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우니까 시술

by life barista

명인성이 서명한다.

재산이 없는 배기각의 아내는 서명할 자격이 없다.

수술동의서라고 인쇄돼 있지만, 수술비 보증계약서라고 읽는 것이 정확한 문해이다.

명인성은 절절하게 인사하는 배기각의 아내를 안심시킨다.


배기각은 장난스레 한쪽 눈을 찡긋했지만,

이내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온몸이 느끼는 죽음의 공포를 통제하는 건 불가능하다.

배기각을 보는 명인성의 눈에 환자가 죽더라도 병원 측엔 책임이 없단 주의 문구가 겹쳐 보였다.

시술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쉬우니까 시술이라던 의사 말과 달리,

수술 표시등은 8시간을 넘긴 후에야 꺼졌다.

긴 수술로 피곤하기도 할 텐데, 의사의 얼굴엔 명랑한 생기가 돌았다.

그는 눈치 없이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나노 송과선은 정말 빨리 삽입했어요.

그래서 전체 수술도 일찍 끝나겠거니 좋아했죠.

그런데, 원래 있던 구형 로봇 팔다리를 신형으로 교체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리는 거예요.


모르셨죠?

구형 로봇 팔다리와 연결되었던 몸에 괴사가 대단했어요.

평소 엄청 아팠을텐데, 그걸 어떻게 참았을까요?

여하튼 그걸 다 파내고 인공충전물로 채웠는데, 출혈이 너무 심했어요.

아, 이러다가 심장 쇼크로 환자가 죽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마저 들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누굽니까?

나노 송과선 시술 100회에 빛나는 전문의 아닙니까!

환자는 물론 밖에 계신 보호자를 생각해 아무리 어려워도 최선을 다하자,

이렇게 다짐에 다짐을 반복하며 이겨냈습니다.

결론적으로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긴 설명이 끝나자,

배기각의 아내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도 그럴 것이,

별별 나쁜 생각과 싸운 수술 시간 내내,

그녀는 물조차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이 말 한마디를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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