 그것에 화가 나서 그 사람도 그녀와 같은 부류로 끌어내리고 싶은 오기가 발동한 것은 아닐까. 


청소부가 아닌 그 사람을 무엇으로 끌어내린다 말인가. 그녀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화가 난다. 이것은 호감도 아니고 그녀 자신의 화풀이 대상을 찾아낸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 대상이 그녀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니 더 짜증이 난 것이다. 


아무 잘못 없는 사람을 신경 긁기로 괴롭히면서 그녀는 그 사람이 문제라고 덮어씌우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스스로 미친 스토커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진짜 그 사람이 그녀를 무시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무시라기보다 아예 상대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무가 되어가고 있다. 스스로 자폭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이 미친 신경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 사람 탓이라고 생각하는 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녀의 확신이 폭력이라는 것조차 그녀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그 사람을 질투하는 것은 아닐까.

그녀와 상관없다 관심 없다 하면서 그 사람의 자신감이 부러운 것이다.

그녀는 청소부가 아닌 그 사람과 동등해지고 싶은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판정패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