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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회사는 이익을, 인간은 행복을 원한다 - 2

part 2. 행복의 철학사

by life barista

철학적 대안: 인간을 '의미의 존재'로 재정의하다


박 팀장처럼 자기 이익 극대화라는 경제학적 인간관에 머물러 계신 분들께, 이제 수천 년에 걸친 철학의 통찰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주류 경제학이 가정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인간을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단순한 존재로 봅니다. 이런 인간들은 서로를 자기 이익 추구의 도구로 이용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철학은 인간을 이렇게 보지 않습니다. 철학적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고 ‘탁월성’을 실현하는 존재입니다. 이익에서 의미로 관심을 전환하는 것은 우리가 돈과 효율을 넘어 진정한 행복을 찾는 데 중요한 첫걸음이 됩니다.


행복의 철학사: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그 자체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사상가들은 행복의 본질을 탐구해 왔습니다. 그들은 행복을 외적 소유나 우연한 성취가 아니라, 평온한 내면과 탁월한 삶의 실천에서 찾았습니다. 이러한 행복의 철학사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경제적 인간관이 남긴 상처를 치유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와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진정한 행복이란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따라 탁월하게 활동하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뜻하는 단어가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입니다. 이 말에는, 행복이 외부에서 우연히 주어지는 일시적인 기쁨(예컨대 복권 당첨) 같은 결과가 아니라, 영혼의 탁월함에 따라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일상의 활동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은 일회적인 쾌락이나 개인적 만족에 그치지 않습니다. 행복은 이웃과 공동체 전체의 선을 함께 추구하며, 자신의 삶이 공동선을 향해 나아갈 때 비로소 실현된다고 봅니다. 즉, 행복은 나만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도덕적인 선택과 실천에서 완성됩니다.

이를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는 프로네시스(Phronesis)입니다. 프로네시스는 우리가 복잡한 현실에서 무엇이 정의롭고 합리적인 선택인지 신속하면서도 현명하게 판단하도록 이끄는 '실천적 지혜'를 뜻하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 이것은 우리가 목표(행복)를 이루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알려주는 내면의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합니다.


둘째는 메소테스(Mesotes) 입니다. 흔히 중용으로 알려져 있는 말입니다. 메소테스는 프로네시스가 구체적 상황에 적용될 때 필요한 판단 기준입니다. 개별 상황에서 과도함과 부족함을 피해 최적의 균형점을 찾는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용기는 무모함과 비겁함 사이에 있는 적절한 감정과 판단 그리고 행동으로 발휘되었을 때 진정한 용기가 되는 것입니다. 메소테스는 기계적인 중간을 고집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가장 적합한 행동을 선택하는 구체적 유연성이 핵심입니다.


만약 박 팀장이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박 팀장이 결코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정한 에우다이모니아가 타인과의 조화로운 협력, 그리고 공동체의 성취를 통해 실현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개별적인 성공을 넘어서, 우리가 속한 집단과 사회의 공동선을 실현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인간 삶의 궁극적 목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대: 스토아학파와 행복의 내적 자유 (Ataraxia, Eudaimonia)


스토아 철학은, 참된 행복이 외적 소유나 변덕스러운 운에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참된 행복은 '덕의 실천'과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Ataraxia)'에 있습니다. 에픽테토스, 세네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같은 스토아 사상가들은 통제 불가능한 외적 요소(권력, 부, 평판)에 휘둘리지 말 것을 충고합니다. 대신 자신의 이성적 판단과 도덕적 태도에 집중하라고 당부합니다. 인생의 질적 만족감, 즉 행복은 외부에 있는 조건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내적 태도가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스토아 철학의 핵심 원칙입니다.


참된 행복은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힘'에서 시작됩니다. 이 힘은 내적 평정(Ataraxia)에서 나옵니다. 내적 평정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렇다고 현실을 수동적으로 인정하기만 해서는 진정한 내적 평정에 이를 수 없습니다. 진정한 내적 평정은 개인 수준에서 벗어나 공동체적 조화를 향해 나갈 때 맛볼 수 있습니다. 자기중심적 이익 추구를 넘어서야 합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관용, 공감, 정의를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내적 평정의 필수 요소입니다. 스토아 철학은 자연과 운명을 수용합니다. 동시에 선한 삶과 공동체적 책무를 다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봅니다. 내적 자기완성은 사회적 책임과 떨어질 수 없는 능동적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성공 같은 외부 결과는 나의 선택에 의해 그 의미가 결정됩니다. 우리의 태도가 최종 결정권을 갖는 겁니다. 최종 결정권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진정한 평온과 자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스토아 철학의 행복 핵심은 '자기 통제'와 타인과의 '조화를 향한 열린 마음'에 있습니다.


스토아 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박 팀장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외적인 조건에 모든 것을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토아 철학은 참된 행복이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박 팀장이 외적 성공에만 몰두한 결과, 그는 점차 내적 평온과 삶의 균형을 잃었습니다. 더불어, 팀원들과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관용과 사랑을 잃게 되었습니다.

박 팀장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높은 직함이나 외적 성취가 아닙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자기 내면의 덕과 타인과의 조화를 향한 열린 마음입니다.


중세: 토마스 아퀴나스와 공동선(Common Good)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의 삶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고 봅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 성취나 일시적 만족을 넘어, 절대적 선과 궁극적 가치인 지복(Beatitudo)―모든 인간이 지향해야 하는 최고의 상태―로 나아가는 방향성을 의미합니다. 그는 ‘행복’이 단순히 쾌락이나 물질적 풍요, 사회적 성공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목적인 이성적 삶의 완성과 영혼의 고귀함을 실현할 때 비로소 얻어진다고 봤습니다. 특히 개인의 생산성이나 사회적 활동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한 이윤 창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성장과 사회 전체의 공동선(Common Good)을 실현·확장하는 데 있다고 강조합니다.

