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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리 Oct 28. 2022

아래층 살던 나의 앙숙, 준화

내가 어릴 적, 새로운 이웃이 이사를 오면 집집마다 방문해서 팥이 켜켜이 올려진 시루떡을 주곤 했다. 우리 집 식탁에 따끈하고 포슬포슬한 시루떡이 올려져 있으면, 으레 '누군가 우리 동네 이사 왔구나.' 생각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아이답지 않게 시루떡을 좋아했다. 알싸하고 달큰한 팥맛과 포근한 설기의 맛이 입 속에서 어우러지는 것이 좋았다. 시루떡을 좋아하던 나에게는 누군가가 이사를 온다는 것이 내심 반가운 일이었다. 누가 이사를 오고, 누가 이사를 나가는지 도통 모르는 요즘과는 참 달랐다.



우리 집에도 '딩동' 현관문 벨소리가 울렸다. 엄마가 문을 열자, 푸짐한 시루떡을 접시에 받쳐 든 동그란 안경에 단발머리를 한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 아주머니는 우리 자매를 보고 반가운 표정을 짓더니, "어머, 우리 준화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네. 아이들이 몇 살이에요?"하고 우리 엄마에게 물었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우리 집의 바로 아래층에 새로이 이사를 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주머니에게는 준화라는 딸이 있는데 나와 언니와 나이대가 비슷한 모양이었다.



우리 자매가 준화와 사이좋게 지냈다면 그저 훈훈한 이야기로 끝났겠다만, 우리 자매와 준화는 앙숙이 되었다. 이렇게 우리가 앙숙이 된 데에는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준화가 이사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준화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우리 자매는 준화와 인형놀이를 하며 놀았다. 문제는 준화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난 후였다. 신발장에 있던 언니의 빨간 에나멜 구두가 사라진 것이다. 언니가 유독 아끼던 신발이었고, 언니는 준화가 가져갔을 거라며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엄마는 아닐 거라고 집에서 잘 찾아보자고 타일렀지만 반짝거리던 빨간 구두는 집에서 찾을 수 없었다. 며칠 뒤, 준화 엄마가 다시 미안함 가득한 얼굴로 우리 집을 찾았다. 언니의 빨간 에나멜 구두와 함께. 언니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준화가 싫다고 다시는 같이 놀지 않을 거라고 선포를 놓았다.


그 후로 준화와 우리 자매는 만날 때마다 서로 메롱 거리며 노려보기 일쑤였다. 우리 자매의 쪽수는 두 명이고, 준화는 외동딸이어서 한 명이었으니 준화가 그 기세에 밀리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준화가 평소와 달리 온화한 표정으로 우리 집 벨을 누른 것이 아닌가? 자기 집에 새로운 인형을 샀으니 같이 놀자는 제안이었다. 언니는 준화를 보자마자 손사래를 치며 안 간다고 했고, 결국 나만 준화를 따라 준화네 집에 갔다. 준화가 앙숙이라고 생각했음에도 어린 나는 새로운 인형이 궁금한 마음이 더 컸다.


준화네 집에 가니 사람이 무척 많았다. 알고 보니 준화네 친척들이 놀러 온 모양이었다. 그중에는 나보다 대략 두 살 정도 어려 보이는 준화의 친척 남동생도 있었다. 준화의 영역인 준화네 집에 도착하니, 준화의 태도가 돌변했다. 준화는 친척 남동생과 합심하여 나를 방에 가두고 나오지 못하게 했다. 베란다와 연결되어 있는 방이었는데 친척동생은 베란다 쪽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방문 바깥에서 지키며 나를 방에 가둬버렸다. 나를 낚은 미끼였던 새로운 인형은 없었다! 늘 우리 자매의 기세에 밀렸던 준화가 친척동생과 반격에 나선 것이다. "나 집에 갈 거야! 내보내 줘!" 나의 외침에도 준화와 친척동생은 나를 약 올리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결국 방 안에 갇혀 울음을 터뜨렸다. 내 울음소리를 듣고 준화 엄마가 나를 방에서 꺼내 주었고, 나는 무사히 우리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준화에게 당한 뒤로 나는 준화를 보기만 하면 부들부들거렸다. 어떻게든 앙갚음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동네에서 우연히 준화를 만나면 우리는 서로 두 주먹을 꼭 쥐고 눈에 불을 켜고 서로 노려보았다. 공격이 들어오면 바로 반격하겠다는 자세였다. 늘 전시상황이었지만, 우리의 전쟁은 발발되지 않고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즈음 되었을 때였다. 동네의 언덕길을 오르는데 준화 옆에 못 보던 아저씨가 있었다. 준화는 뒤에 있는 나의 존재를 알아채고 눈을 흘기며 그 아저씨에게 아빠, 아빠 거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이 내가 들으라는 듯이 이야기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이 가관이었다. "야! 나도 아빠 있다! 메롱!"


마지막 말을 듣고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 준화에겐 아빠가 없었구나.' 그러고 보니 가까운 이웃으로 살면서 준화네 아빠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준화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었다. 준화가 나에게 말하는 모양새를 보니 아마 준화 엄마가 준화 옆의 아저씨와 재혼을 결심한 듯했다.


할머니가 우리 엄마에게 쯧쯧거리며 안타깝다고 이야기하던 장면도 불현듯 생각났다. 준화는 외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준화네 엄마가 이혼하고 친정으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준화네 집에는 외삼촌도 살고 있었는데, 듣자 하니 10년 넘게 고시공부 중이었다. 그렇다. 아래층 준화네 외할머니는 그 나이 되도록 이혼한 딸과 손녀, 고시생인 아들을 돌보며 뒷바라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준화네 엄마는 그 당시 흔치 않은 워킹맘이었다. 남편의 부재로 준화네 엄마가 일찌감치 일터에 나섰던 것이다. 주로 낮시간의 준화에 대한 돌봄은 준화네 외할머니가 하고 있었다.



우리 자매는 결국 준화와의 앙숙 관계를 풀지 못한 채로 다른 동네로 이사 왔다. 준화는 잘 살고 있을까. 아이 둘을 낳고 키워보니, 앙숙이었던 준화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나에게는 언니도, 아빠도 있으니 우리 가족의 모습이 어린 준화가 보기에는 공고해 보였으리라. 어쩌면 바로 위층에 살던 우리 가족의 존재가 준화 마음속의 결핍을 부추겼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준화의 화룡정점이었던 한 마디, "야! 나도 아빠 있다! 메롱!"은 어린 준화가 느꼈던 커다란 결핍을 짐작하게 했다.


준화가 그녀의 엄마와 새아빠가 만든 새둥지 속에서 결핍을 딛고 성장했기를 바란다. 그녀는 어디선가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30대가 되었을 터이고, 나처럼 엄마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나의 앙숙 준화가 진심으로 잘 살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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