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의 노선은 두 가지다.
그중 하나가 괴산 터미널을 출발하여 '감물, 목도'라는 곳을 거쳐 '음성'까지 다녀오는 왕복 노선이 있다.
보통 음성 터미널에서 승차한 승객은 '목도'까지 가기 전 거의 하차하거나, '목도'를 지나쳐 '감물'까지 오는 승객도 극 소수다. 하물며, 괴산 터미널까지 주야장천 가는 승객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음성 터미널에서 '소수'라는 곳을 거쳐 괴산 터미널로 오는 직통 노선이 있기 때문에 그 노선의 버스를 타는 것이 상례이다. 물론, '목도' 노선이 '소수' 노선보다 운행시간도 두배 더 걸린다.
그런데 가끔 목도로 돌아오는 긴 노선의 버스를 타고 괴산으로 오는 승객들이 있다. 대부분 할 일이 없으시고, 남는 거는 시간밖에 없는 노인들이다. 시골버스를 관광버스 삼아 시간도 때울 겸, 무료한 하루를 보내는 주요 행사 삼아 타고 다니신다.
시골 버스기사가 제일 경계하는 요주의 인물들이다. 연세가 많으신 노인들이다 보니, 족히 한 시간 이상을 통통 튀는 버스의 딱딱한 시트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계신 것도 고역일 것이다. 에어 서스펜션이 붙어있는 관광버스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 승차감에 차창에 커튼도 없는 시골 버스를 타고, 기사 눈치를 보며 관광을 다니시는 노인들을 보면 측은해 보이기도 한다.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햇빛의 방향이 수시로 바뀐다. 버스에 커튼이 없으니, 노인 관광객들은 햇빛을 핑계 삼아 자리를 옮겨 다니시고, 이럴 때 시골 버스기사는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다. 시한폭탄을 싣고 다니는 느낌이 든다.
"실례지만 어디까지 가십니까?"
최대한 정중하게, 그러나 낮은 목소리로 무겁게 질문을 했다.
음성에서 승차한 승객 중의 한 명이 분명한데, "감물"을 지났는 데도 도무지 내리실 기미가 안 보여서 말을 걸어 본 것이다.
특히, 오늘은 "감물"에서 감자 축제를 한다고 하여 모처럼 시끌시끌하게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그나마 교통정리를 한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차를 세워놓아 통과하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어지럽게 주차된 차량 사이를 비집고 다니느라 신경이 곤두선 버스기사 눈에 달랑 혼자 타고 계신 노인네가 보인 것이다.
"일 보러 괴산까지 가요!"
"아니, 무슨 일을 보러 가시는데 이 버스를 타셨습니까? 음성에서 괴산으로 직접 가는 버스를 안 타시고... 이렇게 시간이 늦어져도 되는 일인가 봅니다."
불만이 잔뜩 들어있는 버스기사의 질문이다.
" 뭐... 중요한 일은 아니고... 그냥 시간이 남아서..."
시골 버스기사가 가장 탐탁지 않게 여기는 승객이었다.
올해로 72세가 되신다고 했다.
차를 타고 돌아다니시는 것을 좋아하셔서 멀리 돌아가는 버스를 탔으니 너무 나무라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버스기사의 고충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시는 걸로 봐서 그렇게 경우가 없는 노인이 아닌 것이 확실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뇌수막염을 알아 사경(死境)을 헤맸다가 기적적으로 생존하셨다고 하였고, 그 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해 운전면허를 가져보는 것을 평생 이루지 못할 소원으로만 그치셨다고...
그 당시 병원을 가보거나 의사를 만나기가 어려운 시절이라, 그분의 아버님은 아이가 의식을 잃고 숨도 쉬지 않아 죽은 걸로 알고 장사를 치르려 거적때기에 말아놓았다고 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한 시간이라도 더 있다가 묻으라고 울며불며 사정하여 하룻밤을 집에 방치하였는데, 다음날 아침 매장하러 가기 전 얼굴이라도 한번 더 보려고 거적을 들추니 애가 숨을 쉬더라고...
열흘을 혼수상태로 있다가 깨어나셨다고 했다.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여, 아들을 삼 형제 두고 며느리도 세명 보았다고 하며 웃으셨다. 신발가게를 하시다가 이제는 은퇴하여 소일거리로 버스 타고 유람 다니시는 중이라고...
시골 버스기사는 그 짧은 시간에 한 남자의 칠십여 년 동안의 죽음과 삶에 대한 굴곡진 서사(敍事)를 마주할 수가 있었다.
"제가 귀한 분을 만났습니다. 저의 무례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
"기사 양반 무슨 말씀을... 내가 더 미안 허유! 참 내가 죽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증인이니, 나를 만난 것도 인연이라 생각하시고 복권이나 한 장 사보 슈! "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하"
그리고 그날 시골 버스기사는 거금 만원을 들여 복권을 두장 샀다.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