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굴곡이 거의 없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곡선(Curve) 기울기가 크지 않고 완만하다.
매일 단조로운 일상이다 보니, 본인 스스로 재미를 찾아 엄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특히, 일상의 생활중 버스를 타고 다니는 일을 그중 가장 큰 이벤트로 여기는 승객들이 종종 있다. 시골버스를 타고 괴산 바닥을 유람하는 것이 일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버스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자신의 생활 리듬을 갖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하니 버스기사는 그 이벤트의 중심에 서 있는 핵심이 되는 인물이다. 버스기사는 그만큼 승객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인물이라는 말이다.
버스기사에게 인사를 건네었는데 안 받았다던가, 운행 중 노인들에게 앉아계시라고 큰 소리로 윽박질렀다던가, 버스를 과격하게 몰았다던가...
이 모든 일들이 시시비비(是是非非) 가리기도 전에 이 분들에게는 좋은 민원(民願) 감이다.
대한민국의 검사들만이 갖고 있는 기소독점주의와 비슷하다. 본인에게 친절하여 맘에 드는 기사는 규정을 어기더라도 착한 기사로 인정하며, 그렇지 않은 기사는 승객 본인의 안전을 위하여 한 마디 한 것도 괘씸죄에 걸려, 회사 사무실로... 군청 교통계로 하루 걸러 한 번씩 민원전화를 한다.
버스 승객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다고...
특히, 상대적으로 젊은 기사나, 배차를 받은 지 얼마 안 된 신입기사는 귀신같이 알아보고, 일상의 지루함을 달래는 제물쯤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시골 버스기사들에게 악명 높은 "민원의 여왕"쯤 되시는 여자가 한 명 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남편과 이혼하고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와 혼자 살면서, 개 세 마리를 키우는 나이 60세 잡순 아줌마다.
외모는 약간 도회지 풍이며, 대충 그럭저럭 하게 생겼다. (구체적인 묘사는 개인의 인격을 모독하는 행위일 수도 있어, 더 이상의 언급은 자제하기로 하겠습니다.)
하여간 본인은 괴산의 모든 기사들이 자신만을 쳐다본다는 착각을 하는지, 버스에 타고 있을 때나 혹은 승. 하차 시에도 기사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느껴진다. 우리 회사에 근무하는 기사들 중 신입 기사를 제외하고는 그녀를 모르는 기사는 거의 없다고 나는 장담할 수 있다.
안면인식 장애 성향이 살짝 있는 나 조차도 그 여자의 얼굴은 또렷이 기억한다. 혹시, 그 여자에게 일말의 흑심이 있어 얼굴을 기억한다는 오해의 여지가 있을까 봐 밝혀 두지만...
나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유부남일 뿐 아니라, 내가 비록 괴산 산골에 내려와 시골 버스기사를 하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할머니들인지라 여자를 보는 눈이 좀 낮아지기는 했을지라도 나도 여자 보는 눈은 있다.
내가 눈이 삐었음 모를까 어찌 그런 여자를...
사실은 일 년쯤 전에 그 여자와 한 번 시비가 붙었었다. 그래서 그 얼굴을 기억할 수밖에...
그 여자가 사는 동네, 타고 내리는 승강장 위치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할 수 없음은, 내가 페북에 글을 올린 사실이 그 여자의 귀에 들어가 성가신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얼마 전 젊은 동료 기사가 그 여자에게 된통 당하고 있는 것을 옆에 있던 동료기사가 거들었던 사건이 있었다. 그 일 때문에 사무실로, 군청으로 민원전화를 하며, 거들었던 기사로부터 사과를 받겠다고 한 참을 시끄럽게 했다. 결국은 군청 담당자의 주선으로 기사와 화해하는 선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젊은 동료 기사의 역성을 들던 그 기사는 억울함에 그 여자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었다. 역성들던 그 기사님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는데, 그 울분을 오로지 예수님 마음으로 승화시킨다고 그랬다.
" 한 기사! 나 4개월 후에 그 여자가 타는 노선으로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버스노선을 바꾼다.
" 형님! 저도 3개월 지나면 그 노선으로 가야 하는데... 제가 지금 남 걱정해 줄 처지입니까? 뭐! 수행자(修行者)의 자세로 운전하면 되겠죠!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
그날은 점심식사를 끝낸 후 첫 번째 운행이었다.
청천 터미널을 출발하여 약 3분쯤 지나면 '금평'이라는 곳을 지난다. 금평 삼거리에 다 달았을 때 한 여자 승객이 손을 들어 버스를 세웠다.
그런데...
앗! 바로 그 여자다.
' 어? 이상하다. 이 노선은 그 여자가 다니는 노선이 아닌데... 내가 잘못 봤나? '
다시 보아도 그 여자다.
" 쓰벌, 오늘 똥 밟았네!..."
나도 모르게 자조(自嘲) 섞인 한탄(恨歎)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버스 문을 열어주고 그 여자가 버스에 승차하기를 기다리며, 일부러 눈을 안 마주치러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슴에서는 긴장감에 쿵쾅거리는 소리가 버스 안을 울리는 것 같았다.
이 시간대에는 식곤증(食困症)으로 나른한 몸과 마음에 한쪽 눈이 슬슬 감기는 고난의 운행이 가끔씩 찾아온다. 운행전 잠깐 미리 눈을 붙이거나, 버스 안과 밖의 상태를 정비하면서 버스 주위를 몇 바퀴 돌아 졸음을 쫓곤 했다.
그러나 그 여자가 버스에 타고 있다는 것이 인지된 순간부터 그 여자의 먹잇감이 되지 않겠다는 생존의 발버둥으로 식사 후의 나른함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아주 경건하고 정숙하게 종교활동에 참가하는 수행자의 마음으로 운전을 하여 목적지까지 무탈하게 도착하였다. 나는 그저 신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나에게 무사히 버스를 운행하게 하기 위하여,
신께서 그 여자의 모습을 한 천사를 내게 보내신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