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
하늘에 낮게 구름들이 드리우고, 소리 없이 비가 내린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적당한 양으로 부슬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휴일에 비까지 내리면 그날 매출은 뻔하지만, 나는 비 오는 날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니 그 한가함을 즐기면 된다.
비가 오니 손님을 위해 우산꽂이를 꺼내 출입문 앞에 내어둔다.
우리 가게의 우산꽂이는 재미있게 우산모양이다.
거기에 며칠 전 우산을 꽂아놓고 잃어버리고 간 한 꼬맹이의 우산이 들어가 있다.
잃어버린 우산.
우리는 살면서 몇 개의 우산을 잃어버릴까?
나만 해도 얼핏 생각나는 게 열 개 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주인 잃은 우산들은 어찌 될까?
일단 우리 문구점으로 온 우산들의 운명을 소개해 본다.
아이들이 우산을 찾으러 오는 비율은 10% 될까 말까 한다.
내가 보관하는 기간은 열흘! 엄격하게 열흘을 정해놓았지만, 한 달이 갈 때도 있다.
장소가 협소해서 보관을 해 놓는 것도 사실 스트레스가 된다.
그래서 보통 열흘이 지나면 폐기물 버리는 곳에 버리기도 하고, 상태가 아주 좋은 것들은 사람들한테 나눠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문구점에서 제일 많이 발생하는 분실물은 무엇일까?
지난 10년 이상의 경험으로 생각해 보면 압도적인 1위는 우산, 2위는 지갑, 3위가 핸드폰인 것 같다.
이중 핸드폰 회수율이 제일 높고, 100% 찾아간다. 지갑은 안 찾아가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대부분 찾아간다.
하지만, 우산은 회수율이 제일 낮은 편이다.
물건을 잃어버리는 아이들의 남녀 비율을 보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짐작하다시피 압도적으로 남자아이들의 비율이 높다.
특히 실내화를 제일 많이 잃어버리는 것 같다. 실내화는 문구점에서보다는 학교에서 많이 잃어버린다.
아들을 둔 많은 어머님들이 실내화를, 지우개를, 우산을, 심지어 필통을 통째로 잃어버린 아이 때문에 문구점을 방문하신다. 실내화는 한 짝만 잃어버린 아이부터 아예 실내화가방까지 잃어버리는 아이까지 다양하다. 그중에 최고봉은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린 아이였다.
정말이지 아들들은, 남자아이들은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어머님들께 가방 이야기를 해 드리면, "그래도 우리 아들은 그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네요~~" 하신다.
물론 여자아이들 중에서도 우산이나 연필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남자아이들하고는 비교가 안된다. 도대체 왜, 유독 남자아이들이 그런 것일까? 너무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역시 이유가 있었다.
한 방송에서 남자와 여자가 같은 물건을 찾는데 걸리는 시간을 비교해 보았더니 남자가 여자보다 배의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에 출연한 신경정신과 전문의의 말에 따르면 유전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주변 시야가 좁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 목표 지향적인 면이 있는데 우선순위를 정해서 1순위 명제에는 40%의 주의를, 2순위에는 20%, 3순위에는 10% 정도의 신경을 쓴다고 한다. 이런 성향은 물건을 찾을 때도 적용되어 중요한 물건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잘 찾지 못하게 된다.
진화론 적으로도 남자들은 사냥을 위해 멀리 있는 사냥감을 찾아야만 했고 따라서 가까운 주변을 두루 살피기보다는 멀리 있는 사냥감에 집중하고 쫓아야 하는 사냥꾼적 원거리 터널시야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아이들이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것이다.
2년 전쯤 설날에 있었던 일이 기억난다.
동생과 친정에 들렀다가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던 일이 있었다.
그때 동생이 지갑을 들고 나왔었는데, 운동을 하면서 운동기구 위에 지갑을 놓은 채 잊어버리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생각이 나서 허겁지겁 지갑을 찾으러 그 공원으로 갔으나, 그 자리에 있던 지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지갑에는 카드와 현금 몇십만 원이 들어 있었다. 설날이라 아이들에게 줄 세뱃돈을 신권으로 찾아 넣어 두었다고 한다. 망연자실하고 있었는데 올케가 혹시 모르니 파출소로 전화를 한 번 해보라고 했다.
동생이 전화를 했더니, 세상에~ 어떤 분이 공원에 떨어져 있던 지갑을 파출소로 갖다주고는 이름도 밝히지 않고 가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지갑을 그대로 찾아올 수 있었다.
그때 우리나라는 정말 살만한 나라구나 하는 걸 새삼스럽게 느꼈다.
이런 우리나라이기에 분실물이 있다면 찾고자 하는 본인의 의지만 있으면 대부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찾고 싶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잃어버린 우산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단, 너무 늦지는 말아야 한다.
<블로그 댓글 중>
-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또 부모도 웬만하면 다시 사주니까 귀찮아서 찾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어릴땐 비가 오면 학교에 일찍 갔어요.
멀쩡한 우산을 차지하려고~~ 나중에 가면 찌그러지고 구멍 난 것이 기다리니까요. ㅋㅋㅋ
- 저희 아이는 외투를 잃어버리고 왔습니다.
학교 운동장에 벗어났다고 하는데 누가 가져갔는지 없다고 하네요. 남자 아이들은 참 노답이에요ㅡ.ㅡ
- 확실히 아들이 많이 잃어버려요 ㅎㅎ
우산도 몇 개되고, 점퍼를 잃어버린 적도 있어요.
생존수영 배우고 와서 수영복도 없어지고 하하~~
그나마 우산은 잃어버려도 부담이 덜 되는 것 같아요