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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괴산의 버스기사 입니다.4편
13화
어느 더운 여름날의 午後
by
한지원
Jul 30. 2021
午後 두 時
하루
중 가장 나른할 때다.
하필
이런 때 운행을 나간다.
하루 건너 한 번씩 이 시간에 항상 나가는 운행이지만, 매일 마음속으로
똑같은 투정을 해본다. 누가 들어줄 리 없는 투정...
오늘 같이
더운 날...
해가 달아올라 망치로 두드리면, 태양의 동그란 모양이 타원형으로
찌그러질 것 같은 날씨다.
버스 안에는 시골버스 기사와 꼬부랑 할머니 한 분, 왱왱거리는
엔진 소리, 시원하게 나오는 에어컨 바람...
그리고
차창 바깥으로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실록을 경계병 삼아 후영 계곡의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도로 양옆에
심어놓은 전봇대도 졸고, 버스 안 할머니도 졸고, 후영 계곡물에 낚시하던 낚시꾼도 졸고, 애꿎은 시골버스 기사만 두 눈을 부릅뜨고 액셀 페달을 주어 밟으며,
청 테이프로
감아 쓰고 있던 블루투스 이어폰이 안돼 보였는지, 어제 사랑하는 아내와, 딸, 아들 이렇게 세명이 펀딩(funding)해서, 아빠에게 선물한 이어폰으로 에릭 카먼의 올 바이 마이셀프( Eric Carmen, all by myself )를 듣고 있었다.
시골마을 외딴 승강장.
할머니 두 분 승차.
"기사양반! 요금 내~구 타유?"
"천
오백원이 쥬?"
'아니 이 어르신들
새삼스럽게... 왜 물어보실까!'
매일 오가는 노선에, 매일 오가는 분들이시다.
나는 이틀에 한 번씩 보지만...
" 네!
내십시오!"
"아이구! 난
몰랐네! 나릴 때 낼 뻔 했잔혀!"
"임자도 내구 타!"
"아이고!
웃겨 죽겠네!"
과연 뭐가 그렇게 웃기실까...'
"어디 갔다 오는 길여! "
"장에!"
"뮈하다
지금 가?"
"옥시기 따다가..."
"아이구! 옥시기? 그래 옥시기 따다가? 아이구!"
"아이구! 재밌어 죽겠네!"
'어르신은 이 늘어지는 여름날...
과연, 뭐가 그렇게
재미있으실까?'
인생이 꼭 재미있고 의미(意味)가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추신. 요즘 나오는 블루투스 이어폰은
외부 소리를 들리게 조절하는 s/w가 내장되어 있어 안전 운전에 큰 문제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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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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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괴산의 시골버스 기사입니다
저자
1964년생. 2010년 충북 괴산으로 귀농(표고버섯재배 농부). 2019년 아성교통입사(시골버스기사). 2023년 경기고속입사(고속버스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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