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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경민 Oct 02. 2022

일상과 여행, 그리고 인연의 시작

성스러운 계곡(친체로-모라이-살리네라스-우루밤바-오얀따이땀보)

인생은 모두가 함께 하는 여행이다.
매일매일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어바웃 타임 中-


멀리 떠나는 여행만이 여행인 줄 알았다.

멀리 떠나야지만 특별하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멀리 떠난 여행에서 내 생각이 맞았다면서 '이게 여행이지'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날은 일상도 여행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차디찬 새벽 공기. 아르마스 광장에서 커다란 마추픽추 투어차에 올라탔다. 피날레인 마추픽추를 가기 전에 성스러운 계곡으로 향했다. 성스러운 계곡이란 6,000 미터급 산들로 둘러싸인 우르밤바 계곡 주변의 잉카 유적지를 둘러보는 것을 말한다.


"안녕하세요! 어디에서 왔어요?"

"도미니칸 리퍼블릭이요! 어제 도착했어요!"

 이른 새벽부터 차 안은 시끌벅적했다.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차 안을 가득 메웠다. 옆자리 친구의 이름은 윌카였고 남동생과 그의 아내, 직장동료와 그녀의 절친과 함께 여행을 왔다고 했다.


"지금은 성스러운 계곡 중에서 친체로로 이동한다고 말해주고 있어요."

윌카가 나에게 속삭였다. 스페인어로 설명하는 가이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나에게 친절하게 하나하나 번역해주었다. 그녀가 내민 따뜻한 배려의 손길을 조심스레 잡으며 여행을 시작했다.



색을 물들이는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친체로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원주민분께서 나눠주신 차를 마시며 판초(전통의상)의 색감을 만드는 법을 보았다. 충격적이었다. 선인장에 붙어 있는 벌레를 죽여서 색감을 만든다고 했다. 그녀는 립밤으로 치장할 때 쓰기도 한다면서 입술에 바르곤 웃어 보였다.

 

'벌레를 죽여서 색을 만든다니'

누가 생각해냈을까? 아름다운 무지개색의 실타리를 바라보면서 그 시절 벌레를 죽여서 옷을 만드는 것을 상상했다.


알파카들로 만든 기념품들, 그리고 옆의 알파카들.

아무것도 모르고 풀을 오물거리는 알파카들을 보니 마음이 조금 저릿했다. 핀, 머리띠, 판초, 가방들까지 다양한 종류의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친체로 안으로 들어섰다. 조그만 마을에서 원주민들은 기념품을 판매하며 어린 꼬마들까지도 애쓰고 있었다. 깊숙이 들어가니 잉카시대에 만든 돌벽들이 보였다. 안개가 자욱이 끼어 있는 공간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친체로


섬세한 계단식 논, 모라이

모라이

"비엔베니도스(환영합니다)"

환영 팻말이 보였다. 아침보다 더 따뜻해진 날씨에 판초 안의 패딩을 벗었다.

원형 계단식 논인 '모라이'를 마주했다. 교과서에서 봤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진으로 봤던 장소는 새로우면서도 새롭지 않았다.

'만약에 이 장소를 아예 몰랐을 때, 갑자기 마주했다면 어땠을까?' 망막 안에 이 장면을 저장하면서도 무언가 모를 씁쓸함과 함께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페루 출신의 아이와 함께 차를 탑승했다.

소녀는 전통술을 한잔씩 건넸다.

"건강에도 좋은 술! 남자에게도 좋은 술!"

술을 판매하는 아이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좋은 입담에 여행객들은 웃으면서 술을 구매했다. 쓰디썼던 그 술은 몸에라도 좋아야 할 것 같았다.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산속의 염전, 살리네라스


"이게 바로 단짠?"

염전이 있다더니 소금 초콜릿 매장을 데려갔다. 단짠의 조화가 매력적이었다.


"어떻게 산속에서 갑자기 이렇게 하얀 염전이 있어?"

"저거 염전이야? 안 믿겨!"

살리네라스 염전이 보이자 믿기지 않는 풍경에 사람들은 속닥 거렸다. 그래픽으로 만든 공간 같은 염전에 가까이 다가서자 진짜라는 것이 조금씩 실감 났다. 사진으로는 담기지 않는 진귀한 풍경이었다.

살리네라스


흔적이 그대로 남은 오얀따이땀보

쿠스코보다 기후가 온난한 휴양지라는 오얀따이땀보. 반대편 산에는 화가 잔뜩 난 사람 얼굴 모양이 보였다. 태양의 신 비라코차의 얼굴을 닮았다고 하는데 내가 알 리가 없었다. 옆의 정체불명의 건물은 창고인 듯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갈수록 마을이 작아 보였다.


