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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경찰

by 한지원

괴산에서 증평을 오가는 노선은 '사리면'이라는 곳을 항상 들른다. 시골버스는 물론이고, 서울을 오가는 시외버스도 뻥뚤린 4차선 신작로를 액셀 페달을 밟고서 100km/h를 넘도록 신나게 달리다가도 사리면에는 꼭 들러서 간다.

시골 버스기사도 증평에서 괴산으로 향하다가 바로 그 '사리'를 들렸다. 승강장에 세 사람이 버스를 타려고 대기 중이었다.


"청주? 병원?..."

그중 한 할머니 한분이 기사에게 질문을 한다.

질문을 유추해 보건대,

'내가 청주에 있는 병원에 가야 하는데, 이 버스 청주에 가느냐?'란 말씀일 거다.

"청주는 안 갑니다. 괴산 갑니다."

또다시 "병원? 청주?"

할머니 질문이 순서만 바뀌었을 뿐 내용이나 형식은 앞과 동일하였다.

그렇게 몇 번을 부조리 연극 같은 대사가 더 오고 갔고, 깨끗한 입성과 들고 계신 핸드백 때문에 잠깐 동안 정상인과 혼동을 하였으나, 할머니와의 대화 몇 마디로 할머니에게 치매가 있다고 느껴졌다. 그냥 모른 척한다는 것이 양심에 께름칙하게 느껴져, 버스를 길거리에 세워 놓은 채로 맞은편 파출소로 향했다. 폐쇄된 건물이었다.

'안내문이라도 써놓을 것이지...'

시골 경찰에 대한 불만이 입 바깥으로 잠시 흘러나왔다. 그리고 112 신고...

"팔십 세는 넘어 보이시는 할머니 이신대, 이차... 저차... 이렇고... 저렇고..."

시골 버스기사는,

할머니를 버스 승강장에 놔두고 오는 덕분에 괴산으로 버스를 몰고 오면서도 편치 않은 마음을 달래고자 경찰 상황실 관계자에게 입을 쉬지 않고 놀리고 있었다.


얼마 후...

"땡! " 접수되었다는 메세지가 휴대폰을 울렸다.

[청안파출소 괴산청안가 출동하여 11:44에 현장도착 예정입니다. 긴급한 경우 010-0000-0000로 연락 바랍니다.]

그렇게 설명을 하고도, 혹시나 승강장을 못 찾을까 하는 노파심에 명기된 번호로 전화를 다시 걸었다.

" 그 승강장 위치는... "

전화받는 경관이 시골 버스기사의 말을 끊었다.

" 기사님 알겠구요! 아니, 아무리 귀찮다고 치매노인을 승강장에 그냥 내려놓으면 어떻게 합니까?

경찰서에 인수인계를 하시던가 하셔야지 무슨 일 있으면 기사님이 책임지실 거요? "

전화를 받은 경찰이 시골 버스기사에게 건네는 일갈이다.

그렇게 입이 아프도록 버스 승객이 아니라고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버스에 타고 계시던 치매노인을 승강장에 버리고 온 몰상식한 놈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상황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 '아니, 이 자식 봐라! 경찰 맞아? 얘들은 상황실에서 상황을 전달하지 않나?')

마음을 추스르느라 심호흡을 했다.

그다음 멘트가 더 가관이다.

" 기사님! 그분 인적사항 좀 불러주세요! "

내가 면사무소 직원도 아니고, 승강장에서 생전 처음 본 할머니 인적사항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 경찰관은 자신의 질문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인지했는지, 인적사항을 인상착의로 정정해서 다시 물어보았다.

사실 나도 깨끗한 차림새와 핸드백 정도 밖에는 기억을 못 했고, 기억나는 대로 질문에 답을 하였다. 할머니를 걱정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그 경찰관과 사생결단의 마음으로 대판을 하고 싶었으나, 참고 또 참았다.

" 경관님! 지금 운전 중이니 내가 터미널 들어가서 전화 다시 하리다! "

얼마가 지났을까...

다시 전화가 울렸다. 그 번호다.

그 경찰관이다.

" 기사님! 운전 중에 죄송한데, 할머니라고 그러셨나요? 그리고 인적사항 좀 다시... "

( '아니, 이런 개 아들 같은 놈을 봤나! 이거 정말 돌은 놈일세! 완전히 치매 경찰이야! ')

이제는 부글 거리다 못해 뚜껑이 반쯤 열렸다.

"이거 봐요! 아까 할머니라고 내가 말 안 했습니까! 기억 안 납니까? 터미널 가서 전화할 테니 전화 그만합시다!"


터미널에 들어와 전화를 다시 했다.

다른 경관이 받았다.

"조금 전 통화는 상황이 파악이 안 돼서 실례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사님께서 좋은 일 하신 걸 저희들이 잘못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며, 할머니 안부를 물었으나, 발견을 못 하였다고 하였다.

깨끗한 옷차림으로 보아 아침에 집에서 나오실 때는 정신이 맑으셨다고 짐작되며, 다시 정신이 들어 집으로 돌아가셨다고 나 스스로 나를 위로하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그 못 돼먹은 경찰관 말처럼 모든 일이 내 책임 같았다.


안타깝게 스러져간 생명들의 그림자가 지워지지도 않은 반지하 셋방 앞에서...

번쩍이는 구두로 홍보사진을 찍으면서

왜 빨리 탈출 안 했냐고 묻는 놈이나,

애먼 버스기사에게 치매노인 인적사항 내놓으라는 지랄하는 놈이나....


공무원들이 저 꼬락서니니, 나라꼴이 잘 돌아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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