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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의책 Oct 10. 2024

람블라스 거리를 걷다

www.expedia.co.kr


스페인 바르셀로나 람블라스거리를 걸었다. 플라타너스 나무가 길 양편에서 내게 인사를 하고, 나는 가운데 길을 걸으며, 그들에게 미소지었다. 

위를 바라보니, 푸프른 실록과 파란하늘이 포개어 보인다. 이곳이 바로 스페인 바르셀로나이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왜 어제는 알지 못했을까?


어제의 소음과, 사람들의 분주함속에서, 나는 바르셀로나의 진짜 모습을 알지  못했구나. 결국, 인간은 자신이 인식하는 것만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경향을 가진 나약한 존재.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내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라고 말한 부분과 상충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다양한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보고 느끼지 못한다면, 그저 평범한 도시 중 하나로 치부해 버릴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 어제의 바르셀로나는 그런 평범한 도시 중 하나였다.

그것은 마치, 바르셀로나가 부에노스 아이레스 보다 못한 공간이었던 셈이었다. 왜냐하면 적어도 29살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나에게, 봄과 같이 따뜻한 도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하루만에, 나의 모든 생각은 역전되었다.


 람블라스 거리에 플라타너스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내 뺨에 스칠때마다, 황홀함을 느꼈다. 

보케리아 시장의 생과일 쥬스를 먹으며 느꼈던, 갈증의 해소는 바르셀로나에대한 두려움을 씻겨 주었다.

그렇다. 그 순간. 바르셀로나는 유럽의 도시 중 나의 첫사랑이 되었다.


 12월에도 여전히 태양빛은 따사로웠고, 그 따사로움을 만끽하며 벤치에서 수다를 떠는 가족들의 모습은 내게 충만함을 느끼게 하였다.

내가 바르셀로나를 아름답다고 느끼었을때, 바르셀로나는 내게 다가왔고, 그 순간 보이는 모든 바르셀로나의 세계는 나의 꿈이 되고 희망이 되었다.

 콜럼버스가, 항해를 마치고 걸어왔던 길이 내가 걷고 있는 이 람블라스 거리 였는지, 고딕지구의 어디였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한가지 내가 아는 것은, 그도 바르셀로나를 걸었고, 나도 바르셀로나를 걸었다는 사실이다. 

이사벨 여왕이 왕의광장에서 콜럼버스를 애타게 기다렸던 마음으로, 나도 바르셀로나를 애타게 사랑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 아니었을까.


온갖 스쳐가는 생각의 단상들을, 붙잡지 못한채로, 나는 람블라스 거리를 하염없이 걸었다. 그리고 그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미소띈 아이의 얼굴부터, 그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까지. 모든것이 아름답고 행복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이 곳이 유럽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 바르셀로나이구나. 그 진면목을 람블라스 거리를 걷는 순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 벤치에 앉아 하늘과 바람과 태양과 사람을 바라 보았다.


모든 것이, 동화속에 나오는 풍경처럼,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500년이 넘은 건축물 주변으로 춤을 추며 서있는 플라타너스 나무 사이로 오고가는 사람들이 부서지듯 내 앞을 스쳐간다. 

도대체 무엇을 더 보고, 더 느끼어야, 행복하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난 충분히 행복하였고, 충만하다고 느끼었던 순간이 나에게 봄처럼 다가왔다.

태양에 취해, 바람에 취해, 바르셀로나에 취해 있을때, 한가지가 떠올랐다.


"아론씨, 오늘 빠에야 먹을래요?"

아이고, 지점장이랑 빠에야를 먹기로 했구나. 이대로 항구까지 내려가서, 바다를 보고 싶었는데.어쩔 수 없군.

나는 한폭의 영화같은 바르셀로나 람블라스거리를 두고 지점장과 약속한 빠에야 집을 향했다.


'El Glop.'


여기가 빠에야 맛집으로 불리는 곳이구나. 나는 빠에야가게 근처에서 지점장을 만나, 함께 내부로 들어갔다. 

간판부터 내부까지, 엔틱하다. 고급진 느낌이라기 보다는, 가정식 백반을 요리할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지점장은 이 장소가 익숙한듯, 메뉴판을 자연스레 보면서 내게 물었다.


"먹물빠에야? 해산물빠에야? 이베리코스테이크?"


나는 무슨 음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다양하게 먹는 것을 좋아했기에, 모두 먹자고 제안했다.

 음식과 음료를 주문하자, 먼저 음료부터 서빙을 해주었다. 지점장은 스페인에서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샹그리아를 선택했고, 나는 레몬을 넣은 탄산수를 먹었다.


"오늘 바르셀로나 많이 구경했어요?"


신입가이드인 나에게 지점장은 어디를 다녔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그냥 발이 가는 대로 돌아다니고, 람블라스거리가 가장 인상깊었다는 이야기를 그에게 전달했다.

이야기를 하던 중 이베리코 스테이크가 나왔다. 스페인에 있는 흑돼지로 만든 스테이크라는데, 생각보다 두툼해 보였다. 쓱쓱 썰어, 한입베어 문다.


"콰즈즙" 


흑돼지 육즙이 입안가득 퍼지고, 불향이 씹히는 고기속에서 계속해서 느껴진다. 생각보다 부드럽고 깔끔한 맛에 놀랐다. 

아스파라거스와 스페인고추튀김을 곁들여 먹으니, 느끼하지 않게 충분히 맛있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빠에야는 주문이 시작되고 나서 조리에 들어가니, 30분정도 시간이 걸렸다. 배가 많이 고팠던, 나는 감바스를 주문했다. 


감바스와 올리브오일, 빵을 함께 곁들여 먹으니, 조금씩 배가 차는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온 빠에야!


먹물빠에야와 해산물 빠에야 모두, 풍족하게 해물이 가득 들어 있어서, 까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빠에야는 둥근 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발렌시아 지역에서 시작한 음식이고, 토끼고기가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토끼고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해산물이 들어간 빠에야만 주문하여, 먹어보았다. 한국에서 빠에야가 짜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내 입맛에는 괜찮았다.

특히, 먹물빠에야가 맛있었다. 알리올리 소스를 곁들여서 먹으면, 마늘향과 마요네즈가 먹물향에 뒤썪이며, 깊은 맛을 느끼게 하였다.


 만일 세가지 음식중 하나만 먹을 수 있다면, 나는 먹물빠에야를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알리올리 소스도 반드시 같이 주문하여 먹고 싶다.


"아론씨 다 먹었어요?"


식사보다, 샹그리아에 푹 빠져있던 지점장이 내게 말을 건다. 나는 적당히 배가 불렀고, 바르셀로나를 산책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점장은 샹그리아를 조금 더 먹고, 가겠다고 말하였고, 나는 그를 식당에 둔채로, 문밖을 나섰다.

식사를 마치고, 하늘을 바라보니, 어느덧 붉은 노을이 하늘에 번지고 있었다. 어제 보았던 노을이 오늘도 내게 바르셀로나에 온걸 환영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어제와 다른 마음으로 용기내어 길을 나섰다. 2천년전 건축이 살아 숨쉬는 고딕지구의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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