"하나 둘 셋 찰칵."

바람이 불고 아름다운 풍경이 뒤로 보였다.

전통 있는 마을은 인디오들의 생활도 녹아있었다. 많은 기념품 가게들과 함께 뒤로는 거대한 산의 근육들은 울긋불긋 올라와있었다. 이 순간을 기억하고자 단체사진을 남겼다.

오얀따이땀보


아구아스 깔리엔떼로 가는 기차를 향해 걸었다.

스페인어만 할 수 있는 윌리, 로잘린, 클라라. 영어와 스페인어를 함께 쓰는 술리와 윌카와 함께.


그들을 한 번 보고 말 관계라고 생각했다. 타인의 판단에 신경쓰지 않은 이유였다. 누가 더 멋진 경험을 했는지 같은 경쟁없이 진솔한 경험과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타인에게 인정 받기 위한 노력 따위는 보이지 않는 꾸밈없는 대화는 즐거웠다. 


마추픽추 마을. 아구아스 깔리엔떼


신기하게도 기차 안에서도 용기가 생겼다. 기차에서 어색한 앞사람에게 말을 거는 건 처음이었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루마니아요."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2시간 내내 이어졌다. 한국을 정부 초청으로 와서 일주일 살아보신 컴퓨터 공학 교수님. 일주일의 휴가로 마추픽추만을 위해 페루까지 비행했다고 했다. 성스러운 계곡을 보지 못했다던 그분에게 소금 초콜릿으로나마 그 여운을 선물했다.


"루마니에서 좋아하는 장소가 어디예요?"

"사실 도시에 살다 보니 집과 직장만 다니는 것 같아요. 음 그래도 드라큘라 성이 유명하다고 하더라고요."


이때 생각의 틀이 움직였다. 나에게는 루마니아라는 땅의 어느 한 지점에만 떨어져도 특별하다고 느낄 것이었지만 그는 가까이서 찾을 수 있는 새로움엔 관심이 없었다. 어쩌면 일상에서도 찾을 수 있는 여행을 나 자신은 너무나도 먼 곳에서만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방인에게는 달동네도 낭만이고, 여행자에겐 가난도 경험인데. 생각을 조금만 바꾼다면 일상도 여행일 수 있지 않을까? 여행을 하면서 일상을 바라보던 관점이 자그마한 변화의 물결을 맞이했다.


"썸머! 보고 싶었어!"

기차에서 내리자 친구들이 나에게 달려왔다.



어디서 시작될지 모르는 관계라는 끈



여행에 대한 생각이 바뀌자 관계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갔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좋은 사람이 되길 바랐고 모두에게 상냥하려고 노력했다. 사람을 만난 뒤 대화를 곱씹어보면서 '왜 그런 말을 했지?'라면서 걱정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타인의 판단에 축을 두지 않는 대화에서는 걱정과 불안없이 내면의 만족감을 얻었다. 남들에게 인정받거나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꼭 들어야할 필요는 없었다. 숨겨진 의도없이, 비교없이 나누는 대화에서는 자기검열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고 공감과 소통만이 넘쳤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한 번 보고 말 사이"라면서 타인의 생각에 구속되지 않고 나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일상에서 오래 봐온 친구와도 "다시는 안 볼 사이"가 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둘은 다른 끈으로 이어진 '관계'라면서 선을 두고 구분했다. 똑같은 메탈을 쓰면서 색깔이 다르다고 단단함의 정도를 구별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디서 어떠한 모양의 관계가 시작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보라 차~(취했어)"

작지만 아름다운 동네의 중심지에서 우리는 맥주를 한 잔 했다. 노래를 부르고 게임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많은 질문 속에는 서로를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내민 용기들이 모인 밤이었다. 


"우리는 네가 너무 좋아"

단체로 나를 부둥켜안았다. 처음에 난 뒷걸음질쳤지만 이내 '나도 좋다', '감사하다'는 말을 나눴다. 여전히 이 순간의 사진을 보면 흑백사진을 보는 것처럼 애틋한 감정이 피어오른다. 매일매일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디에서든 나 자신 그대로 이 멋진 인생이라는 여행을 만끽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을의 작은 광장




*쿠스코 투어 예약법

길거리에서 다양한 호객꾼들에게 쿠스코의 다양한 투어들을 찾을 수 있다.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에는 한국인 전문 투어사인 ‘파비앙’이 존재하며 마추픽추, 비니쿤카 등 다양한 투어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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