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의 동업 - 가게 앞 공원 이야기

4월 16일

by 감성토끼

동업, 그것도 남편과의 동업은 도시락 싸가며 말린다는 분들이 많다.


처음 <에덴 문구> 후반부터 남편 혼자 감당이 안 되어, 결국 나는 사무실을 그만두고 남편과 같이 문구점 운영에 뛰어들게 되었다. 이때부터 남편과의 험난한 동업이 시작되었다.


남편은 워커홀릭에다, 약간의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었다.

물건들이 흐트러져 있는 모습을 용납하지 않았고, 먼지가 묻어 있는 것도 기겁을 했다.


늘 손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며, 물건을 사러 왔는데 먼지가 묻어 있고 지저분하면 그 물건을 사고 싶겠냐고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래서 우리 문구점 물건들은 늘 반짝반짝했으며, 칼같이 각이 잡혀 있었다.


손님들이 문구점을 방문하면 늘 한결같이 입을 모아 하는 소리가 "문구점이 너무 깨끗해요. 이렇게 깨끗하고 정리 잘 된 문구점은 처음이에요~"였다.


이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조금 지저분하다 싶으면 포장 비닐을 새로 갈고 재포장을 해야 했으며, 아이들이 물건을 만지지 못하게 이곳저곳에 "만지지 말아 주세요~", "눈으로 봐주세요~"를 적어 놓아야 했다.

아이들에게 제일 많이 하는 소리도 "만지지 말고, 눈으로 봐~~"였던 듯하다.


그런 남편과의 동업은 나를 너무 숨 막히게 했다.

하지만, 그때는 당연히 남편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반박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남편은 나보다 3~4배로 더 열심히 가게에 정성을 쏟았기 때문이었다.


남편의 상식으로 가게는 손님을 돌려보내면 안 된다는 주의였다. 그랬기에 아마 그 동네에서 제일 일찍 문을 열고, 제일 늦게 문을 닫았던 것 같다.

당연히 일요일은 없었고, 쉬는 날이라야 명절 때와 여름휴가 때뿐이었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흘러가는 와중에 숨이 막혀 올 때가 있었다.

이게 맞는 건가? 이렇게 사는 게 정답인 걸까?

그럴 때마다 나를 달래 주던 건 바로 가게 앞 공원이었다.


© jma1053, 출처 Unsplash


가게 건너편에 제법 규모가 큰 공원이 있었다. 그 공원을 가로지르면 주거래은행인 신협이 있었기에, 2~3일에 한 번씩은 현금 뭉치를 들고 신협에 입금을 하러 가곤 했다.

그곳에서 입금을 마치고, 은행 한 곳에 비치된 커피머신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공원을 산책했다. 그때가 유일한 나만의 휴식시간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어폰을 꽂고 딸아이의 음악을 듣기도 하고, 계절마다 변해가는 공원 풍경을 서툰 솜씨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https://m.youtube.com/watch?v=XoRfYSdQWY4#dialog


딸이 부른 <기분 좋은 날>이라는 이 곡은 당시 예능프로그램의 백 뮤직으로 종종 나오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블로그를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 당시에는 그럴 여유조차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좋아하던 책 한 권을 읽기도 벅찬 시절이었으니까.....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 열심히만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저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열심히, 미련하게 나라는 존재는 잊은 채 그렇게 살았다......


그때 가게 앞에 공원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 jma1053, 출처 Unsplash


그 공원은 매일 나를 어루만져 주었다.


봄이면 뾰족한 싹을 틔운 풋풋한 새순의 모습으로, 비 오는 날이면 나뭇가지에 조롱조롱 걸려 있는 빗방울 전구들의 반짝임으로, 가을이면 찬란한 색채를 뿜어 나를 위로하고, 흰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에는 그 하얀 포근함으로, 그렇게 매일매일 나에게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지금 이곳 평택에도 문구점 바로 앞에 감사하게도 작은 공원이 있다.

한 바퀴 도는데 15분이면 끝나는 그야말로 작은 공원..... 천천히 나무를 보고, 하늘을 보고, 새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가끔 만나는 청설모와 인사를 하며 천천히 걷다 보면 20분을 넘기기도 한다.


그래도 이 작은 공원이 있어 나는 오늘도 또 살아갈 힘을 얻는다.


지금은 오롯이 나라는 존재에 집중하며 하루하루를 산다.

나를 잊고 산 세월이 너무 길어서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던 것을 찾는 것도 힘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이었는지, 어떤 걸 할 때 나는 가장 행복한 마음이 될 수 있는지....

나 자신에 대해 내가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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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그저 삶에 찌든 평범한 문구점 아줌마였다면, 이제 나는 매일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나에게로 떠나는, 나를 찾는 여행을 하고 있는 내 삶의 여행자가 되었다.


블로그를 통해 한 달에 한 번은 시인이 되어 시를 써 보기도 하고, 나의 삶을 기록하고, 책을 읽고 리뷰를 쓰기도 하는 특별한 문구점 아줌마로 업그레이드되었고, 브런치 작가가 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오랜 세월 잊고 있었던 작은 꿈을 찾게 되었다. 삶에 치여 어딘가에 내팽개쳐져 있었던, 온통 먼지투성이에 덮여 있던 그 꿈을 반짝반짝 윤기나게 닦고, 해져 너덜너덜한 페이지를 덧대어 꿈을 쓰고 있다.


60이라는 늦은 나이에 나는 꿈을 꾸는 문구점 아줌마이다.



<블로그 댓글 중>


- 부부의 동업이 쉽지는 않더라구요. ^^

그래도 슬기롭게 잘 대처해 나가신 모양입니다.

- 감성토끼님의 남편분은 저랑 비슷한 성향인가봐요~ㅎㅎ

저도 결벽증과 완변주의라, 우리 신랑이 힘들다고 해요... 부부는 대부분 반대로 만나나봐요~^^

그래도 감성토끼님의 넓은 마음과 여유로운 성향 때문에 두분이 오래동안 문구점을 잘 운영해가나 봅니다.

밝고 긍정적인 님의 글을 읽고나면 저도 으쌰으쌰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비오는 주말, 따뜻한 차 한잔과 행복한 시간 되세요~^^

- 삶의 여행자라는 말씀이 깊이 와닿는 글이예요.

바쁘고 힘드신 와중에도 마음의 여유공간을 두고 계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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