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서류부터인지 포유류부터인지... 아니면 생명이란 타이틀이 붙은 모든 생명체가 꿈을 꾸는지 모르겠으나, 우리 집 고양이들의 취침 장면을 관찰해보면, 자면서도 다리를 휘젓는 것으로 보아 쥐를 쫓는 꿈을 꾸는 것으로 보인다.
그 장면이 얼마나 귀여운지...
물론 사람도 꿈을 꾼다.
자면서 꿈을 꾸기도 하지만, 대낮에 멀쩡히 두 눈을 뜨고 꿈같은 상상을 하기도 한다.
꿈과 상상은 몸을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 오롯이 뇌의 활동으로만 이루어진 체험인 것은 분명하다. 비록 내가 원해서 하는 상상과 의지와 관계없이 무의식적인 뇌의 활동으로 꾸어지는 꿈은 차이가 있겠지만...
아마도 인간이 인간 이외의 동물과의 차이점을 꼽으라면, 추상적인 상상을 한다는 것 일거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동물들과 구분되는 가장 큰 요소(要素)는 실재(實在)가 없는 상상의 산물을 실체(實體)처럼 창조하여 공유한다는 것이다.
법이 그렇고, 국가가 그렇다.
돈이 그렇고, 권력이 그러하다.
특히, 종교는 병적이다.
모두 실재가 없는 인간의 상상 속에서 탄생한 창조물들이며, 우리 인간은 이런 것들이 둘러싼 사회 속에서 안주하거나, 감옥처럼 느껴지는 울타리 안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기도 한다.
그렇다고 현실을 파괴하거나, 오랜 기간 동안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의 규칙을 부정하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증평에서 괴산으로 가는 도로 중 '미암네거리'를 통과하는 도로가 있다. 시골 버스 노선중 증평 산업단지 쪽으로 가는 노선은 이 '미암네거리' 에서
반드시 좌회전을 하여야만 산업단지 쪽으로 갈 수가 있다.
괴산 쪽으로 가는 직진 차선 두 개, 증평 시내 쪽으로 가는 우회전 차선 한 개, 산업단지 쪽으로 좌회전을 할 수 있는 차선 한 개, 이렇게 이 도로에는 모두 네 개의 차선이 있다.
한가한 낮 동안에는 한 개의 좌회전 차선으로도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출. 퇴근시간에는 문제가 달라진다. 조금만 늘쩡거리다가는 좌회전 신호 두. 세 번을 기다렸어도 신호를 못 받는 경우도 생긴다.
물론, 모든 차량들이 바쁘겠지만, 우리 시골버스는 도착시간이 정해져 있는 목적지가 있어 마음과 몸이 시간에 쫓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텅 빈 직진 차선으로 덩치 큰 버스를 몰고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서 신호에 관계없이 좌회전을 한다.
여기서 시골 버스기사는 신호위반, 좌회전 방법 위반, 차선위반, 양심 위반 등... 어린이 과자 종합 선물세트 같은 도로교통법상의 서너 가지의 불법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저지르게 된다.
단돈 일 달러가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아프리카의 최빈국(最貧國)의 국민이 영양 과다로 퉁퉁 불어 터진 몸매 때문에 다이어트 비용으로 수천 달러를 지불하는 부국(富國)의 국민을 보는 마음이, 달랑 하나 있는 좌회전 차선 끄트머리에서 길게 늘어진 차량을 보며, 텅 빈 직진 차선을 바라보는 시골 버스기사의 심정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버스와 도로는 실재(實在)가 있는 사물이다.
버스는 내가 만질 수 있는 존재하는 물질이고, 도로는 실재하는 버스의 바퀴가 딛고 서있는 땅의 표면이다.
그러나 버스 기사가 그렇게 몸 달아하며 지키고 싶었던 시간이나, 뻔뻔한 얼굴로 위반한 도로 교통법은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想像)의 산물이다. 실제(實際)로 존재(存在) 하지 않는 실재(實在)가 없는 물질이다.
특히, 도로 교통법은 차를 몰고 다니는 인간들이 서로의 편의를 위하여 규칙을 정하고, 규칙을 위반한 인간을 단죄를 하기 위하여 만든 일종의 합의다.
작금(昨今)의 대한민국은 모든 것이 휘어지고 뒤틀어졌다.
'공정(公正)'과 '정의(正義)'는 의미를 잃었으며, 우리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법과 돈은 몇몇 권력을 쟁취한 사람들만의 소유물이 되었다.
일반 서민은 고단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 실재(實在)하는 몸뚱이를 새벽부터 밤늦도록 혹사시키지만, 권력과 돈을 움켜쥔 자들은 실체가 없는 법전이나 통장에 찍혀있는 숫자로 서민을 협박한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의 상상을 하여야 한다.
빈국과 부국의 경계가 없는...
성별, 신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구분하지 않는, 차별이 아닌 차이만이 존재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