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서도 함께 바다 수영을 즐기자고 말했다.
섬에서 태어난 아빠는 바다 수영을 무척 좋아하신다.
유년 시절, 여름 방학이면 7-8번씩 바다에 갔다. 가족 여행의 기억은 대부분 바다다.
엄마와 여동생은 파라솔 아래를 선호했고, 아빠와 난 늘 바다에 들어가 있었다. 아빠는 나를 튜브에 태우고 먼바다까지 헤엄쳐가서, 안전선 안으로 들어오라는 경고의 방송을 매번 들어야 했다. (방송 나오는 걸 은근히 즐기신 것 같다) 잠수해서 한참 만에 저 멀리서 나오는 아빠의 까만 머리를 찾곤 했다.
파도에 일렁이는 튜브를 타고 소란한 해변에서 멀어져, 드넓은 바다 위에 덩그러니 혼자 떠다니며 듣는 파도 소리와 갈매기 소리가 좋았다. 바다의 짠내도 좋았다. 손을 바다에 담그고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노래도 흥얼거렸다. 뜨거운 햇볕에 반짝이는 바다의 윤슬은 아름다웠고, 그렇게 몇 시간을 떠다녀도 질리지 않았다. 아빠는 장시간 수영하다 힘들면 내 튜브를 잡고 쉬기 위한 바다 위 휴게소(?)로 날 이용하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평소 근엄한 아빠와 바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좋았다. 물안경도 없이 맨몸으로 물개처럼 수영을 잘하는 아빠가 멋있었다. 바다에서의 아빠는 천진한 소년 같은 미소를 지었다.
기억은 온전하지 않아도 감정은 뚜렷이 남아서, 여전히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길 좋아한다.
우연히도 아빠처럼 맨몸으로 바다 수영이 가능한(서울 남자인데도!) 만능 스포츠맨 남편을 만났다. 둘 다 바다를 좋아해서 동해를 우리의 여름 고향이라고 부를 정도로 자주 다녔더니, 아이들도 바다를 제대로 즐길 줄 알게 되었다. 모래성도 쌓고, 예쁜 조개껍질도 줍고, 튜브도 타고, 파도가 세면 해변을 뛰어다니며 파도 피하기 놀이를 한다. 내 어릴 적 모습과 똑같아서 웃음이 난다.
바다에서 읽을 책으로 챙겨간 <모든 삶은 흐른다>에는 내가 바다를 사랑하는 모든 이유가 담겨있었다.
바닷가에서는 오직 바다만 경험해야 한다. 바다를 보고 바다의 향을 맡고 바닷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바닷물을 만지면서 온몸으로 황홀감을 맛봐야 한다. 바다만큼 모든 감각을 자극하는 즐거움을 주는 것은 드물다.
나는 이것을 유년 시절부터 깨닫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노부부가 손을 잡고 수영복 차림으로 해변을 걷는 뒷모습 사진이 생각나 찾아보니, 2020년 여름에 엄마에게 선물 받은 책 <알렉스 드림>에 나온 사진이었다.
‘세월의 파도를 함께 넘어온 노부부는 뒷모습도 닮았습니다.’라는 문장과 함께.
이 사진을 남편에게 보여주며 했던 말이 기억난다.
우리도 나중에 바다와 가까운 곳에 살면서 늙어서도 함께 바다 수영을 즐기자고.
그날이 오면 이 글을 읽고서 지금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겠지. 덕분에 매일 바다를 보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난 여전히 바다 수영을 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