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락... 달그락...
부스럭... 부스럭...
"누구일까?"
밤새 부스럭거리고, 부산스럽게 정리하는 것 같은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13시간의 비행기 여독은 아직도 몸에 그대로 남은 것만 같은데, 휴식을 방해하는 소리에 짜증이 밀려온다.
"아이고... 이놈들아~잠 좀 자자!!"
샤우트를 외치고 싶은 심정과, 침착하게 대처하자는 이성이 교차하면서, 어떻게든 그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다.
잠을 잔 건지, 못 잔 건지도 모르는 컨디션 속에, 바르셀로나의 태양은 창가에 나타나 나를 깨웠다.
"그래, 아침을 먹자."
바르셀로나의 호스텔 생활은, 시트콤과 같은 활기나 열정은 없었다. 수없이 왔다 갔다 하는 청년들과, 밤새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있다.
그래서, 아침이 오기를 밤새 간절히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아침 8시에 맞이하는 바르셀로나는 싱그럽다. 출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지하철 통로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 옆에 작은 바 테라스에 서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이 신기하다. 나도 모르게 작은 바를 향한다.
"Hola Buenos dias"
중남미에서 배운 스페인어를 어설플게 내뱉으며, 크루아상과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옆쪽에는, 출근을 준비하는 시민들이 커피를 마시면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또 어떤 이는 옆에 있는 사람과 수다 삼매경에 빠져 커피를 먹는 것도 잊어버린 것만 같아 보였다.
나는 Spain Bar 안에서 느껴지는 묘한 친밀감을 통해, 중남미에서 살았던 날들이 포개어져 보였다.
부산스럽게 떠들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에 힘들기도 했지만,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날것 그대로에 사람들.
스페인과 중남미에 사람들은 왜 내 삶 속에 들어왔을까? 아니 내가 왜 그 사람들에게 끌리는 걸까?
스페인 문화 속에 있을 때, 한국에 있을 때 보다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서서히 스페인에 물들어갔던 것 같다.
"Aqui "
바리스타가 건네준 커피와 크루아상을 들고, 바깥으로 나간다. 그곳에는 테라스가 있기 때문이다. 그 테라스에 서서 맞이하는 햇살과 공기가 좋았다.
커피의 진한 향이 입가를 촉촉이 적시고,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할 때, 지나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하늘과 태양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왜 사람들이, 스페인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공간. Bar와 테라스에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바르셀로나 호스텔 생활의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행복했다.
가볍게 아침을 먹고, 바르셀로나의 메인광장 카탈루냐 광장을 갔다. 어제와는 달리 광장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차분한 분위기 때문인지, 광장이 조금 더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때였다.
광장에 있는 사람보다, 더 많은 비둘기들이 내 곁으로 다가오는 걸 느꼈다.
유럽에 비둘기들은 한국보다 더 겁이 없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먹을 것을 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처럼, 나를 향해 다가온다. 나도 모르게 뒷 걸음 치기 시작했을때였다.
"Tranquilo"
'침착해"라고 말한 사람은 노인이었다. 그리고 노인은 오른손에 비둘기들이 먹을 '모이'같은 것들을 들고 있었다.
그렇다. 새들이 나에게 다가온 것이 아니라, 내 뒤에서 먹을 것을 들고 오는 노인을 보았던 것이다. 노인은 비둘기들에게 따뜻하게 밥을 먹이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는 조금 떨어져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배고픈 비둘기들에게 밥을 주는 노인과 행복하게 식사를 하는 비둘기들의 모습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외로운 이들이 카탈루냐 광장에서 만나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처럼 느낀 것은 나뿐이었을까?
비둘기가 그리워한 것은 배고픔이 아니라, 외로움은 아니었을까? 노인이 가져온 것은 '밥'이 아니라, '사랑'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 순간을 잊지 않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카메라에 렌즈가 고정되어 세상을 촬영하듯, 한참 동안 '비둘기'와 '노인'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바르셀로나를 살아가는 외로운 이들의 이야기를 지켜보는, 나 역시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억만 리 타향 땅에서, 스페인 가이드가 되겠다고 찾아온 31살에 아론에게도 따뜻한 온기가 필요했던 날이었다.
그래서, 그날 나는 우두커니 서서, 노인과 비둘기를 보며 한참을 바라보았던 것 같다. 그 모습이 내 모습 같아서. 외로운 내 모습 같아서.
나도 누군가 건네는 따뜻한 손길이 그리워서...
떼지지 않는 마음을 뒤로한 채, 나는 람블라스 거리를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