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경민 Oct 02. 2022

6월 쿠스코 축제,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타오르다

누구나 기억하고 즐길 수 있는 축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그들은 기억할 수 있었다. 마치 어둠 속에 흩어져 있는 기억들이 뇌리에 두서없이 떠오르는 것처럼. 뿌리가 남은 그들은 기억을 더듬어 다시 줄기를 피우는 법을 찾아갔다. 명맥이 끊어진 잉카 전통의 축제를 예술가들은 그렇게 재현했고 축제는 다시 시작되었다.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타올라라


축제를 알리는 신호탄

"펑 펑 펑 펑"

축제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태양제를 위한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광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퍼레이드에 눈길이 갔다. 전통의상을 입고 역동적인 춤을 추는 사람들. 다양한 민속축제가 펼쳐지는 6월의 가장 큰 행사는 6월 하순의 태양의 축제 인티라이미였다. 벌써부터 쿠스코는 열정이 넘쳤다. 길목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음식과 공연을 즐겼다. 


태양제는 잉카인들이 태양에 그 해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사다. 산 꼭대기의 태양을 향해 경배를 드리며 태양을 맞이했다. 모든 제물이 태워지고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면 이 제사가 끝이 났다. 축제는 일주일 넘게 계속됐다. 피사로의 침입 당시 행해진 태양제는 외세로부터 잉카를 지키기 위한 태양신의 기호를 바라는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1984, 조지 오웰)'


그 후 수년간 축제는 없었다.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전에도 결코 존재한 적이 없던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잉카의 관습과 전통을 없애고 가톨릭을 받아들이길 원했다. 


기록은 남았다. 역사가 잉카 가르실라소 데 라 가는 펜을 들었다. 에스피노사 나바로는 읽었고 재현했다. 케츄아어로 태양을 뜻하는 인티(inti), 축제를 뜻하는 라이미(raymi)다. 400년 동안이나 자취를 감췄던 이 행사는 그들의 노력으로 불이 꺼진 듯했던 잉카의 문화에 다시 불을 지폈다. 


인티 라이미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까지 등재되었다. 타오르는 잉카의 축제는 내 눈앞에서 펼쳐졌다. 꺼진 적이 없던 것처럼 사람들은 행렬하고 춤을 췄으며 이 날은 음악도 끊기지 않았다.



축제에 진심인 사람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열정에 끌리게 되어있어. 

자신이 잊은 걸 상기시켜 주니까.(영화 라라 랜드, 2016)"


부를 때마다 가격이 달라진다. 가격표도 없다. 카드로 결제되지 않는 곳도 많아 환전을 해야 한다.


그들의 뜨거움에 끌린 건 자연스러웠다. 예상치 않는 울림의 순간. '진심은 언제나 통하기 마련'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들의 진심은 잉카라는 세계가 보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나도 한걸음 다가가기 위해 전통의상 판초를 사서 입었다. 무지갯빛 알록달록한 무늬를 수놓은 빨간색 망토같은 옷이었다. 알파카나 라마의 털로 만들어서 굉장히 따뜻했다. 다양한 의미와 전통이 옷 한 벌에 담겨 있었다. 화려한 색은 미혼, 어두운 색은 가정이 있음을 뜻하기도 하니 말이다. 잉카의 전통에 한 발짝 더 다가간 기분으로 당당하게 사람들의 숨결이 가득한 축제를 누볐다. 





"우아 춤 연습하네?"

학생들이 태양의 축제를 위한 춤 연습을 하고 있었다. 영상을 찍자 한 소녀가 손을 흔들며 와보라고 했다. 소녀는 나에게 간단한 춤을 알려줬다. 역동적인 발차기를 배우면서 몸을 움직여 박자를 맞췄다. 그 잠깐의 순간에 굉장한 일체감을 느낄 수 있었다. 



꾸이

'쥐 요리?'

각양각색의 길거리 음식 중에도 눈에 띄었다. 놀란 표정을 감추기 어려웠다. 전시된 쥐들과 줄을 지어 먹는 사람들. 일명 "꾸이"라고 불렀다. 고단백 저지방으로 영양이 풍부해 남미 원주민들이 즐겨 먹었다고 했다. 꾸이 축제도 따로 있었다. 


아르마스에 있는 대성당 안에 그려진 '최후의 만찬'에 있는 성찬도 페루 특식인 꾸이였다. 축제를 함께 즐기던 친구들과 얼떨결에 먹게 됐다. 좋은 시력이 미운 순간이었다. 거부감 드는 비주얼과 다르게 튀긴 닭고기 맛이 났다. 보양식으로 꾸이를 먹었던 과거 쿠스코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들의 열정에 이끌려 축제에 진심이 되었고 알차게 즐겼다. 판초를 입고 꾸이를 먹었고 분위기를 즐기며 춤도 따라 추고 행렬에도 동참했다. 흥겨움은 점점 최고치에 이르렀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람들은 즐거워 보였다. 





쿠스코의 거리

축제란 무엇일까?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도피?'

'생산적인 일상을 위한 재충전?'


도시 전체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즐길 수 있는 축제였다. 처음에 시작된 성스러운 종교적 제의로서의 의미보다는 잉카를 기억하는데 중점을 둔 이 축제는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고 재충전하는 시간으로 보였다. 온기가 넘치는 이 축제에서는 즐기기 위한 열정이 피어 올랐다. 


이전 05화 쿠스코를 기억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