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대상이 아니라 능력
소망(큰딸의 태명)아~ 너의 잦은 외출에 정성 들인 화장을 보면서도 둔하게 눈치채지 못하다가 몇 달간 썸만 타던 그 오빠와 드디어 사귀게 된 걸 알았지. 그때 얼마나 설레던지... 딸에게 남자 친구가 생기게 되는 일은 엄마들에겐 특별한 경험 같아. 그 옛날 어린이대공원에서 흩날리던 꽃눈, 장맛비와 작은 우산, 흰 티셔츠에 청바지 등등 봄햇살 같은 추억이 방울방울 내 마음속에서 팡팡 터지는 느낌!(이 얘긴 그만해야겠다. 아빠가 싫어할 것 같음...ㅎㅎㅎ)
그때 울 큰딸은 귀찮으면서도 엄마가 묻는 이야기에 친절하게 잘 대답해 줬어. 우리 딸과 사귀는 놈이 어떤 놈인지 엄마가 걱정하지 않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지. 네가 그랬지? '엄마 고마운 줄 알아요. 이렇게 다 얘기해 주는 딸 없어요.' 맞아. 없지. 우리 집에도 얘기 안 해주는 딸 하나 있잖아? ㅎㅎㅎ 엄만 우리 귀한 딸들의 마음을 얻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 궁금하니까 그렇게 묻고 또 묻고 그랬단다.
연애를 할 때 그리고 결혼을 할 때 우린 모두 누구냐, 어떤 사람이냐가 최대의 관심사이지? 그런데 사실 더 중요한 건 내가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는가란다. 사랑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더라. 노력과 결단이 필요한 게 사랑이야. 엄마가 대학교 1학년 때 교양영어를 가르치던 교수님이 에리히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을 꼭 읽어보라는 거야. 얇아서 기뻐했지만 진도가 매우 안 나가는 책이야. 어려워! 그래도 그 책에서 아직도 기억나는 몇 가지가 있네. 현대인들이 사랑에 대해 오해하는 몇 가지가 있다고 했어. 사랑을 받는 문제로 생각한다는 것, 사랑의 능력보다는 대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성적 매력으로 친밀해져 사랑에 빠지는 것과 사랑에 머무르는 상태를 혼동한다는 것. 이외에도 나누고 싶은 부분이 더 있지만 오늘은 사랑의 대상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해.
에리히프롬은 책의 제목 선정부터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있는 것 같아. '기술'은 습득하는 거잖아?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을 기술이라고 하지 않지? 사랑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노력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어.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하는 것 같아. 네가 얼마나 존귀한 자인지를 깨달을 때 네가 만날 '그 사람'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거고. 엄마는 '죽고 못 사는 사랑', '너 아니면 안 되는 사랑'은 믿지 않는다. 그건 사랑이 아니야. 자기 힘만으로 홀로 서 있을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런 사람은 사랑이라고 착각한 그 감정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힘들게 할 수 있단다.
오해는 하지 마. 사랑에 있어 대상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야. 좋은 사람, 너에게 맞는 사람이 분명 있어. 그런데 이렇게 조건에 딱 맞는 사람을 만나도 네가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그 사랑은 해피엔딩이기 힘들다. 그럼 엄마는 '사랑의 기술'이 잘 준비되어 아빠를 만나고 결혼했냐라고 묻고 싶지? 그럴 리가 있겠니? 그러니까 엄마가 매일 기도하고 말씀 보고 사랑의 능력을 달라고 구하는 거 아니니. 그리고 현재 엄마와 아빠가 함께라는 건 지금도 우리가 사랑의 기술을 배워가며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아닐까? '사랑은 완벽한 나의 짝을 만나 완벽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만나 만들어 가는 거'라고 누가 이런 이야기를 25년 전에 먼저 해주었다면 엄만 조금 덜 헤맸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왜 이런 남자를 만나서...'라는 푸념과 후회는 하지 않았을 거야.
Spouse라는 단어 말고 배우자를 뜻하는 표현으로 Better half가 있지. '더 나은 나의 반쪽, 더 멋진 나의 반'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지? 아직 완성되지 않은 퍼즐이 보다 더 나은 반쪽을 만나서 멋진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결혼이라는 얘기지. 참 멋진 말인 것 같아. 자기 배우자를 높여주는 말이기도 하고. 너희도 꼭 너희의 비어있는 반을 꽉 채워주는 멋진 반쪽을 만나길 엄마는 간절히 기도한다. 하지만 설령 그 대상이 네가 원하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져도 실망하지 말길 바라. 그때부터 사랑이 일을 하기 시작한단다. 결혼은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하는 거니까.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