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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구동물(後口動物)

by 한지원

생물학의 한 종류로 발생학(發生學, 영어: embryology)이라는 분야가 있다.
발생학은 생명체의 시작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생물학을 공부하는데 기본이 된다고 한다.
그 발생의 단계 중 수정란이 세포분열을 시작하여 태아(胎兒)가 되기 전까지의 과정을 배아(胚芽)라고 하고, 이 배아가 하나의 개체로 발생하기 전 원구(原口)라고 불리는 구멍이 배(胚)에 만들어진다. 그 원구는 각각 세포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고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하여, 외부로부터 유기물 등을 받아들이는 입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원구가 그대로 입으로 발생되는 동물이 선구동물(先口動物), 그 반대편에 다른 구멍이 생기면서 먼저 생긴 원구는 배설하는 항문이 되고 후(後)에 생긴 구멍이 입이 되는 동물이 후구동물(後口動物)이다.
선구동물은 기생충이나 지렁이 같은 하등 한 생명체들이 대부분이며, 지구상의 가장 고등한 생명체라 자칭하는 인간은 당연히 후구동물이다.
선구동물들은 입과 항문을 하나로 사용하는 동물들이 주종이어서 구멍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면 입력과 출력이 모두 정지하여 세상을 하직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후구동물들은 입구와 출구가 동시에 고장 난 다는 보장이 없다.
특히, 인간은 입구를 정신력으로 지배 함으로 다른 동물들과 차별이 되기도 하는데, 금식을 하며 신앙심을 고취시키거나, 자신의 의지를 타인에게 관철시키기 위하여 단식투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입구는 멀쩡한데 출구가 망가지면, 인간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도 유지하기가 어렵다. 이것은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 이기도 한다.
이럴 때는 차라리 먹지를 말아야 하지만, 인간의 4대 욕망중의 하나인 "식욕"을 정신력으로 지배한다는 것은 보통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경지의 일이 아니다.

기계 장치나 설비는 CPU(Central Processing Unit : 중앙 처리 장치 )에서 제어하는 밸브(valve)로 유체(流體)의 흐름을 단속(斷續)한다.
동일한 원리로 후구동물들은 소화하고 남은 음식물 찌꺼기를 아무데서나 함부로 배출을 못하도록 뇌에서 괄약근을 조절하여 배출장소와 시간을 조절한다.
그러나 나이가 먹어감에 근육과 피부가 탄력을 잃어, 노후화된 항문의 괄약근을 뇌의 의지만으로 제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한다.
여러분은 고무줄이 헐렁한 팬티를 입어 보신 적이 있는가? 입은 건지, 걸친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마치 항문에 힘을 준 건지, 안 준 건지 감각이 없는 것처럼...

운명의 그날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터미널 홈에 버스를 대고 승객을 승차시키고 있었다.
출발 시간을 약 30초 정도를 남기고 할아버지 한분이 버스에 올라왔다. 버스 입구부터 퍼지는 의미심장한 냄새가 시골 버스기사를 긴장시켰다.
마치 명절날 고속도로 휴게소에 설치된 임시 화장실에서 풍기던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처럼...
연로하신 분에게 승차거부한다는 것도 내키지 않았지만, 내가 모시고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별다른 제제를 하지 않았다.
버스의 모든 창문을 개방하고 버스 운행을 시작했고, 다른 승객들의 항의 없이 무사히 목적지까지 모셔다 드렸다. 그 사이 버스 안에 퍼지는 악취는 시골 버스기사의 유별나게 예민한 코를 마비시킬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투철한 직업의식으로 역경을 견뎌낸 내 자신이 기특하기도 했다.
회차지점에서 잠시 정차한 틈을 타, 물휴지의 반통을 소비하면서 시트에 밴 냄새를 지우고 또 지웠다. 할아버지가 앉았던 자리에서 배어 나온 노리끼리한 색깔의 액체를 보면서...
다시 출발할 시간이 되어, 작업을 멈추었을 때 악몽 같은 흔적을 70% 정도 밖에는 제거하지 못했다.
되돌아오는 노선의 첫 번째 승강장으로 진입하는 순간, 내 눈에 버스를 타려고 버스 앞으로 다가오는 천사가 들어왔다.
동료 기사들이 '꼴통'이라는 부르는 친구인데, 하루 종일 괴산 버스를 타고 모든 노선을 유람하는 친구이다. 직업이 '골동품 중간상'이라고 했다.
버스 안에서 미운 짓을 골라서 하는 인간이라, 버스 기사들은 줄여서 '꼴통'이라고 불렀다.
이 친구가 항상 선호하는 지정석이 있는데...
바로 괄약근 조절이 되지 않아 누런 국물을 흘린 할아버지가 앉았던 자리이다.
(' 그래 꼴통을 그 자리에 앉히는 거야! 그래야 내가 덜 닦은 냄새를 저 친구 엉덩이로 닦아낼 것 아니야! 이걸 일타쌍피라고 하지! 으흐흐...')
시골 버스 기사는 음흉한 웃음을 혼자 흘리면서
버스 앞문을 그 꼴통이 서있는 앞에 위치하도록 버스를 정밀하게 정차시켰다.
그런데...
시골 버스 기사의 계획에 어긋나는 일이 벌어졌다. 버스 앞문을 개방하는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빈대떡같이 넙데데한 얼굴을 소유한 아줌마가 꼴통과 버스 문틈을 비집고 버스에 일등으로 승차하여 문제의 그 자리에 착석하였다.
꼴통의 자리를 빈대떡 아줌마가 차지한 것이다.
('그래, 어느 누구가 되었던 상관없어! 냄새나 지워져라! ')
시골 버스기사는 바람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그리고 룸미러로 빈대떡 아줌마를 관찰해보니 머리를 좌우로, 아래 위로 움직이는 것이 남아있던 냄새를 느끼는 것으로 보여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별다른 문제없이 그 아줌마도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코끝을 살랑거리며 버스 안을 돌아다니던 잔여 악취는 기사 휴게실에 비치되어 있던 모기약으로 모두 제거하였고, 그날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여기서 얻은 교훈 세 가지...
하나, 먹는 것에 목숨 걸지 않는다.
둘, 평상시 항문 조이기에 힘을 쓴다.
셋, 최고의 방향제는 에프킬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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