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가끔 뒷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뭔가 어깨가 쳐져 있고, 고달파 보이는, 삶에 지쳐 보이는 그런 쓸쓸한 모습들....
생기 발랄하고, 신나는 뒷모습보다는 왠지 이런 짠한 뒷모습이 눈에 오래 머무는 것도 같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거나, 학교 끝나고 집으로 가는 뒷모습도 그렇다.
신나게 실내화 가방을 빙빙 돌리며 폴짝거리며 뛰어가는 뒷모습보다는 고개를 푹 숙이고, 무거운 가방을 멘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무겁게 발걸음을 떼는 아이의 뒷모습에 마음이 쓰인다.
구태여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 표정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뒷모습 하면 한 거래처 직원분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언젠가, 그날도 역시 몹시 피곤한 목요일이었다.
거래처에서 동시에 물건이 들어와서 녹다운이 되어 있었다.
영업사원분이 물건 박스들을 안으로 들여놓는 뒷모습을 보는데, 정말 그분의 표정이 보이는 거였다.
발걸음이 무거워 보이고 박스를 나르는 뒷모습이 너무나 지쳐 보였다.그 뒷모습이 지금 저 사람 귀찮구나, 피곤하구나 하는 게 느껴졌다.
그때 뒷모습에도 정말 표정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물건을 정리하고 보니, 주문한 수량이 바뀌어서 들어오고, 남녀도 바뀌어서 들어왔다.
남 15, 여 5를 주문했다면 남 5, 여 15로 잘못 들어온 거였다.
많은 건 더 들어오고 모자란 건 적게 들어오고....
물건 종류가 많고 헷갈리는 건 알겠지만, 그래도 순간적으로 짜증이 났다.
그분의 뒷모습이 짠하기는 했지만, 뭔가 프로페셔널한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이번 한 번만 잘못 들어온 게 아니었다.
그 거래처에 주문을 하면 꼭 뭔가 한두 가지는 이렇게 실수가 늘 있어왔다.
그런데 자꾸 그 뒷모습이 떠오르면서 저분이 무슨 힘든 일이 있는 걸까, 아님 삶의 자세가 원래 그런 걸까란 두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그건 뒷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삶의 자세가 그런 거라면 화가 날 수 있지만, 그분이 힘들고 지쳐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한편으로 들기도 했다.
그 직원분은 얼마 후부터 볼 수가 없었다.
프랑스 사진작가 에두아르 부바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에 미셸 투르니에가 글을 써서 출간한 <뒷모습>이라는 사진집이 있다.
이 사진집에서 미셸 투르니에는 "뒷모습은 스스로를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마주한 이를 속이지도 않는다. 진실은 이 사이, 밝히지 않는 것과 속이지 않는 것 사이에 있다. 뒷모습이 요령부득으로 느껴진다면 이는 진실이 요령부득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뒤쪽이 진실이다"라고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미술 작품 중 특이하게도 화가 자신의 자화상을 뒷모습으로 표현한 화가들도 있다.
요하네스 페이 르메르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가 그 화가들이다.
두 화가의 뒷모습은 많이 다르게 느껴진다. 왠지 이분들의 성격이 보이는 것도 같다.
내 뒷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어떤 느낌의 그림이 탄생할까?
나태주 시인은 뒷모습을 일컬어 "자기의 눈으로는 결코 확인이 되지 않는/오로지 타인에게로만 열린 또 하나의 표정"이라고 이야기한다.
앞쪽의 표정은 다양한 모습으로 연기를 할 수 있지만, 뒷모습의 표정은 특별히 가꿀 수도 꾸밀 수도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더욱 그 사람의 진솔한 모습이 그 사람만의 표정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뒷모습이야말로 나 자신의 감출 수 없는 무방비한 모습 그 자체이다.
내 뒷모습은 어떤 표정일까?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표정일까?
아니면 삶에 찌든 피곤한 표정일까?
나는 알 수 없는, 타인만이 볼 수 있는, 내 뒷모습의 표정이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왕이면 이 가을날처럼 아름답게 물들다 아름답게 익어가는 사람의 표정이었으면 좋겠다.
때때로 사람의 뒷모습은 표정 없는 많은 말들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 말을 조용히 들어주고 싶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 싶다.
당신은 오늘 하루도 잘 살아가고 있노라고....
<블로그 댓글 중>
- 정말..뒷모습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아요.
얼마전[전시회 간날] 여럿이 한 차를 타고 가는데 초등학생의 무거운 옆모습이 눈에 아른 거리네요. 아이들의 걸음이 생기 없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속상한 날이었거든요.
- 무언가를 보면서 질문을 던진다는 것 자체가 전 훌륭해보이네요~
유대인 교육법도 질문으로 시작한다는데.. 그렇게 질문을 하면서 생각도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뒷모습을 보며 저도 질문을 해볼까봐요~
- 옷을 입고 뒷 모습이 궁금해서 거울을 보면 자신의 꼬리를 잡으려고 뱅글뱅글 도는 고양이 꼴이 되기 쉽상이죠...ㅋㅋㅋ
그래서 누군가에게 나의 뒷모습 좀 봐 달라고 부탁하게 되는데...
그런 사람은 정말 편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나의 뒷모습이 어떠하든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요...^^
지난번 올려주신 뒷모습 책과 함께 감성토끼님의 글을 통해 다시한번 뒷모습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가을.... 즐거운 주말이네요~~ 행복하고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