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점 대목의 변천사

12월 3일

by 감성토끼

문구점에도 대목이 있다.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 대목은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예전 문구점 대목은 신학기, 2월 11일 밸런타인데이, 3월 11일 화이트 데이, 5월 5일 어린이날, 5월 14일 로즈데이, 5월 15일 스승의 날, 11월 11일 빼빼로데이,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모두 대목에 속한 날들이었다.

설날이나 추석 대목뿐만 아니라 문구점만의 대목은 이렇게나 종류가 많았었다.

그러니 거의 매월 문구점 진열대가 대목에 맞춰 그 달의 색깔로, 그 달만의 특색으로 채워지곤 했었다.


밸런타인데이 때는 각종 초콜릿들이, 화이트 데이에는 예쁜 병에 담긴 알록달록한 사탕이, 5월이면 아이들 장난감이나, 카네이션 꽃과 비누꽃 장미가, 스승의 날은 꽃과 함께 볼펜이나 앙증맞은 작은 소품들을 선생님께 선물하기 위해 포장을 하곤 했었다.그리고, 빼빼로데이에는 여러 다양한 종류의 빼빼로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신학기 다음으로 제일 큰 대목이 바로 빼빼로데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날에는 남자가 여자에게, 여자가 남자에게 이렇게 받는 대상이 정해져 있다면, 빼빼로 데이야말로 서로 주고받을 수가 있었으니 매출이 2배로 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빼빼로데이는 그래서 레전드를 찍는 사건들이 많기도 했다. 간 큰 빼빼로 도둑이야기가 제일 큰 사건이었고, 당일 등교 전 1시간 매출이 빼빼로 판매만으로 평일 하루 매출을 올리기도 했으니 시간당 매출이 제일 높은 날이 바로 빼빼로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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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공간에 몰려드는 아이들 때문에 갖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야 했는데, 미리 예약을 하고, 근처 빈 상가를 잠깐 빌려서 그곳에 보관을 하기도 하고 아침 한 시간을 위해 알바까지 고용을 해야 할 정도였다.

그 아침 풍경은 그야말로 몰려드는 아이들 때문에 북새통을 이루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반짝이는 설렘이 번져나가기도 했다.

D-day 며칠 전부터 누구한테 선물을 주고 누구에게 받을 수 있는지를 계산하고, 기대하는 아이들의 들뜬 분위기가 나에게까지 느껴지곤 했었다.

마치 비눗방울이 방울방울 날아다니듯 몽글몽글 복작복작한 즐거움이 온통 문구점 안을 휘감고 있었다.그래선지 그때의 축제 같았던 분위기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김영란법 제정 이후로 스승의 날 선물을 아예 못하도록 바뀌었고, 그와 함께 문구점 대목도 점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지금은 대목이라야 신학기 대목이 전부인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 이전에 '준비물 없는 학교'정책이 문구점 입장에서는 치명타라고 할 수 있겠다.

예전보다는 학생 수가 줄어들기도 했고, 대형마트와 다이소 등에서도 문구류를 쉽고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게 된 것 외에도 온라인 구매가 일상화된 영향, 무인 문구점의 등장 등으로 이제 학교 앞 문구점은 점점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문구점의 현주소이다.




어쩌면 학교 앞 작은 문구점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미 학교 앞에 문구점이 없는 곳들도 많다.

누군가의 추억 속 장소로 남아 있게 될 그날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다.

언제까지 내가 문구점 아줌마로 살아갈 수 있을지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최후의 문구점 아줌마로 남겠다는 소신은 없다.


더 이상 볼 수 없는 학교 앞 문구점에서는 이런저런 다양한 사건들이, 사람 냄새나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있었다는걸, 누군가에게는 아름답고 순수한 추억이, 누군가에게는 약간은 부끄러워 어쩌면 본인의 흑역사로 남아 있을 기억들이 문구점, 문방구라는 단어 속에 스며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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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이들은 중학생이 되어 찾아와 3학년 때 물건을 훔친 적이 있노라 고백을 하기도 하고, 좀 더 큰 뒤에 찾아와서는 여전히 변함없는 물건들을 보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도 한다.

문구점은 누구나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기억을 소환하게 되는 유일한 공간이지 않을까 싶다.

학교 앞 작은 문방구가 그래서 몇 개쯤은 명맥을 이어 계속 살아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그래서 삶에 지친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마주할 수 있는 마법 같은 공간으로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블로그 댓글 중>

- 감성토끼님~ 문구점을 하시는군요.

문구점은 학교다닐때 하루도 안빼놓고 드나들었던 곳입니다.

지금도 집앞에 문구점 갈때면 구경하는게 참 재밌어요.

뽑기도 간혹 합니다. 문구점에 대한 글이 추억을 불러 일으키네요.

문구점은 있어야해요. 아이들이 작은 용돈으로 스스로 뭔가를 사보고 친구들과 추억도 쌓는 곳이잖아요.

저도 문구점 가는 거 참 좋아하는데.. 안없어지면 좋겠습니다.~~

- 문구점의 대목들이 사라져 버린 현실을 감성토끼 님 글을 통해서 인지하게 되네요.

초등학교 앞 문구점들이 점점 사라진다는 사실이 그곳을 드나들며 자란 아이들에게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 될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스며있는 공간이 사라진 것일 테니까요.

나중에 다시 찾아와 자신의 흑역사를 고백하는 아이가 있다니, 문구점 주인장으로서 감회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

- 문구점 하면 아기자기한 장난감부터 간식이 별로 없던 시절 신기한 먹거리까지 떠오르는 장소죠.

저도 학교 앞 문구점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서 아쉬워요.

큰 애 초등 저학년때만해도 문구점이 자리했었는데 언젠가부터 사라져가네요.

문구점 이야기가 어린시절 문구점을 들린것처럼 느껴집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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