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방송 끝장 토론’ 시그널이 음악과 함께 화면에 등장한다.
카메라가 스튜디오 전경을 잡는다.
사회자가 중앙에 앉고, 좌우로 찬반 패널 3명씩 총 7명이 배치된다.
스튜디오는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사회자가 토론회를 시작한다.
“여러분,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든 사건들을 기억하십니까?
계모가 여섯 살 난 아들을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
귀가 중인 여성이 쳐다봤다는 이유로 성폭행하고 살해한 사건,
초등학생을 납치해 죽인 후 부모에게 돈을 요구한 사건 등 인면수심의 사건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분노한 시민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과학기술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나노 송과선, 선택인가 필수인가?’입니다.
감정 통제를 통한 범죄 예방이 가능하다면,
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미래신국당의 헌법 개정안처럼,
나노 송과선을 탑재한 AI 사피엔스에게 더 많은 투표권을 주어 이러한 정책을 추진해야 할까요?"
카메라가 찬성 측 패널을 비춘다.
범죄심리학자이자 AI 사피엔스 사의 사외이사인 교수가 강한 어조로 말한다.
“이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가 아닙니다.
이런 범죄자들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짐승 같은 존재입니다.
도대체 이런 반사회적 인간들에게 민주 시민과 동등한 투표권을 줘야 합니까?
우리는 과학기술로 감정을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나노 송과선 개발에 참여했던 뇌 과학자가 거든다.
“나노 송과선을 삽입하면 뇌 호르몬이 조절됩니다.
분노, 혐오, 폭력성, 충동이 사라지죠.
냉정하고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해지면,
범죄와 무질서가 줄어들 게 확실하지 않습니까.
인간 사회가 좀 더 예측 가능해진다면, 망설일 이유가 있습니까?”"
미래신국당 박금배 캠프의 대변인이 침착한 어조로 덧붙인다.
“우리는 자기 감정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국가의 미래를 맡겨도 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나노 송과선을 이식한 사람들이 더 많은 투표권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보다 합리적이고 공정한 민주주의 아닐까요?”
이제 카메라는 차등 투표제에 반대하는 인류학자를 비춘다.
“우리는 인간입니다.
감정은 인류 진화의 선물입니다.
충동적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고 해서,
완벽한 인간이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런 인간은 아예 인간이 아니에요.
감정이 사라진 냉혈한의 사회를 원하세요?”
인권운동가가 거든다.
“분노는 부당함에 저항하는 힘입니다.
분노를 억제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불의에 맞설 수 있습니까?”
참여민주당 인문희 캠프의 대변인이 열을 올린다.
“차등투표제의 속셈은 계급 사회를 인정하자는 겁니다.
계급을 인정하는 건 민주주의를 포기하자는 겁니다.
감정을 제거하는 것이 더 좋은 민주주의를 만든다고요?
아니죠!
그건 AI 사피엔스라는 귀족이 일반인을 노예처럼 부려먹잔 주장입니다!”
사회자가 토론을 이어간다.
“나노 송과선을 수술하는 데,
그리고 다른 사람의 투표권을 사는 데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이에 반대 측에서는 결국 차등투표권은 거대 자본이 꾸민 음모라고 비난하는데요,
찬성 측에서는 어떻게 답변하시겠습니까?”
박금배 캠프 대변인이 단호한 어조로 답한다.
“평등의 원칙이란 간단합니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우리는 똑같은 인간을 다르게 대우하자는 게 아닙니다.
나노 송과선을 삽입한 사람들은 감정을 통제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이들이 더 많은 투표권을 갖고 국가를 이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능력을 얻기 위해 자기가 비용을 부담하겠다는데,
이게 왜 문제죠?”
인문희 캠프 대변인이 발끈한다.
“그렇게 따지면, 나노 송과선을 삽입하지 않은 사람들은 열등한 인간입니까?
AI 사피엔스가 돈을 주고 표를 살 수 있도록 한다고요?
그러면, 이들이 투자한 만큼 이익을 뽑으려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합리적이니까요!
이쯤 되면, AI 사피엔스들이 작당해 독재 시절처럼 사회적 자원을 독점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습니까?”
박금배 캠프 대변인이 목소리를 높인다.
“지금 뭐라는 거야? 독재?
그런 무식한 인간 본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게 나노 송과선이라고!
꼭 자기 같은 소리만 지껄이고 있어!”
“뭐요? 지금 반말한 겁니까?”
“그래, 반말했다, 어쩔래?”
토론이 격렬해진다.
좀 전까지 AI 사피엔스 같았던 박금배 캠프 대변인의 입에서도 욕이 튀어나왔다.
인문희 캠프 대변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말리던 진행자가 대신 맞았다.
카메라는 혼란스러운 스튜디오를 계속 비춰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움직였다.
생방송이었기에,
PD는 급하게 광고를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