아퀴나스가 말하는 공동선은 단순히 여러 사람의 이익을 합친 것(총합적 이익)이 아니라, 사회 전체 구성원이 함께 누릴 수 있는 도덕적·실존적 가치를 가리킵니다. 즉, 나 혼자만의 선이 아닌, 우리 모두의 선을 지향하는 것이 인간 존재의 완성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박 팀장처럼 경제학적 인간관이 자신의 이익이라는 좁은 영역에만 집중한다면, 아퀴나스의 철학은 그 삶이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인 지복(Beatitudo)으로 나아가는 방향성을 상실한 것이라 진단합니다. 박 팀장의 헌신은 승진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팀원의 성장을 돕거나 사회 전체의 도덕적 가치에 기여하는 공동선과는 거리가 아주 멉니다. 아퀴나스에게 진정한 행복은, 외적 성과가 아닌 이성적 삶의 완성과 함께 공동선을 향해 나아갈 때 비로소 완성되는 고귀한 상태입니다.

근대: 존 스튜어트 밀과 공리주의적 행복론


존 스튜어트 밀은 근대 공리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로, 행복을 단순히 개인의 쾌락이나 이익에 국한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회 전체의 최대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원칙에서 행복을 설명합니다. 밀에게 행복이란 고통이 없는 상태와 쾌락이 존재하는 상태입니다. 특히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밀은 쾌락의 양뿐만 아니라 질적 차이에도 주목했습니다. 단순한 감각적 쾌락, 즉 동물적 만족보다 높은 정신적 쾌락, 예컨대 지적, 도덕적 성취나 공동체에 대한 기여를 훨씬 더 가치 있다고 보았습니다. ‘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족스러운 인간이 되는 편이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되는 편이 낫다.’라는 그의 유명한 말은 쾌락의 ‘질’이 우리 삶과 행복을 결정한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공리주의 관점에서 개인의 이익 추구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도덕적 선택은 타인과 사회 전체의 행복을 증진하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때에도 협력, 배려,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하며, 결국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동선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 밀의 입장입니다. 밀에 따르면, 진정한 행복은 양적 결과뿐만 아니라 질적 만족—즉, 자기 성장과 타인과의 의미 있는 관계, 공동체적 성취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김 팀장이 밀의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단순히 경제적 이익과 효율에만 집중하던 삶에서 벗어나, 자신과 타인이 함께 성장하는 과정, 공동의 가치를 실현하는 경험을 더욱 중시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업무와 인간관계 모두에서 보다 깊이 있는 행복과 만족을 찾을 수 있게 해 주며, 경쟁을 넘어 협력과 공감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줍니다.


현대: 마사 누스바움과 역량(capabilities)으로서의 행복

마사 누스바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현대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녀는 행복이 단순히 돈이나 권력 같은 외적 소유에 있지 않다고 봅니다. 오히려 핵심은 개인이 “스스로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실질적 능력(capabilities)”을 갖추는 데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내가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가’라는 능동적 자유에 초점을 둡니다.


누스바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를 바탕으로, 행복이란 영혼의 탁월함에서 비롯되는 활동적 삶의 완성이라고 해석합니다. 개인은 자신의 삶에서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하면서, 공동체 속에서 존엄·성장·공감 등을 실현할 때 진정한 행복에 닿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녀가 강조하는 것은 실질적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적 환경입니다. 예를 들어, 여성 빈곤층에게 교육 기회나 건강권을 보장하는 일은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자기 삶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는 것입니다. 교육의 기회가 박탈되거나 장애인의 사회 참여가 제한되는 상황에서는, 사회의 번영과 구성원의 행복 역시 크게 제약됩니다.


이처럼 성별, 신분, 경제적 조건 등으로 제한된 역량을 해방하는 행위는, 그 개인의 ‘의미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공동체의 발전도 함께 이끌어냅니다. 이러한 관점은 실제 정책 설계에 큰 영향을 주어, 유럽연합 복지정책이나 UN 인간개발지수(HDI), 여러 사회적 소수자 인권 정책의 이론적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결국 누스바움은 행복의 초점을 ‘내가 무엇을 소유했는가’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될 수 있는가’로 옮깁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했던 인간 완성의 고전적 목표를, 현대 인권·사회정책·복지 실천으로 구체화한 것입니다. 시대와 철학적 입장이 다르더라도, 그들의 공통된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행복은 단순한 결과나 외적 성취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고 스스로 의미를 창조하는 주체적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우리의 일터가 단지 이익과 효율만을 중시하는 공간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자신을 ‘이익 극대화의 도구’가 아니라, 의미·성장·존엄을 추구하는 인간다운 존재로 재정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야말로 고전과 현대를 잇는 진정한 행복의 길이며, 오늘날 우리 삶과 공동체에 가장 필요한 철학적 통찰입니다.

마사 누스바움의 철학에서 박 팀장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명확합니다. 박 팀장은 지금까지 직함이나 외적 성공, 물질적 소유에 자신의 행복을 의존했습니다. 그러나 누스바움에 따르면, 진정한 행복은 단순한 성취가 아니라 "자신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박 팀장이 자신의 역량을 의미 있게 발휘하고, 공동체 속에서 존엄과 공감을 실현할 때 비로소 내적 평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하며, 자기 삶과 주변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타인과 협력하고 사회적 관계를 통해 자신만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것이 곧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행복도 높일 수 있는 길입니다.


박 팀장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소유나 사회적 지위를 쫓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의미 있는 활동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자유"와 "가능성"을 스스로 확장하는 데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적 행복론이 제안하는 자기 혁신의 길이며, 궁극적으로 박 팀장이 찾고자 했던 평온과 만족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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