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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Mom Box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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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tainsight Apr 09. 2024

끝까지 너를 찾으렴

꿈꾸는 엄마가 되길

외할머니는 늘 바쁘셨어. 엄마는 열쇠를 들고 학교 가는 래치키 차일드(latchkey child)였단다. 깜빡 잊고 열쇠를 챙기지 않은 날은 대문을 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 뾰족한 걸 찾느라 온 동네 길바닥을 다 뒤져도 보고, 옆집 담장 타고 올라가 대문 위에서 마당으로 뛰어내리려고 담타기도 해보고... 그러면서 생각한 거야. 난 집에 있는 엄마가 돼야지. 꽃무늬 원피스 입고 학교 다녀오는 너희들 위해 간식도 만들어 놓고 반갑게 맞아주는 그런 엄마. 비 오는 날 우산 안 가져간 딸들 위해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그런 엄마가 되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단다. 

이런 느낌?


그런데 꽃무늬 원피스가 엄마의 로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소위 전문직 여성이 되었잖니? 일이 참 재미있었어. 현상설계에 나가서 상도 타고 우리 디자인이 실제로 지어져 올라가는 걸 보는 건 참 큰 희열을 주었지. 그러다가 아빠를 만났고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단다. 아빠는 외동이어서 북적거리는 가정을 갖고 싶어 했고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였어. 그때 다시 꽃무늬 원피스가 엄마 인생에 등장한 거야. 그리고 결혼을 결정하면서 엄마는 직장을 그만두었단다. 


후회했냐고? 후회했다, 안 했다로 대답하기엔 매우 복잡한 감정이야. 이걸 정리해서 말해볼게.

너희 셋을 양가 어머니는 물론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엄마 혼자 오롯이 키워냈다는 사실은 엄마 마음 깊은 곳의 자부심이란다. 그리고 행복했어.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너희 인생의 모든 중요한 순간을 엄마가 함께 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지 몰라. 엄마와 너는 가장 먼저 눈을 맞췄고, 뒤집는 순간을 가장 먼저 본 것도 엄마, 첫 발을 내딛을 때 환호한 것도 엄마였지. 첫 배변을 스스로 해내고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을 때도 엄마와 함께였고, 처음 넘어져 울 때도 엄마가 일으켜 세워주었어. 너희의 모든 '처음'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 엄만 참 감사했다. 


그런데 너희가 이제 성인이 되고 엄마가 중년이 되니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했던 선택들을 곱씹어보며 엄마 자신에게 묻게 되는 거야. '난 정말 꽃무늬 원피스 때문에 내 커리어를 접었는가?' 이건 참 꺼내고 싶지 않은 주제였어. 그래도 마주해 보려고... 그 당시에 엄만 많이 지쳐있었다. 많은 업무 때문이기도 했지만 엄마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던 것 같아. 주변의 탁월한 동료들의 능력과 엄마에게 요구되는 성과에 대한 부담이 커지던 시기였지.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던 것 같아. 엄마가 했던 고민은 특별한 고민은 아니야. 어느 직장인이나 이런 부침이 있지. 그런데 그걸 버텨내는 사람과 포기하는 사람이 있을 뿐. 솔직하게 돌아본다면 엄마는 그 냉정한 싸움을 해낼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 그리고는 꽃무늬 원피스 속으로 도망친 게 아닐까? 꽃무늬 원피스 소망(헌신적인 엄마가 되겠다는)을 이루겠다는 나름의 결심도 있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세상과 맞서 싸워보겠다는 투지가 부족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엄마는 '엄마'로서 누릴 행복은 만끽했지만 인간 김 OO이 나서야 할 보물찾기 여정은 포기했던 것 같다. 오해하지는 마. 여기까지 읽으면 엄마가 엄마의 인생을 실패로 보는구나, 혹은 너희가 엄마 인생의 걸림돌이 되었구나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 엄마는 절대 한 번도 내 인생이 실패라고 생각해 본 적 없어. 이렇게 빛나는 보석을 3개나 가졌는데 어떻게 엄마 인생이 실패가 되겠니? 인간 김 OO은 원석 그대로 남아있지만 또 다른 원석을 만나 그들이 잘 다듬어진 진짜 보석이 되도록 기도하며 돕는 일도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 그러나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늘 남는구나.


그럼 이런 질문도 할 수 있겠다. '워킹맘은 엄마의 선택지가 아니었나요?' 응. 아니었어. 알잖아? 엄마 멀티 안되는 거. 어디에도 100퍼센트의 마음을 줄 수 없는 상황을 엄마가 견디기 힘들었을 것 같아. 그래서 엄마는 고군분투하며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들을 존경해. 그리고 일과 육아 병행에 손사래 치며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들의 마음도 매우 이해한다. 하지만 엄마는 우리 딸들이 엄마처럼 피하지 않고, 일하는 엄마가 되었으면 좋겠다. 너희들이 엄마가 되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걸 보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엄마는 너희가 엄마처럼 원석 그대로 남아있지 말길 바라. 잘 다듬어져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 되길 응원한다. 어려울 거야. 그래도 너희들은 행복하다. 기꺼이 손자, 손녀를 돌봐줄 마음이 굴뚝같은 엄마가 있으니. 말했지? 엄만 독박육아였다고. 시어머니, 친정엄마 모두 바쁜 양반들이셔서 엄만 그분들의 도움은 꿈도 못 꾸었잖니... 




권기옥이라는 분이 계셔. 그분에 관한 책을 읽으며 꿈은 사람을 얼마나 강하게 만드는가 생각했단다. 그분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파일럿이야. 일제강점기에 파일럿이 되어 나라를 되찾는데 힘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중국에 가셨단다. 여러 항공학교에 원서를 내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거절당해. 마지막으로 남은 윈난성에 있는 학교에 원서를 내기 위해 상하이에서 윈난성까지 한 달 길을 절벽도 만나고 벼랑에서 떨어질 위기도 겪으며 걸어갔대. 온몸이 만신창이가 됐지. 윈난성장은 그런 그녀의 무서운 열정을 보고 추천서를 써주었다는 거야. 결국 합격을 하고 남자들과 똑같이 훈련을 받았대. 중국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활약해 무공 훈장도 받고 해방 이후에는 우리나라 공군이 만들어지는데 큰 역할을 하셨다는구나. 이런 위인의 이야기는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은 꿈은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거야. 꿈은 포기라는 유혹 앞에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거야'라며 쿨하게 일어서게 만드는 힘 아닐까? 꿈꾸는 사람은 꿈꾸던 그 자리가 정확히 아니어도 그 언저리 어딘가에는 닿게 되더라. 너희가 꿈꾸는 사람, 꿈꾸는 엄마가 되어 끝까지 자기 자신을 찾기 바라. 


꿈꾸는 엄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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