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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경민 Oct 02. 2022

기록이 없는 공중도시 마추픽추

기록되지 않은 도시의 풀리지 않는 궁금증

잉카 땅의 왕관, 마추픽추의 들쭉날쭉한 벼랑 위에 우뚝 선
화강암 도시의 낭만보다 더한 낭만은 없을 것이다.
- 하이럼 빙엄 -

'왜 버려졌을까?'

사람들 기억 속에 잊힌 땅. 밑에서는 보이지 않는 도시. 300년 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마추픽추를 미국 하이럼 빙언이 발견했다. 그는 잉카제국 최후의 수도 '빌카밤바'를 찾던 길이었다.


'잉카의 공중도시! 세계 7대 불가사의! 마추픽추!'

다양한 수식어구가 붙는 세계 명소다. 교과서의 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고대 문명은 햇살을 머금으며 나에게 미소를 보냈다. 굳건한 집터들과 싱그러운 잔디와 나무가 망막 안으로 들어온다. 온전히 보전된 형태는 놀라움을 자아냈다. 

마추픽추


'첩첩산중 산꼭대기에 도시를 세운 이유가 뭘까?'

'수레바퀴 없이 어떻게 도시를 건설했을까?'

'이렇게 높은 산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수로가 있다고?'

'저런 거대한 자연석을 그대로 써서 신전을 지을 수 있다고?'

'자연석으로 만들었는데 어떻게 오차 없는 나침반과 해시계를 만들지?'


질문 투성이었다. 나중엔 감탄형이 되었다.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은 줄을 섰다. 생각으로 미루어 헤아릴 수 없는 기묘함이다. 전무한 관련 기록은 '불가사의'라는 단어와 매칭 된다. 남은 문자가 하나도 없어 수많은 해석이 공존한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알 수 없다. 그저 흔적만 보고 추측할 뿐이다. 여성 미라 발견으로 여자 사제들만 모여 있던 구역이라는 설부터 스페인 침략 마지막 방어기지라는 설 등 다양하다. 


초록의 탱탱함은 위엄 있었다. 같은 궤도를 회전하는 시곗바늘에서 벗어났다. 짙푸른 산의 향기로운 대기를 따라갔다. '늙은 봉우리'라는 뜻의 마추픽추 위를 걸었다. 오랜 세월 침묵하며 그 자리를 지킨 돌들이 보였다. 


뒷 배경은 '젊은 봉우리'라는 와이나 픽추가 장엄하게 서있었다. 열정 가득한 페루 가이드는 마추픽추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밀림을 헤치는 치열함 따위 없이 편안하게 버스를 타고 도착한 나는 공허함을 느꼈다. 꼭 봐야 할 것을 봤다는 후련함만이 강하게 남았다. 


마추픽추 마을,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철퍽'

느낌이 싸했다. 바닥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안 봐도 알고 있다. 개똥을 밟았다. 이 마을에는 어딜 가나 개가 보였다. 기분 나쁜 물컹한 촉감은 잊히지 않았다.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화장실에서 응급처치를 했다. 조심하지 않던 나 자신을 생각하면서. 다시 길가로 나와서는 괜히 더 바닥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걸었다.


"마추픽추~ 마추픽추~"

바람결에 스치듯 노래가 들려왔다.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사람들.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동네에서 카우보이 복장으로 노래를 부르는 그들에게 저절로 눈이 갔다. '그들은 마추픽추를 기억하고 싶은 걸까?' 엠빠나다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구경을 했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는 여백의 시간이었다. 

마추픽추 아래의 마을




'기록이 없는 세상에 사는 것은 어떨까?'

문득 드는 생각이었다. 과거가 날조되어도 증명할 길이 전혀 없을 것 같았다. 유일한 증거는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뿐일테고 각자의 기억은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결국 높은 사람이나 말을 잘하는 사람에게만 좋은 사회이지 않을까? 최악의 결말은 책 1984처럼 끊임없이 변조되는 과거일 것이다. 하필 잉카 문명이 막을 내릴 당시 잉카를 지배했던 세력은 워낙 잔인해서 다른 소수 민족에게는 원망의 대상이었다고 했다. 지독한 이동의 수레바퀴에서 거대한 달을 보면서 문자가 없는 나라를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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